잊고 있던 '개구리 번트', 팩션으로 살아났다

2012. 12. 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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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준호 기자]

▲ 김재박의 개구리번트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일본과 최종전에서 만나 우승을 다투었고, 0대 2로 끌려가던 8회에 거짓말처럼 5점을 뽑아내며 역전우승에 성공했다. 일본의 배터리가 고의로 뺀 공을 향해 솟구쳐 성공시킨 김재박의 기습번트는 동점타였을 뿐만 아니라, 승리의 기운을 결정적으로 끌어온 의미있는 한 방이었다.

ⓒ 한국야구위원회

"너무 정치에만 빠져있는 국민들의 관심을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구기 종목의 프로화를 검토해보라."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로 유명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다룬 팩션 < 마지막 국가대표 > . 책에는 위와 같이 전두환 대통령이 프로야구 창설 지시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우두망찰 앉아 있는데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너무 정치에만 빠져있는" 머리를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싶어 책을 들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기에 별 기대 없이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재밌다.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가령 이런 거다.

"2루 주자를 들여보내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니까 야수들 사이의 공간을 줄일 필요가 있었지. 그런데 유격수 재박이는 2루쪽으로 치우친데다가 뒤쪽으로 몇 걸음 오히려 멀찍이 빠져있었어. 대화야, 그거 체크하고 있었냐? 그리고 재박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알겠냐?"

이게 뭐가 재밌냐고 의아해 할 수 있겠다. 그럴 수 있다. 본문의 일부만 있고 앞뒤 이야기를 모르니. 배경을 설명하면, 국가대표팀이 연습경기 끝난 후 평가하는 대목에서 감독이 3루수 한대화에게 질문을 던진다. 유격수 김재박이 왜 거기 가 있었겠느냐고.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했다는 결론에 이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아하, 이런 게 작전이라는 거구나.

다른 종목에서도 그렇겠지만 작전은 야구에서 특히 중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상대의 특징을 파악해 거기에 대응하는 불꽃 튀는 머릿싸움이 펼쳐지는 경기가 야구다. 이 책은 그런 야구의 묘미를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홈런... 그날의 함성 고스란히 되살려

무엇보다 마지막 일본과 치른 결승 경기 대목이 압권이다. 그 유명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홈런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김재박은 양 팀 벤치를 모두 충격으로 몰아넣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는 멀찍이 빼는 니시무라의 3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중략)

그 안타까운 실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배트를 전력으로 휘두른 한대화의 배트 중심에 제대로 통타당해 까마득히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잠실야구장 좌측 폴대의 3분의 2지점을 때리고 떨어졌다.

제법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날의 경기는 많은 이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특히 김재박의 무모하기까지 한 번트는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로야구 원년 멤버'라는 영예 포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태극마크 달아

이 책의 이야깃거리는 비단 극적인 우승만은 아니다. 이 해 출범한 프로야구에 합류하지 못한 선수 6인의 고민이 이야기의 또다른 한 축이다. 이해창, 심재원, 김재박, 최동원, 유두열, 임호균 여섯 선수들은 프로야구 흥행몰이 주역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으나 아마추어 선수만 참가할 수 있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본인 뜻과 관계없이 1년간 프로야구 진출이 보류된다.

당시 선수들의 심정을 투수 임호균은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극마크란 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태극마크를 다는 대신 '프로야구 원년 멤버'라는 영예, 그리고 상당한 부와 팬들의 환호 따위를 포기해야 했다는 생각에 솔직히 싱숭생숭함을 떨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들 선수 6인은 착잡한 심정을 추스르고 선동열, 박노준과 같은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결국 사상 첫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루게 된다.

지금이야 야구 국가대표하면 프로야구 선수들로 구성되지만 당시 최고 권위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는 프로선수가 출전할 수 없었다. 책 제목이 < 마지막 국가대표 > 인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 프로로 간 선수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대학생이나 군인 선수가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상급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뛰는 건 이 해가 마지막이다. 이런 뜻에서 < 마지막 국가대표 > 라 이름 지은 것.

'한국 야구' 이야기꾼 김은식 작가의 첫 스포츠 팩션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기념우표

ⓒ 김은식

김은식 작가는 2006년 < 오마이뉴스 > 에 100회에 걸쳐 '야구의 추억'을 연재해 한국 야구의 스토리텔링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연재를 책으로 묶어 펴낸 < 야구의 추억 > 에 이어 <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 < 두산 베어스 때문에 산다 > < 야구상식사전 > < 타격의 과학 > 등 모두 13권의 야구 관련서를 집필하거나 번역했다. < 마지막 국가대표 > 는 김 작가의 첫 스포츠 팩션이다.

팩션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인 만큼 이 책을 읽으며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력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21일 전화통화에서 "선수들 간의 대화나 연습경기 상대팀, 경기에서 투수들이 던진 구위 등은 상상력의 산물"이라면서 "나머지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록 뿐만 아니라 임호균 투수를 비롯해 야구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듣고 이를 이야기로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어느덧 그날의 대회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선수 6인 중 심재원과 최동원이 세상을 등졌다. 또 당시 군인 신분으로 대회에 참가한 장효조 역시 최동원보다 일주일 앞서 유명을 달리했다. 세월의 무상함 속에 그날의 영광도 차차 잊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출간이 더 반가울지도 모른다.

그 시절과 사건에 대해 조금 더 파고 들어, 나와 동료들의 가슴 속을 들여다보고 재조명해준 작가에게, 그래서 특별한 고마움을 느낀다. (임호균)

덧붙이는 글 |

< 마지막 국가대표 > . 출판 bs. 초판 1쇄 펴낸날 201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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