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핫플레이스]인생을 즐겨라!..동대문 시장통

2012. 12. 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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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들이 점점 약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흥정을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배우려면 가정과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사실 시장을 자주 다니는 것도 실속있는 일이다. 그곳에서의 흥정은 눈치와 용기와 배짱과 거절과 연기와 막판뒤집기 등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데 더 없이 좋은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의 생각은 5분만에 달나라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빠르고 복잡했다. 이런 과정이 귀찮은 사람들이 백화점과 인터넷쇼핑을 키워냈다. 그러나 그러면서 사람들은 흥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수많은 삶의 원리를 놓치기도 한다. 천원을 깎으려고 하는 것, 천원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은 경제적 원인도 있지만 그런 일에 익숙해지면 그 상황을 즐기게 된다. 그래서 시장 상인들이 악착같고 돈도 잘 모으며 결국에 부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시장을 잘 다니는 사람 또한 상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시장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좋고 싼 물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살풍경과 밀당 과정에서 얻는 천원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마네킹 천국이라면 역시 시장은 사람의 천국이다.

시장의 즐거움은 이런 체험적 유희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시장보다 다양한 상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세상에 없는 게 없는 곳이 시장이다. 그 많은 물건들을 누군가 만들어 유통시키고 시장 안에서 팔고 사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시장이 우주요, 삼라만상이다. 청계천 공구상가에 가면 원자폭탄도 만들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며 실제로 청계천에서 부품을 구해 인공위성을 만들어낸 청년도 있다.

그러므로 이 겨울, 가슴을 펴고 시장에 나가 활기찬 군상을 만나보자. 당신도 모르게 뜨거운 에너지가 펄펄 끓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은 동대문종합시장, 평화시장, 그리고 우리나라 1호 시장 광장시장을 둘러본다.

만물이 모여있는 곳

동대문종합시장

흥인지문 건너편에 있는 동대문시장의 큰 형님이다. 일단 헛갈리는 부분부터 해결하고 가자. 동대문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은 다르다. 동대문시장이란 흥인지문과 청계천6가, 을지로6가에 이르기까지 이 일대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동대문종합시장'은 동대문시장 가운데 청계천6가와 종로6가(흥인지문 사거리) 사이에 있는 종합 시장을 말한다. 옛날 이곳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다. 그러다 터미널이 이사를 하자 그 자리에 이 시장이 생겼는데, 그때가 1970년도였다. 고층빌딩은 구경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새로 올린 동대문종합시장의 건물이 5층~7층이었고 건물에 입주한 가게가 5000개가 넘었다. 상인과 직원을 합한 수만 5만명. 시장은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 그냥 빌딩 구경 나온 어른 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렇게 40년 넘게 이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상품은 원단, 의류 부자재, 액세서리, 혼수용품, 커튼 등 인테리어 부자재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원단의 80%가 이곳을 거쳐간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할 수 있다. 이 원단 두루마리가 가게나 창고에서 자동차로 이동할 때는 어떤 수단을 사용할까? 컨베이어? 아니다, 지게꾼이 운반한다. 한때 우리나라의 모든 시장에 지게꾼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라졌는데 동대문종합시장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좁은 시장 복도와 계단으로 무거운 원단을 날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여전히 지게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풍경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섬유나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동대문종합시장은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원단부터 단추 등 패션 부자재까지 없는 게 없으니 그저 구경만 하고 다녀도 디자인 영감이 콸콸 솟구칠 정도다. 커튼 등 인테리어 소품 거래도 활발하다. 커튼 원단와 부자재를 고른 뒤 계산을 하면 주문한 사이즈에 맞춰 제작, 누구나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집으로 배달해 준다.

이곳에 가면 꼭 들려봐야 할 곳이 5층 액세서리 코너다. 핸드메이드 천국이라 불리는데, 로맨틱한 비즈 액세서리, 사랑스러운 퀼트, 각종 코르사주, 수제 인형 등 손으로 만든 모든 것이 이곳에 모여 있다. 원단 매매가 상인 대 상인의 거래라면 5층은 주로 개인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이유도 그것이다. 비즈와 퀼트는 수강 코스도 있으니 관심있게 들여다 볼만하다.

동대문 패션 메카의 뿌리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청계천 방향 건너편, 두산타워 바로 옆, 수십년 동안 똑같은 모습으로 하고 있는 길고 긴 평화시장이 있는 곳이다. 평화시장이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은 1962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난전이었는데, 난전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에도 징병제가 있었는데, 군대에 간 군인들 월급이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래서 조선 정부에서는 직업 군인들이 자신에게 지급된 군포의 자투리를 개인 소득용 사업으로 활용해도 눈 감아주는 제도 아닌 제도를 만들었다. 그들이 간단한 옷이나 각반 등을 만들어 내다 파는 것을 부분적으로 허용해 준 것이었다. 즉, 월급은 제대로 못주니 군포 자투리로 알바를 해도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군 사령부격이었던 훈련원이 지금의 을지로6가 일대에 있었고, 그곳으로 출퇴근하던 직업군인들의 집은 광희문 밖에 밀집해 있었다. 그들은 군포 자투리로 만든 생활 소품들을 정기적으로 내다 팔곤 했는데, 그때 난전이 열리던 곳이 바로 지금의 평화시장이 있는 청계천 일대였다. 그러니 평화시장의 출발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역사가 평화시장의 긴 골목만큼 긴 것이다.

1962년 이전의 평화시장 일대에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북한 출신 피난민들이 난전에 끼어들면서 그 규모도 더 확대되었다. 그들은 재봉틀 한 두 대를 마련해서 일상복을 만들어 팔거나 전쟁통에 민간으로 흘러나온 군복을 염색해서 판매해 생계를 이어갔는데, 억척스러운 그들의 상술이 가난한 시민에게 먹혀들면서 서울 최대 규모의 의류시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평화시장이라는 이름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당시 상인들의 마음이 담아 명명되었다.

오늘의 평화시장도 예전의 그곳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대문종합시장이 원단 중심의 시장이라면 평화시장은 주로 완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기 때문에 국내외 옷가게 주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없는 제품이 없다. 손수건부터 코트까지 세상의 옷이란 옷은 모두 이곳에 있다. 평화시장의 특징은 단체복 매장이 많다는 것. 유니폼, 대학교 학과 티셔트 등 단체복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장도 이곳에 가면 많이 만날 수 있다. 모자, 넥타이, 스타킹 등 의류 잡화점들도 즐비하다. 가격이 예술인 것도 평화시장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는 원인이다. 그렇다고 흥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100년 히스토리

광장시장

1905년 여름 광장시장이 문을 열었을 때 한양 사람들에게 광장시장은 경천동지할 대사건이었다. 아마 그것은 아이폰의 탄생 이상으로 혁신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시장의 형태를 바꿔놓은 최초의 시장이다. 광장시장 이전의 시장은 1일장, 격일장, 3일장, 5일장 등 시차를 두고 여는 방식이 전부였다. 그런데 광장시장이 최초로 상설시장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장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은 더 이상 손가락을 쥐락펴락할 필요 없이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그곳에 가서 물건을 사면 되었다. 판매를 주로 하던 사람들은 더욱 바빠졌다. 매일 좌판을 열어야 하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던 광장시장이 사라진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다시는 시장이 열릴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된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만든 장사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전쟁이 끝나자 다시 광장에 모여 폐허가 된 시장을 일으켰다. 당시 주요 거래 품목은 생필품과 군수품 등이었다. 우리가 구제하고 부르는 빈티지 스타일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의 일이다. 그 빈티지 시장은 지금도 광장시장의 중요한 물목 가운데 하나다. 빈티지 가게들은 시장 건물 2, 3층에 밀집해 있는데 그 수가 약 100여 곳에 이르며 주인들도 구제시장 시절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온 '인간 빈티지'들이다. 광장시장의 빈치지는 스웨터, 티셔츠, 청바지, 모피, 가죽, 가방 등으로 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이곳을 잘 뒤져보면 우리나라에서 구경할 수 없는 해외 명품 빈티지를 건질 수도 있다. 그런 보물을 손에 쥐는 순간, '심봤다'를 외치지 않으면 당신은 정말로 재미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빈티지 마니아, 패셔니스타,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서울의 멋쟁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빈티지 코너를 기웃거리며 매서운 눈을 굴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티지는 광장시장의 일부, 큰 규모로 거래되는 품목으로는 혼수와 원단이 있다. 한복을 맞추고 예단을 꾸리며 평생을 함께 덮을 사각사각 새 이불을 맞추는 곳도 바로 이곳 광장시장인 것이다.

국제적 명물 먹거리 '광장시장 먹자골목'

시장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먹자골목. 어린 시절 엄마 손잡고 와서 장 보고, 먹자골목 순대가게에 쪼그리고 앉아 순대, 간, 머리 고기 먹던 생각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렇지 않아도 유명한 이 먹자골목이 최근에는 청계천 특수에 서울 관광객 대거 유입 현상까지 겹쳐 일 년 내내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물이 되었다. 시장보다 더 즐거운 시장 풍경을 보이고 있는 이곳에는 고기, 해물 등 거창한 메뉴부터 간식에 이르기까지 없는 메뉴가 없다. 하루 종일 좌판 앞에 앉아 식탐을 내뿜고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는 낭만파 아저씨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골목 한쪽에 있는 꼬마김밥은 단무지, 당근을 넣은 밥에 평범한 김을 꾸깃꾸깃 만 것 같은데, 그 맛이 기가 막혀 일명 '마약김밥'이라 불리기도 한다. 중독성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광장시장 먹자골목에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김애진(사진가), 서울시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56호(12.12.1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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