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잔해 인양'으로 들뜬 '정보 실패' 국방부

김태훈 기자 2012. 12. 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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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발사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의 잔해가 인양됐습니다. 길이 7.6미터, 직경 2.4미터, 무게 3.2톤의 1단 추진체 연료탱크로 추정되는 물체입니다. 외부 손상도 거의 없이 원형 그대로 발견됐습니다.

1단 추진체가 로켓 본체에서 분리됐을 때 고도가 98킬로미터였습니다. 그 높이에서 초속 수십 킬로미터 속도로 서해바다로 추락한 잔해가 아무런 손상 없이 이토록 깔끔하게 인양됐으니 기적 같은 일입니다. 북한 로켓의 실체가 궁금했던 우리에게는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잔해는 이제 국방과학연구소로 옮겨져 철저히 분석될 겁니다. 국내의 민군 전략무기 전문가 뿐 아니라 북한 로켓의 원조인 옛 소련 로켓과 북한 로켓의 후신인 이란 로켓을 분석한 경험이 있는 미국 전문가도 참여합니다. 잔해 분석 결과가 기대됩니다.

그런데 잔해 발견으로 이번 북한 로켓 발사로 드러난 우리 군의 큰 구멍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바로 정보의 실패입니다. 북한 로켓 발사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우리 군의 정보 무능이 가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면 전환! 우리 군의 의도인데 제대로 먹히고 있습니다.

오전엔 '공개 불가' 오후엔 '전격 공개'

어제(13일) 오전 11시 국방부의 입장은 명확했습니다. "잔해를 수색하기는 하는데 발견한다고 해도 공개하지는 않겠다. 발견했는지 못했는지도 공개 안 하겠다"였습니다. 그제(12일) 로켓 연료탱크로 추정되는 잔해가 발견됐으니 국방부는 어제 오전까지도 그런 사실을 숨겼던 것입니다.

그런 국방부가 오후 1시 반쯤 '잔해 발견' 브리핑을 곧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발견한 잔해의 덩어리가 워낙 커서 숨기려고 해도 곧 알려지게 될 것 같다"는 것이 공개 이유입니다. 은하의 '하'자가 선명히 보이는 잔해 사진과 '1단 추진체의 연료탱크'라는 잔해의 정체가 알려지자 북한 로켓 관련 뉴스의 초점은 일제히 잔해로 쏠렸습니다. 군의 '정보 판단 실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었고 국방부는 잔해 수거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밤을 잊은 인양작전

선체에 크레인이 설치돼 무거운 물건을 바다 속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함인 청해진함이 잔해 낙하 현장에 도착한 것은 어제 오전 8시 12분. 물의 흐름이 거센 서해바다여서 조류가 잦아든 오후 4시부터 인양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당초 해군은 작업이 가능한 시간을 오후 8시까지 4시간 정도로 잡았습니다.

해군은 어제 작업이 말이 인양작업이지 80미터 물 속에 가라앉은 잔해 위치를 파악하고, 장비를 점검하는 수준의 준비 작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방부도 어제 저녁, 밤이 되면 작업을 중단하고 오늘 오전 9시쯤 인양작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군 관계자들은 "서두를 필요 없다", "천천히 안전하게 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곤 했습니다.

그래놓고 해군은 밤샘 작업에 들어간 겁니다. 혹시 못 건지거나, 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여론의 질타가 있을까 우려했을까요. 오늘부터 며칠간 날씨가 궂어지니 승부를 건 걸까요. 여하튼 해군은 거센 조류를 뚫고 3.2톤 무게의 '잔해 건지기 작전'에 성공했습니다. 로켓 발사 사실을 교묘히 숨긴 북한의 기만전술도 대단하지만 잔해를 천천히 건진다고 해놓고 밤새 건져버린 국방부의 기만전술도 교묘합니다.

잔해 실물 전격 공개

오늘 오전 상황도 긴박했습니다. 원래 이런 잔해는 군이 분석을 마친 뒤에야 실물을 공개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청해진함 장병들도 잔해에 유독가스가 있을지 몰라 접근에 제한을 받았다고 하니 일반인인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 잔해는 유독 물질이 가득 들어있던 연료탱크입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잔해 실물을 평택 해군 2함대에 도착하자 마자 언론에 곧바로 공개했습니다. 해군도 국방부의 이런 조치에 의아스럽다는 반응입니다. "국면전환에 성공했다", "국방부의 꼼수가 통했다"는 뒷말이 현역 장교들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정보 실패' 국방부 → '뭐든 잘 건지는' 국방부

그렇습니다. 국방부의 국면 전환 시도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오늘은 국방부의 정보 실패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우리 군의 정보 구멍을 그냥 이렇게 묻어두고 가도 될까요.

발사 하루 전날 북한 로켓이 해체돼 수리에 들어갔다는 정보는 분명히 군 당국이 기자들에게 확인을 해줬습니다. 북한이 발사 시기를 이달 말까지로 연기한다고 발표까지 했으니 군도 경계태세 수준을 내렸고, 로켓 발사 TF팀의 팀장도 소장에서 준장으로 낮췄습니다. 로켓 발사 TF팀의 규모도 줄였습니다. 군은 "로켓 발사 관련 요원들의 피로도가 심하다"고 배경도 설명했습니다. 13일부터는 발사장인 동창리 날씨도 안 좋으니 "이번 주는 편히 가자"는 것이 국방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이 12월 12일 로켓을 발사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던 거죠. 김관진 국방장관은 발사 당일 오후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11일 오후엔 로켓이 발사대에 장착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은 했지만 장관도 발사할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미국의 상업위성 디지털 글로브나 지오 아이에 백 수십만 원만 주면 살 수 있는 동창리의 최근 위성사진으로도 로켓이 장착됐는지 해체됐는지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군이 알았어야 하는 건 북한이 로켓을 언제 발사하느냐입니다. 그걸 전혀 몰랐으니 우리 군 정보망에 큰 구멍이 뚫린 것입니다. 이제 이 실패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 하는데 국방부는 잔해 인양에 들떠있습니다.

사실 우리 군, 건지긴 잘 건집니다. 북한이 빠뜨리면 건집니다.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 어뢰도 건져냈고, 이번엔 로켓 잔해를 보란 듯이 건져냈습니다. 지난 4월 북한이 발사하다 폭발한 로켓의 잔해도 자잘해서 그렇지 건지긴 건졌다고 합니다. 이런 능력도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지금은 군 정보 실패의 원인과 대책을 찾는데 주력해야 할 때입니다.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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