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넘게 지난 오늘, 과연 그는 용서받을 자격이 있나

2012. 12. 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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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준수 기자]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26년 > 에서 심미진 역을 맡은 배우 한혜진

ⓒ 청어람

웹툰작가 강풀의 동명작을 영화화한 < 26년 > 이 지난 11월 29일 개봉했다. 통장잔고가 29만원이라면서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개봉날짜조차도 그냥 넘겨볼 수 없는 이 영화.

개봉 직후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 30일까지 이틀 만에 동원된 누적관객이 30만명에 육박하며 흥행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영화의 소재 때문이라는 소문과 함께, 캐스팅부터 모든 제작과정이 처음부터 다시 진행되어야 했던 사정이 있었던지라 개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던 영화 < 26년 > . 이 영화가 가진 의미와 아쉬운 점을 짚어보려고 한다.

'그 사람 단죄', 영화라서 가능한 발칙한 상상

< 26년 > 은 공포영화를 방불케하는 충격적인 장면들로 막을 올린다. 얼마간 스크린으로 흘러나오던 평화로운 시민들의 일상은, 갑작스럽게 날아든 총탄에 산산조각난다. 동생과 외출나온 누나,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 군인들의 탱크와 총칼 앞에서 순식간에 그들의 행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듯이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피범벅이 된 시신들이 쏟아진다.

영화는 1980년의 그 사건으로부터 26년이 지나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모여 '그 사람'을 직접 처단하기로 계획하는 아찔한 상상을 소재로 삼았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아 독재를 펴고, 이에 저항하던 무고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람. 그럼에도 사면받아 죗값을 다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된 사람. 그리고 지금껏 수 많은 경찰병력과 경호원의 보호 속에서 호화로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

처음에 주인공들은 '암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하기 전에 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참가한 사람들 간의 의견이 달라지며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과할 기회라면, 이미 수십년간 주었던 걸로 생각하는데."

결국, 주인공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은 채로 살아온 '그 사람'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그의 목숨을 빼앗는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과연 이들은 수 많은 난관을 뚫고 그 뜻을 이룰 수 있을까.

▲ 영화 < 26년 >

영화 < 26년 > 의 포스터

ⓒ 청어람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개봉...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의미라면, 개봉에 투자한 수 많은 시민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 26년 > 은 이미 예전에 배우 캐스팅과 준비를 마치고 촬영에 들어가기로 했었다. 당시에도 인기작가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갖고 기대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촬영은 갑작스럽게 불명확한 이유로 무산되었고, 일각에서는 소재가 그 이유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현재 생존해있는 권력자를 처단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인만큼, 투자한 사람들이 압박을 받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화제작이 좌절된 후에도, < 26년 > 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이 태어났다. 시민 개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국민펀드 형식으로 제작비 지원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펀드는 모금시작 2일 만에 1억원을 돌파하며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을 드러냈고, 결국 7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모금액 덕분에 무사히 영화제작이 시작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검은 화면 위를 오르는 자막에는 이 펀드에 참여한 수 많은 시민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다름아닌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였던 것이다.

개봉시기도 적절하다는 평이다. 올해인 2012년, 영화의 소재가 된 전 대통령이 군사반란의 주동자였음에도 국군의 사열을 받았던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그 후에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핑계로 횡령에 대한 추징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음이 뉴스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약 1600억 원에 달하는 미납된 추징금의 시효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으로 다가온 것도 이슈가 되고 있다. 조용히 잊혀지기를 원했을지도 모를 당사자로선 영화 개봉 자체가 뜨끔할 일 아닐까.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 사람'을 제거하려는 이유가 모두 지나치게 감정적인 복수심이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처벌되지 못했기에 극단적 방법을 쓰자는 그들의 주장은 영화적 상상으로 이해하더라도, 영화는 '역사적 죄인'을 처벌하는 일을 가족의 희생에 분노한 '개인의 복수'로 오해받을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비록 '암살계획'을 주도하는 사람이 '단순 희생자'가 아니라 '당시 계엄군'이라는 설정은 좋았지만, 그 외 인물들이 모두 '광주 사람들'이라는 설정은 자칫하면 당시 사건을 '독재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항거'가 아닌 특정 지역의 일인 것처럼 축소되고 왜곡된 해석을 낳을 우려도 있다. 물론 이는 제작진이 의도한 바가 아니겠지만, 지역감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서는 '독재세력 단죄'가 결국 '그들만의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 천만관객 넘어선 대흥행을 바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영화 < 26년 > 이 개봉 초반의 돌풍을 이어서 천만관객 이상 대기록을 세우는 흥행작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영화로서는 부족한 점도 보일지라도, 그것을 배우들의 열정적이고 뛰어난 연기력이 충분히 만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구와 한혜진 등 주연들의 사투리 연기는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주며, 심각한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중간중간 소소한 유머 역시 빠지지 않는다.

또한, 이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시민들의 참여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국민펀드 모금 당시와 이후 온라인에 관련글들을 보면, 참여한 사람들 다수가 단순히 금전적인 목적의 투자가 아닌, 감동적일 정도로 작품 자체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거대한 기획사의 이윤에 맞는 작품 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작품이 제작·상영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원작웹툰의 작가 '강풀'이 말했듯이 < 26년 > 은 '문화적 처벌'의 성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의 당사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권력을 놓지 않고 있으며, 당시 사건을 반성하지 않는 듯 하다. 되레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날 너무 싫어해.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하고 뻔뻔스러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화의 힘이란 이런게 아닐까. 당해보지 않아도, 영화에서 묘사된 것으로 보고 들으며 알 수 있다. 실제로 관람 당시, 객석의 많은 관객들은 대부분 20~30대 젊은 층이 많았다. 그들의 말처럼, 젊은 세대는 그 끔찍한 일을 당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할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극장으로 발길을 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독재정권에 대한 질타에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들, < 남영동 1985 > 에 이어 < 26년 > 에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은, 마치 그들에게 되묻고 있는 듯하다. 독재세력들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과연 용서를 해야하는지를.

당장의 비판이 불편하더라도, 숨김없이 모두 드러내고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는 말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 지금 국민들의 평가가 곧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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