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향〉[제주올레 이사 서명숙과 떠나는 별별 여행]대구올레 6코스

2012. 12. 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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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름 닮은 고분 파고들자..삼국시대 낭자 된듯 콩닥거렸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55)는 대한민국에 '걷기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곧 생활이다. 육지로 특강을 나갈 때나 해외 출장지에서도 시간을 따로 내서 여행길에 나선다. 렌터카나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다니는 여행이 아니다.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고, 사람 사는 모습을 코앞에서 관찰하는 걷기여행이다. '걷기여행이야말로 가장 느리고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가장 알찬 여행'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길치'란 사실이다.

서 이사가 추천한 '대구올레' 역시 걷기여행지다. 제주 '올레'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일한 걷는 길. 서 이사는 "대구올레는 제주올레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어 '올레'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며 "대도시에도 올레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 조성한 대구올레는 총 8코스다. 이중 서 이사는 6코스가 가장 인상 깊다고 했다. 왜일까.

▲봄엔 꽃피고 가을엔 억새 우는 고분길,들쭉날쭉 호수 벗삼아 걷는 단산지길,담장 위 감나무 정겨운 봉무동 마을길…"대도시에 올레길이 가능할까 싶었는데10분 걷고나선 감탄으로 바뀌었죠"

"2년 전 봄, 6코스 개통에 맞춰 대구를 방문했는데 차가 너무 막혔습니다. 자동차로 꽉 찬 도로 위에서 '이런 곳에 길이 제대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불과 10분 후 제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았죠. 고분길에서 시작해 저수지를 에둘러 봉무동까지 가는 동안 '역사의 향기가 스민 예쁘고 아름다운 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6코스는 도심 속 청량한 옹달샘 같은 길이다. 불로동고분군에서 단산지와 봉무동 마을길을 거쳐 강동 새마을회관까지 6.8㎞. 3시간 정도 걸린다. 산과 들, 저수지와 마을을 끼고 가는 길은 알토란 같은 문화유적을 품고 있다. 불로동고분군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단산지는 자연을 읊조린다.

출발점은 불로동고분군 주차장. 불로동은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다. 왕건이 견훤에 패해 이 마을에 오니 어른들은 다 피란가고 '늙지 않은' 어린아이들만 남아 있어 '불로동(不老洞)'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분길은 구불구불하다. 무덤과 무덤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간다. 파고들수록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서 이사는 "고분길에 들어섰을 때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천년 세월을 거슬러 마치 삼국시대의 낭자가 된 기분이었죠. 고분의 생김새도 제주의 작은 오름을 닮아 느낌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5~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은 214기. 그 옛날 이 지역을 지배하던 세력의 무덤들이다. 무덤의 지름은 15~20m, 높이는 4m 정도. 시간을 거스르는 고분길에는 철 지난 억새가 바람 끝에서 무너지고 일어선다.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 김경자씨는 "고분군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특히 봄이면 금계국이 꽃을 피워 길손을 반기고 가을이면 억새가 운치를 더해준다"고 말했다.

단산지길

대구 시가지가 한눈에 잡히는 둔덕에 올라 잠시 상념에 빠진다. 무덤 속 주검들은 한 시대를 지배하며 어떤 꿈을 꿨을까. 고분군 끄트머리 솔밭을 지나 마을로 내려선다. 경부고속도로 고가 밑을 통과하면 봉무동고분군이다. 안내판에는 '동서 600m, 남북 300m 넓이에 약 132기의 고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고분군을 끼고 영신초·중·고교를 거쳐 봉무공원으로 간다. 이곳에 단산지(丹山池)라는 저수지가 있다. 감나무를 삥 두른 저수지는 일제 때 만들어진 것. 길은 저수지를 바짝 끼고 간다. 흙과 낙엽을 밟고 가는 오솔길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스는 3.9㎞. 이곳에 생태학습관과 무궁화원, 나비생태원이 있고 여름에는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어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서 이사는 "단산지 길은 리아스식 해안처럼 들쭉날쭉하고 호수를 바로 옆에 두고 걸을 수 있어 참 예쁘다. 당시 이 길을 걸을 때 동행했던 한 분이 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는데 그 감동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말했다.

6코스는 단산지 순환길 중간 지점에서 우측 산길로 빠진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만보산책로'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능선을 가로질러 마을로 내려서면 봉무동마을. 산 밑에 나지막이 엎드린 마을은 집집마다 감나무와 탱자나무가 길손을 반긴다. 담장 너머로 내민 붉고 노란 열매가 탐스럽다.

서 이사는 "봉무동마을은 제주의 산간마을처럼 포근하고 정겹다. 담장 밑으로 고운 얼굴을 내민 이름 모를 야생화도 아름답고, 대도시 인근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마을 끝 종착 지점인 강동 마을회관에 이르자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올레길을 걸어 온 것 같은데, 참 예쁘지 않느냐"며 말을 건넨다. 회관 앞에는 서로 의지하듯 늙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잠시 발품을 쉰다.

마을에서 큰 길로 나오면 파군재 삼거리다. 왕건이 견훤에 패한 곳이라 해서 이름이 '파군(破軍)'이란다. 차도를 건너면 공산 동수전투 때 견훤을 피해 도망가던 왕건이 잠시 앉아 쉬었다는 거대한 바위 '독좌암'이 천변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왕건은 아마도 이 바위에 앉아 절치부심하며 훗날을 기약했으리라.

최근 제주 올레 완전 개통을 마무리한 서 이사에게 여행의 의미를 묻자 "여행은 나에게 '삶의 학교'다. 한정된 공간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과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만남, 뜻밖의 만남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심신을 치유하고 정신을 채운다"고 말했다.

봉무동 마을길

제주 서귀포 출신의 서명숙 이사는 2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2006년 돌연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났고, 귀국 후 5년간 제주 올레를 만드는 데 몸과 마음을 바쳤다. 사람들 사이에서 '길 내는 여자'로 불리는 그녀의 이후 계획은 무엇일까.

"지난 5년간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이제 올레도 완전 개통됐으니 한시름 놨고 가파도에서 올해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올레 10-1코스를 천천히 걸으며 저 자신한테 휴가를 주고 싶습니다. 휴가를 보낸 뒤 내년에는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방문하고 쿠바에서도 한 달 정도 체류할 생각입니다. 먼 훗날에는 가파도에 정착해 테이블 하나짜리 레스토랑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저 멀리 비슬산으로 해가 진다. 천변을 훑고 지나온 바람 끝이 제법 차갑다. 새하얀 눈을 소복하게 뒤집어 쓴 고분군과 오솔길은 또 얼마나 예쁠까.

■찾아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북대구IC

■주변 가볼 곳 : 도동서원은 서원 건축미의 백미로 꼽힌다. 조선 5현의 수장(首長)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은 강당과 사당, 담장(전국 최초)이 보물로 지정됐다. 제자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돌로 석축을 쌓은 모양새가 독특하다. 이외에 팔공산 갓바위, 비슬산, 근대문화골목길, 인흥마을, 동화사, 도동측백나무숲, 용연사, 녹동서원, 옻골마을, 신숭겸장군유적지, 방짜유기박물관, 시민안전테마파크 등

■맛집 : 원조 현풍 박소현 할매곰탕집(곰탕, 053-615-1122), 벙글벙글식당(육개장, 053-424-7745), 연향이 머무는 뜨락(연잎밥, 053-981-8200), 묵쳐서 먹고 가는 집(묵국수, 053-983-8184), 남문납작만두(납작만두, 053-257-1440), 고향손국수(손칼국수, 053-985-1050) 등

■대구올레 : 1코스 '북지장사 가는 길' 2.5㎞ 1시간30분 소요, 2코스 '한실골 가는 길' 10.9㎞ 3시간30분 소요, 3코스 '부인사 도보길' 9.8㎞ 3시간30분 소요, 4코스 '평광동 왕건길' 7.5㎞ 3시간 소요, 5코스 '구암마을 가늘 길' 6.7㎞ 2시간30분 소요, 6코스 '단산지 가는 길' 6.8㎞ 3시간 소요, 7코스 '폭포골 가늘 길' 8.2㎞ 3시간 내외, 8코스 '수태지 가늘 길' 7.1㎞ 2시간30분 소요

■숙박 : 호텔인터불고(053-952-0088), 대구그랜드호텔(053-742-0001), 팔공산온천관광호텔(053-985-8080), 약산온천관광호텔(053-616-1100), 팔공펜션(053-981-6688) 등

■문의 : 대구광역시 관광문화재과 (053)803-3881

< 대구 | 글·사진 윤대헌 기자 caos999@kyunghyang.com >모바일 경향 [ 경향신문| 경향뉴스진] | 공식 SNS 계정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 ⓒ 스포츠경향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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