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m 구간에 커피전문점만 21개..커피에 포위된 대한민국

2012. 12. 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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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홍성원ㆍ도현정ㆍ김현경 기자]대한민국이 커피에 포위됐다. 일부 핵심 상권은 30여m마다 한 개 꼴로 커피 전문점이다. 인스턴트 커피(커피믹스)시장엔 우유ㆍ라면 회사까지 출사표를 던졌다. 자영업을 염두엔 둔 서민도 소자본 카페 창업을 위해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담배에도 원두커피 가루가 들어가고 차량용 방향제 분야도 커피향 선호도가 높다.

조선말기 아관파천 때 커피를'가배(咖啡)'라고 칭하며 즐겨 마셨던 고종 황제도 사방이 커피로 둘러싸인 장면을 목격하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다. 문제는 3조~4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커피산업의 생명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다.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건 아닌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4일 헤럴드경제가 확인한 결과, 서울 지하철 강남역~신논현역에 이르는 750여m 구간엔 카페베네, 엔제리너스커피 등 커피전문점이 21개나 됐다. 단순 계산으로 브랜드를 불문하고 35.7m마다 한 개의 카페가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핵심 상권으로 분류되는 여의도 지역도 사정은 비슷했다. 여의도역~여의도우체국~한국증권거래소까지 700m 구간엔 커피전문점 숫자가 24개였다. 한 눈에 봐도 카페'포화상태'인데 도시락 사업만 하던 한솥도시락도 카페 프랜차이즈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기하급수적인 카페 증가세의 불은 1999년 국내에 진출한 스타벅스(직영점 460여개)가 당겼다. 이후 카페베네(835개ㆍ직영과 가맹점 포함), 이디야커피(767개), 엔제리너스커피(760여개), 할리스커피(396개), 탐앤탐스커피(350개) 등이'점포수=사세'라는 등식으로 추가 출점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브랜드는 각양각색이지만, 차별화 노력은 미미한 걸로 분석된다. 본지 조사결과, 국내 커피 전문점의 메뉴 중복비율은 48~89%에 달했다. 예컨대 커피(에스프레소 기반)를 이용한 커피메뉴는 커피빈의 경우 27개였지만, 다른 커피 전문점과 똑같은 메뉴가 15개(55.5%)나 중복됐다. 회사원 김동국(37)씨는 "사실 어딜가나 똑같은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하는데 가격은 조금씩 달라 의아하긴 하다"면서도"버릇처럼 카페에 가고 있다"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이런'카페 버블'을 견제할 방안을 발표한 것도 '비정상적'이라는 상황 진단을 해서다. 가맹점수 100개 이상ㆍ커피사업 매출액 500억원 이상인 5개 브랜드(카페베네ㆍ엔제리너스ㆍ할리스ㆍ탐앤탐스ㆍ투썸플레이스)는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기존 가맹점에서 반경 500m 안엔 신규 출점을 금지키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의 카페 개설 의지는 꺾일 줄 모른다. 지난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막을 내린 '서울카페쇼'는 카페 창업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행사로, 올해 7만2000명의 관람객이 찾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 관계자는 "카페 창업을 위한 모든 걸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관람객이 지난해보다 1만명 이상 늘었다"며 "일반 대학생, 여성 직장인이 특히 많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수입해 들여오는 원두가격에 비해 마진이 많이 남기 때문에 커피전문점이 증가하는 것 아니겠나"며 "이젠 비수도권으로 프랜차이즈 출점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한국이 기술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커피믹스 시장도'빅뱅'이다. 커피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커피시장 규모(원두커피ㆍ커피믹스ㆍ커피음료 포함)는 물량기준으로 234억7100만잔. 이 가운데 커피믹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79.6%(186억8600만잔)으로 압도적이다. 이 때문에 커피믹스 시장은 신규 업체의 진출로 외형상'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전통의 동서식품(맥심), 네슬레(테이스터스초이스)에 이어 남양유업(프렌치카페), 롯데칠성음료(칸타타)를 거쳐 서울우유, 농심 등이 조만간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출혈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커피믹스의 히트상품 기준은 시장점유율 10% 달성인데, 이걸 넘기기는 매우 힘들다"며 "현재로선 동서식품과 남양유업 외엔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커피믹스 신규 진출업체의 상당수는 엄청난 양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는 한국적 상황에서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ㆍ기술투자가 충분히 뒤따를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을 한다.

박은아 대구대 교수(심리학)는 "한국인은 커피를 멋으로 여겨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듯한 느낌으로 '작은 사치'는 해도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커피는 문화코드가 됐기 때문에 소비행태의 긍ㆍ부정을 평가하긴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KT&G가 담배필터에 커피 원두 알갱이를 첨가시켜 커피향이 나도록 만들어 지난 7월초 내놓은'레종카페(6㎎)'가 큰 인기를 얻어 출시 130여일만에 1143만갑이 팔리고, 대형마트에서 커피향 차량용 방향제가 꾸준히 판매되는 것 등이 문화로서의 커피 소비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산업 측면에서 커피가 정점을 찍고 내려올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은아 교수는 "커피가 중독성 있는 상품이어서 단기간에 영향력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커피를 대체하는 문화가 나올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홍성원ㆍ도현정ㆍ김현경 기자/hongi@heraldcorp.com-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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