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밤 "댓글 흔적 없다" 17일 "가능성 없지 않아" 말 뒤집은 경찰

류인하 기자 2012. 12.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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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의혹' 석연찮은 수사 발표

민주통합당이 문재인 대선 후보의 비방 댓글을 달았다고 고발한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씨(28)의 경찰 중간 수사 결과 발표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16일 대선 3차 TV토론 이후 예고 없이 발표된 수사 결과 내용과 발표 시점을 놓고 경찰 관계자들의 말이 엇갈린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새누리당이나 국정원이 미리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정황도 나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6일 오후 11시19분 출입기자들 e메일을 통해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운동 혐의사건 중간수사 결과'라는 제목의 A4 용지 3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는 "디지털 증거 분석결과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돼 있다.

그러나 경찰이 김씨의 포털사이트 로그기록 확인이나 IP(인터넷 주소) 추적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경향신문 단독보도가 사실로 확인된 17일에는 "덮어쓰기로 컴퓨터에 남아있지 않는 인터넷 접속기록으로 댓글이 작성됐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 발표 시점과 내용 놓고 서울청·수서경찰서 딴말새누리당과 국정원서 미리 알았던 정황도

수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의 작성자와 배포자가 다르다는 점도 외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보도자료를 작성한 주체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인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자료를 배포한 곳은 수서서이기 때문에 서울경찰청의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수서서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보도자료를 내겠다는 어떤 보고도 (서울경찰청에)한 적이 없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하라는 지시를 받고 배포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도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중간수사 결과 발표는 수서서장보다는 내 쪽이 더 주체성이 높다"며 발표를 지시했음을 인정했다. 정작 수사실무 담당자는 보도자료 배포에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경찰청 상부에서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 시점이 정해진 것이다. 김씨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대한 분석은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하지만 IP 추적과 인터넷 로그기록 확인은 수서서에서 전담한다. 수서서는 서울경찰청의 하드디스크 분석작업이 완료된 후 해야 할 어떤 수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연 '의혹이 없다'는 식의 보도자료 배포 지시를 받은 셈이다.

경찰의 발표시점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는 공범 중 일부의 혐의가 확정됐거나 범죄사실 대부분이 확인돼 검찰 송치단계에 이르렀을 때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수서서 현장 수사팀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하는 것은 경찰의 통상적인 수사 결과 발표 관행과 어긋난다.

박선규 박근혜 캠프 대변인이 16일 대선 후보 TV토론이 끝난 직후 YTN 대담에서 "이제 곧 경찰 발표가 있겠지만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발언한 것도 사전에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경찰의 보도자료 배포 시점 전에 이미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알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 불과 11분 만에 국정원이 "민주당의 주장은 사실 무근으로 드러났다.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것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새누리당-경찰-국정원의 톱니바퀴가 착착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대선 후보 3차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밀리자 김용판 서울지방청장이 과잉충성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 경찰청 간부는 "김 청장은 박근혜 후보 쪽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며 "토론 직후 보도자료가 배포된 것을 보면 박 후보가 밀리자 수를 쓴 것 아니냐는 얘기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김용판 당시 경찰청 보안국장이 서울경찰청장으로 내정됐을 때 경찰 내부에서는 "서울청장이 뒤바뀌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영남대 출신에 대구 달서서장을 지낸 김 청장을 박 후보 측이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것이다.

최근 사의를 표한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1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시기상으로 경찰이 밤 11시에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한 적은 역사상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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