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향〉[가수 겸 화가 조영남과 떠나는 별별 여행]강원도 태백 철암마을

2012. 12. 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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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안성기와 박중훈 불쑥 나타나 맞짱 뜰 것 같은 그 곳

광부들의 고된 삶이 스며 있는 철암은 '추억의 공간'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가수 조영남은 "과거의 시간'이 온전하게 살아 있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철암마을 상가.

▲2년전 세시봉 공연 덕 인연 '정지된 시간' 고스란히 남아마치 외계 온 듯한 충격 탄광 문 닫으면서 어둠에 묻힌 철암상가들10일장이나 열려야 북적북적 시에서 '조영남 미술관' 추진도

"철암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외계'에 온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과거의 시간'이 온전하게 살아 있는 마을이 아직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죠. 한적한 분위기는 시간의 흔적이 지워진 듯했고, 순박한 주민들은 별천지에서 온 사람들 같았어요."

가수 조영남이 강원도 태백의 철암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년 전이다. '세시봉' 공연차 들른 마을에서 그는 번갯불에 맞은 듯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5년 전 태백을 방문했을 때는 존재조차 몰랐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절친'이 다섯 명이나 생겼다고 자랑했다.

협곡을 끼고 영동선 철로를 따라 철암마을로 간다. 화물열차 꽁무니를 좇아 마을로 들어서자 무채색 세상이다. '철암(鐵巖)'은 이웃한 백산동과 경계를 이루는 철도변에 거대한 쇠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 그 옛날에는 이 바위를 쪼개 녹여서 쇠를 얻었다고 한다.

연화산·백병산·두골산을 사방에 두른 마을은 쇠락한 탄광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광부들의 고단했던 인생 흔적이 저탄장의 석탄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태백은 '성스러운 도시'입니다. 우리 조상인 단군에게 제를 올렸던 천제단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죠. 이 땅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철암마을은 그래서 더욱 인상 깊습니다."

조영남은 "시간을 거스르는 과거의 흔적이 아련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철암은 새뜨리(상철암)와 새터(철암)를 합친 산골마을이다.

새터는 다시 피냇골과 삼방동, 남동으로 나뉘고 마을을 상징하는 철암역은 철암역두선탄장(국가등록문화재 21호)을 끼고 있다. 비축용 석탄이 산처럼 쌓인 저탄장 아래 회색 건물이 선탄장이다. 영화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에서 박중훈과 안성기가 '맞짱'을 뜬 유명한 곳이다.

한때 이곳 선탄장에서 실어 간 석탄이 전국 각지에서 불을 밝혔고, 돈을 쫓아 전국에서 광부들이 몰려들었다. "지나가는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지금은 장성광업소만이 맥을 잇고 있어 당시의 영화는 마을 벽화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마을 벽화.

"마을에 그려진 벽화에서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때는 잘나가던 마을이 쇠락한 폐광촌으로 바뀌었지만 낡고 헐은 모습이 오히려 마을의 재산입니다."

조영남은 "마을을 제대로 보존한다면 그 어느 관광지보다 가치가 높을 것 같다"고 말했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철암역과 마주한 상가들은 1980년대 간판을 훈장처럼 달고 있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흥청대던 유흥가와 식당은 사라졌다. 철암천을 끼고 있는 철암시장은 서너 명의 할머니들이 좌판에 푸성귀를 펼쳐놓고 있을 뿐 어둠에 묻혀 쓸쓸하다. 10일장이 열려야 그나마 활기가 돈다. 한때는 넘쳐나는 돈을 잡기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3만 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3000여명의 주민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전체가 1970~1980년대 세트장 같다.

삼방교를 건너 삼방동으로 가자 산비탈에 터를 잡은 판잣집이 위태롭다. 삼방동은 과거 사택이 몰려 있던 곳. 닭장처럼 붙은 판잣집은 비좁고 낮고 춥고 습하다. 사람들이 떠난 집에는 닭이나 개가 산다. 이 마을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파고들면 영락없는 추억 여행이다.

철암시장.

철암은 비가 오면 집안에 있어도 얼굴에 검은 가루가 묻어났던 동네다. 지금은 철암천에 맑은 물이 흐르고 서울보다 공기가 깨끗하다. 깨끗해진 만큼 살기는 어렵다. 특산물을 재배할 땅뙈기도 없다. 비탈진 산을 다듬어 텃밭으로 쓸 뿐이다. 그것도 넉넉하지 않다.

철암에 사는 김영자 할머니(75)는 "고향 동해를 떠나 스무 살에 이 곳에 와서 2남1녀를 키웠다. 자식을 따라 서울 생활도 해봤지만 그래도 이곳 철암이 내가 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냇골 계곡에 자그마한 텃밭을 갈아먹는 재미로 산다"고 말했다.

철암역.

철암은 바다와 이름난 산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다. 눈이 홀릴 만한 황홀한 자연도 없다. 교통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유명인의 고향도 아니다. 한때 석탄으로 황금기를 맞았던 동네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성광업소도 시한부다.

광부들의 고된 삶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이곳에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바로 '추억' 때문이다.

조영남은 "철암마을을 처음 대했을 때 시간이 붕 뜬 느낌이었다"며 "'정지된 시간'이 바로 이곳의 매력이고 관광 자원이고 재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도 좋지만 보존으로 인한 부가가치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철암천과 상가.

철암은 없는 것도 많지만 가진 것도 많다. 석탄 관련 산업 유산들이 남아 있고 산업 시대의 삶을 증거하는 천변의 상가와 광부들이 살던 집들이 살아 있다. 석공 아파트도 남아 있고 철암역 연립 상가도 그대로다. 저탄장과 경석장은 거대한 설치 미술을 보는 것 같고 상철암은 목가적인 풍광이 아름답다. 또 철도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선사한다.

현재 태백시에서는 '조영남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여러 지자체에서 미술관 건립을 제의했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조영남은 "화가로서 개인 미술관을 갖는다는 것은 더없는 행복"이라며 "그것도 전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인 태백에 생긴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했다.

"결국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은 다 이룬 셈입니다. 미술관이 생기면 아마도 태백과 철암마을을 뻔질나게 드나들 게 뻔하죠."

독서와 그림 그리기가 취미라는 그에게 여행에 대해 물었더니 "따로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니지는 않는다. 지방 공연이 많아 나에게는 그 자체가 여행"이라고 했다. 또 "지방 공연 때마다 새로운 문물과 세상을 익히는 방식을 터득한다"고 덧붙였다.

철암에는 철암을 떠날 수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홀로 사는 이가 많다. 현재의 철암을 있게 한 이들이 현재의 철암을 지탱하고 있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철암천에 노을이 진다. 촌로의 얼굴에도 붉은 꽃이 핀다.

■찾아가는 길: 서울→영동고속도로→제천→38번 국도→영월→정선→31번 국도 구문소 방면→철암마을

■주변 볼거리: 태백체험공원, 단종비각, 석탄박물관, 검룡소, 용연동굴, 황지연못, 구문소, 삼수령, 추전역 등

■맛집: 정원(코다리순대, 033-553-6444), 태백한우골(033-554-4599), 허생원먹거리(감자수제비, 033-552-5788), 승소닭갈비(033-553-0708), 산골식당(033-553-7676), 너와집(033-553-9922), 구와순두부(033-552-7124) 등

■축제: '제20회 태백산눈축제'가 1월25일~2월3일까지 태백산도립공원과 오투리조트, 황지연못, 태백 시내 일원에서 열린다. '눈, 사랑 그리고 환희'를 주제로 열리는 올해 축제는 총 58점의 눈조각을 전시하고, 개막식에 이어 톱가수 10팀이 참여하는 축하공연이 열린다. 이외에 대학생눈조각경연대회, 태백산눈꽃등반대회, 이글루까페, 눈미끄럼틀, 얼음미끄럼틀, 스노래프팅, 눈 미로, 개썰매(사진) 등 눈과 얼음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숙박: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50-2849), 태백산민박촌(033-553-7460), 하이원리조트(1588-7789), 은경이네 펜션(033-554-4732), 청뜨리(033-581-5371), 바디너와집(033-552-7585) 등

■문의: 태백시 관광문화과 (033)550-2081

< 태백 | 글·사진 윤대헌 기자 caos999@kyunghyang.com >모바일 경향 [ 경향신문| 경향뉴스진] | 공식 SNS 계정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 ⓒ 스포츠경향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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