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한 그 기상, 가슴이 쫙 펴진다

2012. 11. 1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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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은사지

누군가는 그 길에서 첫사랑을 만났다고 했다. 초겨울 날씨처럼 스산하고 황량했던 청춘의 나날이라 했으니 딱 요즘 같은 때를 말하나 보다. 가늠되지 않는, 으슬으슬한 한기가 가슴팍으로 마구 밀치고 들어오는 때가 요즘이니, 그래 그 놈의 청춘이 어땠는지 대충 짐작된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견딜 수 없어(그 시절 그렇지 않은 청춘들이 몇 있었으랴마는) 무작정 길을 떠났고, 낯선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파도만 바라보며 앉아 있길 여러 나날. 어느 날은 하마터면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질 뻔한 유혹도 있었다고 한다. 물거품으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자신도 그렇게 가뭇없이 사라지고 싶었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어망 손질하던 늙은 어부에게 불려가 일손을 도와주고, 대구탕에 곁들인 금복주 한 잔에 취해 이리저리 허위적허위적 걸음을 옮겨 놓다 그를 만났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꿋꿋하게 선 채로 바라보고 있는.

취했나. 머리를 흔들며 다시 바라보았다. 분명 빈 언덕인데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세찬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술이 깨는지 으스스한 한기에 몸이 움츠려들었다. 취기가 아니라면 어둠탓일 게다. 언제 날이 저물었는지 불빛없는 들판엔 벌써 어둠이 무릎까지 내려앉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문득 들었다. 자신은 취했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지도 없이 허위허위 가고 있던 자신의 무모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감포항으로 가야겠다 마음먹고 발길을 돌리는데, 예의 그 뜨거운 시선이 뒤통수에 매달려 옴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아아...'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신음같은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한동안 망부석처럼 선 채 그 눈길을 받았다. 뜨겁다고 생각했던 건 잘못이었다. 오장육부를 깡그리 꿰뚫어 보는 듯한 맑디 맑은 시선이었다. 천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담담함이었다. 아니다. 이 모든 표현이 구차하고 그냥 시공을 초월한 어떤 순간이었다.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위치한 감은사지 석탑과의 첫 만남을, 누군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스무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그 곳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온다는 그 어떤 이의 첫사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삶이 버겁고 힘들 때면 그 곳을 찾아가 말없이 바라보고 돌아온다고.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그 기운을 마주하고 나면, 힘든 세상사도 다 그런 게 아니냐며 너털웃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고.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빈 들판 언덕 위에 서 있는 감은사지 석탑을 그는 다시 떠올린다. 매운 바람에도 꼿꼿한, 기품 넘치는 그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쫙 펴진다.

신라 신문왕 2년(682년)에 세워진 감은사지 석탑은 2기의 탑이 동서로 마주 서 있다. 화강암 이중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方形) 중층(中層)의 탑으로, 동서 양 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인다. 탑의 전체 높이는 13.4m.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은 생전에 경주로 통하는 동해 어귀에 절을 짓고 싶어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했다. 신문왕은 문무대왕이 죽어 용이 되어 여기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감은사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용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감은사터 초석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맛집

문무대왕릉에서 감포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고래등횟집(054-771-8796)이 보인다. 자연산 바다 회와 참전복, 성게 등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방파제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어 앞바다를 오가는 고기잡이배와 낚시꾼, 해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망도 갖췄다.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에서 경주로 진입하되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4번 국도를 타고 감포쪽으로 간다. 추령터널 지나 어일 3거리에서 우회전해 지방도 929번을 타면 왼쪽으로 감은사지가 보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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