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대 보수, 헌정사 초유의 대회전

천관율 기자 2012. 12. 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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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초유의 대회전이 시작됐다. 긴 우여곡절 끝에 2012년 대선 구도가 마침내 확정됐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남은 것은 '진검승부'다.

사라진 '비판적 지지' 논쟁

1987년 민주화 이후 제3후보 변수가 제일 적은 대선이다. 민주화 이후 대선을 다섯 번 치르면서, 충청당 후보(지역 전선), 무당파 후보(정치쇄신 전선) 혹은 진보정당 후보(독자 진보정당 노선)가 유력 변수로 등장하지 않았던 선거는 지금껏 없었다. 양자 대결에 가장 가까웠던 2002년 대선조차도, 무당파 후보 정몽준이 막판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고 민주노동당 후보 권영길이 막판까지 결과를 좌우할 지지율을 유지하는 등 제3후보 변수가 잔존했다.

이번엔 다르다.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무당파 후보였던 안철수는 12월6일 문재인 전면 지원 선언으로 완전히 결합했다. 진보정의당 후보 심상정은 일찌감치 합류했다. 통합진보당 후보 이정희는 정권교체에 헌신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 2002년 권영길 후보와는 접근법이 전혀 다르다. 2002년만 해도 진보 지식인 사이에서 치열했던 논쟁, '노무현 비판적 지지 대 진보정당 독자후보 지지' 논쟁을 지금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친노 불가론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범진보 대연합의 결집 수준은 전례가 없을 정도다.

보수색 강한 충청당 세력은 주로 박근혜로 쏠렸다. 4월 총선에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선진당은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선택했다. 선진당과 갈라섰던 이회창 전 대표도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회창과 이인제 두 숙적이 또다시 한 배를 탔다.

한때 박근혜 후보를 '칠푼이'라 부르며 비판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친이명박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도 합류했다. 이로써 부산·경남에 기반한 민주계와 수도권 친이계가 박근혜 깃발 아래 섰다. 역시 최고 수준의 범보수 대연합이다. 올해 총선 때부터 보수표의 결집도는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다.

2012년 한국 정치는 강력한 양당제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충청당 실험과 진보정당 실험 등 오랜 제3세력화 실험은 올해 나란히 결정적인 좌절을 맛봤다. 양당제 흐름에 맞선 가장 강력한 제3세력화 실험이었던 '무당파 혁명' 역시 불씨만 남긴 채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그 결과 이처럼 유례를 찾기 힘든 양자 전면전 구도가 정립됐다.

'영남당 대 호남당'이라는 지역 전선이 여전히 강력하기는 하지만, '진보 대 보수'라는 노선 차원의 구분이 더 뚜렷해졌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한화갑·한광옥·김경재 등 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그룹인 동교동계 인사 몇몇이 박근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 호남 출신이지만 노선 차원에서 진보로 보기는 힘든 인사들이 여럿 보수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양당제의 중심축이 지역에서 노선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다. 미국의 예를 보면, 한때 남부 지역당이었던 민주당이 뉴딜정책과 민권 운동을 거치며 진보색이 강한 정당으로 탈바꿈할 때, 남부의 보수적 민주당 인사들은 당을 떠나거나 아예 공화당으로 옮겼다. 2012년 한국과 판박이다.

ⓒ시사IN 양한모

이번 대선은 역대 한국 정치를 규정했던 갈등축이 총출동한다는 것도 이채롭다. 박정희 시대의 여촌야도, 1987년 민주화 이후 25년을 지배했던 영·호남 대결,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부터 맹아가 싹튼 세대 대결 구도가 모두 살아 있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외연 확장 전략을 포기하고 경제위기론과 고정표 단속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 시사IN > 제273호 기사), 진보·보수 구도도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헌정사의 압축판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그간 한국 정치는 분단 구조와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도 압도적 보수 우위가 유지되어 왔다. 범진보 진영의 역량은 이제야 보수와 전면전을 치러볼 정도까지 올라섰다.

변수는 PK, 충청, 수도권 젊은 층

보수 우위는 미세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양쪽 캠프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현재 박 후보가 한 발이라도 앞서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전면 지원을 선언한 '안철수 효과'를 감안하고서도 그렇다.

판세를 아주 간략하고 거칠게 정리해보자. 호남·제주의 문재인 우세와 대구·경북, 그리고 강원의 박근혜 우세가 얼추 상쇄된다. 부산·경남(PK)의 박근혜 우세는 수도권의 문재인 우세를 대충 상쇄한다. 남은 것은 충청이다. 박 후보의 우세 지역이다. "현재 스코어, 결국 충청에서 지는 딱 그만큼 지고 있다." 문재인 캠프의 한 정세 분석 담당자의 평가다. 그는 문재인 캠프 내에서 비관파에 속하는데, 묘하게도 박근혜 캠프의 비관파도 이 정도 선에서 예측한다. 충청의 우세만큼만 앞서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수는 PK, 충청, 그리고 수도권 젊은 층이다. 문 후보는 충청에서의 열세(역대 야권 후보가 충청을 내주고 승리한 적은 없다)를 PK에서 벌충해야 한다. 문재인 캠프의 한 전략통은 "보수 동맹의 한 축인 PK가 허물어지는 징후를 보여서 '되겠구나' 싶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수도권 투표율도 오른다"라고 주장했다. 문재인·안철수 첫 공동 유세라는 가장 강력한 카드도 부산에 투자했다. 문 후보와 안 전 후보는 12월7일 부산에서 함께했다.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카드가 직접 수도권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박근혜 캠프는 부산은 몰라도 경남의 분위기가 좋기 때문에 PK 바람이 수도권까지 상륙할 리는 없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충청이 허리에서 강고하게 버틴다는 것이 자신감을 더해주고 있다. 충청과 강원은 올해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박근혜 캠프의 한 전략통은 "PK와 충청 변수는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수도권 투표율에서 대이변만 일어나지 않으면 확실히 이긴다"라고 주장했다.

전열 정비는 끝났다. 구도는 정해졌다. 양쪽 모두, 그야말로 전부 긁어모았다. 단 한 번의 대회전. 이제는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역량이 누가 위인가를 견주는 일만 남았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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