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는, 바다를 마주하고 바람을 껴안았네

대청도 2012. 12. 13.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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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청도 삼각산

서풍받이의 장대(將臺)처럼 튀어나온 조망처에 서자 대륙에서부터 몰아쳐온 북새풍에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겨울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는 이 바람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큰 파도를 일으켜 누천 년간 절벽을 조탁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절경이 탄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쥐죽은 듯 숨죽이는 바람. 비로소 편히 어깨를 펴고 주위를 돌아본다. 왼쪽은 줄잡아 100m는 넘어 뵈는 거대한 바위 병풍이고, 오른쪽은 하늘에 쐐기 박듯 치솟은 상어주둥이 형상의 암봉. 그 아래로 광막한 바다가 펼쳐졌다. 이 풍경에 시선과 마음이 묶이면 아무리 바람이 거세어도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다.

저기 남쪽 바다에 거문도 불탄봉~보로봉 길이 손꼽히는 해상 절경으로 펼쳐져 있다면, 여기 중부 이북지방엔 대청도 서풍받이 길이 있다. 저울대에 걸어본다면 정확히 수평을 이루겠다 싶게 대청도 길도 풍광이 뛰어나다. 이 길은 새 트레킹 루트 찾아내기에 미련스럽도록 골몰해 온 산악투어의 양걸석 대장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대청도 최고봉인 삼각산 길에 서풍받이라는 절경지를 이었다고 하여 '삼서 트레일'이라 이름 지었다.

이 대청도 삼서 트레일은 수도권에선 1박2일이면 다녀올 수 있어 새로운 섬 풍경에 목말랐던 이들에겐 희소식이 될 것이다. 인천항에서 3시간 20분 만에 가 닿고 어지간한 풍랑에도 운항을 하는 2000t급의 대형 쾌속선 하모니플라워호가 지난 7월부터 운항을 시작, 일정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크게 줄었다.

대청도 선진포선착장의 바다식당에서 성게 비빔밥으로 요기하고 바로 트레일 시작점으로 향한다. 섬산은 멀리서 보면 늘 볼품이 없다. 이곳 대청도 삼각산(343m)도 마찬가지로, 야트막하게 누워 보인다. 하지만 산릉 너머 대양(大洋)의 파도가 부딪치는 어딘가에 절경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삼각산은 짙은 숲 속으로 우선 일행을 이끈다. 휘고 뻗어나간 각도와 모양새가 예측불허로 자유분방한 소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저편으로 푸른 바다가 자잘하게 쪼개지고 있다. 소사나무 줄기는 매끈하고, 그것이 이룬 공간 또한 말끔한 맛이 있다.

첫 번째 조망처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다. 오후 햇살이 역으로 비추자 삼각산릉은 바다 위에 거무스름한 윤곽선으로 엎드린다. 그 끝, 숫제 녹아서 함몰될 듯 강렬하게 햇살이 반사되는 해수면과 상어 이빨 같은 예각의 모서리를 드러낸 서풍받이 능선 끄트머리가 겹쳤다.

밋밋한 둔덕을 이룬 삼각산 정상에 올라서자 넙적 엎드린 하마 모양으로 소청도가 떠오른다. 소청도는 면적이 2.9㎢로 대청도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등 뒤로 고개를 돌리면 거기엔 백령도가 큰 덩치로 일어선다. 백령도는 대청도보다 몇 배 큰 섬이다.

팔각정자가 선 일주도로에 내려선 다음 대청도 남서쪽 끝머리 마당바위를 향한다. 완경사로 넓고 평평하게 섬 꼬리께를 에두르며 넓적한 띠처럼 펼쳐진 마당바위는 시퍼런 바닷물이 배경이어서 더 밝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이런 데선 한참 놀면서 쉬었다 가야 하는데!"

누군가 항의하듯 외쳤지만, 동행한 양 대장은 못 들은 척 산봉 위로 발걸음을 뗀다. 서풍받이 노을이 진짜라며.

서풍받이에 다다르자, 태양이 수평선 위로 막 내려앉고 있다. 잿빛 이내의 층을 녹이며 사방으로 붉은 기운을 화염처럼 퍼뜨리고 있다. 그 막막한 풍경에 숨결도 곧 평온히 내려앉는다.

여행 수첩

대청도 최고봉 삼각산과 서풍받이 일주길을 이은 삼서 트레일은 조망 좋은 곳마다 쉬면서 걸어도 총 7km에 4~5시간이면 된다. 다만 기자가 취재를 다녀온 뒤 대청도에도 전례 없는 폭설이 내려, 11일 현재 산길이 막혀 있으며 일주일쯤 지나야 길이 뚫릴 것이라 한다. 길이 뚫린 뒤라도 아이젠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노약자는 서풍받이 쪽만 한 바퀴 도는 것이 좋다. 삼각산 정상에서 서풍받이 쪽 내리막길이 좀 가파르다. 대청면에서 내년 봄쯤엔 계단을 놓을 것이라 한다.

삼서 트레일의 3대 조망처는 삼각산 정상 전의 330m봉, 섬 남서쪽 꼬리의 갯바위지대 마당바위, 그리고 서풍받이다. 서풍받이는 한낮보다 노을 무렵의 풍치가 한결 좋고, 마당바위는 오후 한나절이 으뜸이다. 마침 여객선의 대청도 도착 시각이 점심때이므로 오후 한나절 산행을 하면 각 명소마다 딱 알맞은 시간에 다다르게 된다.

대청도 삼서 트레일과 농여해변 트레일, 기름항아리바위 조망대 구경 등 대청도만 돌아보는 데는 1박2일이 좋고, 여기에 백령도 해안풍경 관광까지 겸한다면 2박3일 일정이 딱 알맞다. 여러 여객선이 인천항~소청도~대청도~백령도 구간을 매일 왕복하므로 언제든 날짜만 잡으면 된다. 다만 토~일요일 배편은 종종 만원사례이므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산악투어(02-730-0022)는 여객선 중 최고 속도인 하모니플라워호와 특약을 맺고 대청도 삼서 트레일 1박2일이나 대청도·백령도 2박3일 여행 상품을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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