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만든다고 오타쿠 아닙니다"..순수한 취미일뿐

김참 기자 2012. 12.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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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로망에서 성인의 취미생활로 세월 뛰어넘다 마니아 층 거느린 '건담 프라모델'

70~8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남자들에게 로봇은 일종의 로망이었다. 비장한 모습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로봇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로봇을 조립해 만드는 프라모델은 이런 남자들의 로망을 현실로 바꿔주는 수단이었다. 집에 온 손님에게 뜻하지 않게 용돈이라도 받게 되면 부리나케 뛰어나가서 샀던 것도 당시 좋아했던 로봇 프라모델이다.

프라모델 중에서도 '건담 프라모델(건프라)'은 어린 시절 추억에 그치지 않고 현재도 성인들의 취미생활로 자리매김하며 마니아층을 대거 거느리고 있다. 민봉기 민플러스치과 원장도 건담 마니아중 한명이다. 건프라를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민 원장은 초고수로 통한다.

민 원장은 지난 2005년 반다이에서 주최한 한국 건프라 콘테스트에서 1위를 했으며, 홍콩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도 입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민봉기의 건프라월드' 카페 회원수는 5만명이다. 프라모델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대다수가 가입하는 대표 카페인 것이다. '민봉기의 건프라월드'는 매년 프라모델 대회를 개최해 등수별로 상품을 줘왔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경기 상황이 어려워진 만큼 대회를 개최하기보다는 '건프라월드 결식아동돕기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12월 15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결식아동돕기 바자회에서는 프라모델 경매도 진행되는데, 민봉기 원장의 작품도 경매에 내놓을 예정이다. 또 건프라월드 운영진과 함께 유니콘건담 4화에 나오는 내용을 재현한 디오라마(영화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재현한 작품)가 최초로 공개된다.

"원래 게임과 만화를 좋아했어요. 건프라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10년 정도 됐습니다. 작업기간은 하나 만드는데 2~3달은 기본이고, 오래 걸리는 것은 1년도 넘게 걸립니다."

민 원장이 프라모델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유는 군 복무 기간에 보건소에서 손을 쉴 수가 없어서다. 치과대학 중에서도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구강외과를 전공으로 하다 보니 손가락을 쉬지 않고 계속 사용해야 돼 뭔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프라모델이었다. 여느 남자아이들과 같이 어릴 때 조립식 완구를 만들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란 얘기다.

그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것이 계기가 돼, 보건소에서 군목무를 하던 시절 프라모델에 빠져들었다"며 "부품들을 자르고 붙이는 모형 제작은 좁은 공간에서 고압의 장비로 치료하는 치과의사 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치과 개업 준비기간 동안 반다이에서 주최한 2005 한국 건프라 콘테스트에서 1위를 한 것이 그의 유명세에 탄력을 불어넣어 줬다. 이후 인터넷으로 만든 작품을 사진으로 올리면서 회원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건프라 제작기의 전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서 회원들이 모여든 것이다.

민봉기의 건프라월드는 사실 민봉기 원장이 개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전자앨범에서부터 시작됐다.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실수했던 경험, 좋았던 경험을 올려놓자 자연스럽게 댓글이 달린 것이다. 그것이 '민봉기의 건프라월드'의 시작이었다. 이후 조그마한 서버샵으로 운영하다가 8000여명의 회원이 몰린 이후에는 다음카페로 옮겨왔다. 그는 "내가 잘하는 사람이라 사람들이 몰린 것이 아니라 '철물점 락카에서 색을 칠하고 다 녹았습니다'와 같은 실수담을 올리니 사람들이 공감해서 댓글을 달고 같이 성장해간 것"이라고 말했다.

민 원장은 프라모델을 만드는 일을 '종합예술'로 표현했다. 그는 "몇몇 사람들은 프라모델을 일본을 따라 하는 행동 혹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프라모델은 할수록 수준이 높아진다"며 "공산품에 혼을 넣는 작업이다"고 말했다. 단순히 설명서를 읽고 스티커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먹선을 어떻게 표현하고 자석을 더할 것인지, 녹슨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석고를 어떻게 접층시킬지 등을 고민하는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초고수로 통하는 그지만, 스스로는 고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민 원장은 "나는 프라모델의 초고수가 아닌 건프라 정보공유의 최고수"라며 "실패담도 공유하고, 정보공유를 통해 강의하는 등 내가 배우고 습득한 것을 나누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카페 회원들이 그를 '민봉기씨'가 아니라 마치 사부를 대하듯 '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속적으로 해왔던 정보공유 때문이다.

그는 건프라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 것에 대해 행운이라고 했다. 민 원장은 "치과의사들도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 이를 해결할 취미가 필요하다"며 "좁은 공간에서 고압의 기계들을 다루는 스트레스를 프라모델 만들기와 같은 취미를 공유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카페 회원들의 대부분은 여타 커뮤니티와 달리 30대와 40대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직업군도 매우 다양하다.

다만 카페운영과 건프라는 순수한 취미일 뿐,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일부 협찬 제품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한국 업체와 함께 제품 개발 과정에서 조언을 해주고, 노하우를 전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도료나 프라모델을 만드는 국내 업체의 경우 함께 제품개발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건프라월드에 사용한 국산이 일제보다 좋다라고 한마디 해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국내 업체의 경우 기술력은 이미 일본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국내 캐릭터산업이 약해서 제품이 다양하지 못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프라모델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봐달라고 당부했다.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프라모델만 하는 오타쿠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희도 다들 나름의 직업을 가지고 순수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하하."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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