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소금 중독'으로 숨진 딸..새 엄마의 짜디짠 사랑

박현석 기자 2012. 12. 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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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황당했습니다. 소금 중독으로 사람을 죽인다? 친한 경찰도 대학병원 의사도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의심스러워하는 제게 사건 담당 형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지를 내밀었습니다.

"변사자의 눈유리체액에서 Na+가 181 mEq/L로 검출되는데, 성인 16명의 소금 중독 사례를 분석한 연구에서, 사망한 14명의 혈장나트륨 농도는 153~246mEq/L였음. 따라서, 소금 중독에 의한 전해질 이상(고나트륨혈증 등)을 사인으로 고려할 수 있음."

극히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소금을 한꺼번에 많이 먹이면 사람이 죽기도 하는구나. 그럼 이 어린 소녀에게 누가 이렇게 많은 양의 소금을 먹였을까.

넉 달 전인 지난 8월 12일 아침, 인천 간석동의 한 아파트에서 10살 J 양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가족들이 119를 불렀고, 병원으로 이송하던 119 대원이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J 양의 온 몸에서 멍 자국과 화상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학대를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검에 나선 국과수는 구타와 함께 소금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고, 사건은 인천 남동경찰서 강력팀으로 재배정됐습니다.

부검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미 한 달 가량이 지난 상황, 경찰은 즉각 J 양의 집을 압수수색했습니다. 부엌 씽크대에서는 대형 소금 봉투를 발견했고, J 양을 때릴 때 썼을 것으로 보이는 단소도 찾았습니다. 단소는 부러질까 싶었는지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아놓은 상태였습니다. J양의 새 옷들은 가위 등으로 찢긴 채 발견됐는데, 친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새 엄마가 피의자로 지목됐습니다. J 양의 세 살 터울 친오빠는 경찰에서 "한 달 보름간 새 엄마가 자신과 동생의 밥과 국수에 서너 숟가락씩 소금을 섞어서 먹였다."고 진술했습니다. 먹지 않으면 때렸고, 토하면 다시 주워 먹게 하고, 견디기 힘들어 변기에 밥을 버리다 걸리면 반성문 형식의 일기까지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오빠의 일기장에는 '변기에 밥을 버렸다.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죽을 때까지 천벌을 받으면서 살 것이다'라는 억지 반성의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경찰은 집에 있는 컴퓨터의 인터넷 검색 기록까지 모두 조사했습니다. 새 엄마가 처음부터 살해 의도를 갖고 일부러 소금을 그렇게 먹였는지, 소금 중독과 관련해 찾아본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없었고 살인죄 적용이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새 엄마는 어제 아동 학대치사 혐의로 구속 수감됐습니다.

그런데 새 엄마는 왜 그랬을까요. 이혼한 사람들끼리 재혼한 경우였고, 새 엄마에게도 스무 살짜리 친아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식도 키워 본 사람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새엄마는 뚜렷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댁과 돈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는 정도? 그래서 화풀이를 아이들에게 했다고 일부 언론이 쓰기도 했지만, 제 생각엔 비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새 엄마는 혐의 사실 자체도 일부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살인을 했고, 왜 그랬는지 얘기를 할리는 없을 겁니다. 어제(21일) 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법원에 들어가는 새엄마를 만났습니다. '저는 진짜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라고 너무너무 억울하다는 뜻을 밝히더군요. 어찌됐든 먼저 아이에게 미안함을 밝히는 게 일말의 도리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은 한 사람, 아빠는 뭘 했고, 왜 막지 못했을까요. 저도 애 아빠라 이 부분에 관심이 갔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긴 하나, 일단 새 엄마가 아빠보다 나이가 10살 가까이 많았고, 집도 운영하는 가게도 모두 새 엄마 소유였다고 경찰은 귀띔했습니다. 집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클 수는 없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물론 새 엄마가 아빠 보는데서 그러지는 않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입니다. 아빠도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방임죄를 적용 받아 불구속 입건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의사 한 분이 그러더군요. 죽기 전까지 아이가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구타도 구타지만 소금을 단기간에 그렇게 많이 섭취하면 몸 여러 군데가 탈이 났을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의사분이 인터넷을 찾아봤다며, 미국에서 최근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계모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럴 때는 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의 원칙이 떠오를까 모르겠습니다.박현석 기자 zes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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