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떠난 섬, 바람과 전설만 남았네..제주 차귀도를 가다

2012. 10. 18. 09: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글ㆍ사진 박동미 기자]'섬 속의 섬'을 탐방하는 일은 제주도 여행의 백미다. 두 곳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있는 우도,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산이 날아와 만들어졌다는 비양도, 일본 낚시꾼에게도 인기 높은 추자도…. 제주도가 품은 또다른 섬은 각양각색 매력으로 뭍사람을 유혹한다. 바람이 주인인 섬도 있다. 지난해 11월 30여년 만에 개방된 차귀도(제주시 한경면 고산리)는 제주도 내 가장 큰 무인도다. 사람이 아니라 초속 9.6m의 강풍이 주인이다. 어찌나 센지 억새밭은 아예 드러누운 형상이다. 수십년 전 비옥한 땅을 일구며 3가구가 오순도순 살 땐 돌담만 세우면 '내 땅'이고 '내 집'이었다. 친인척 사이라서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 않고 살았다고 하니 '에덴동산'이 따로 없다.

▶사람 떠난 섬…바람과 풀, 해녀의 이야기

=중문단지에서 서북 방향으로 20여분을 달려 고산리 자구내 마을에 도착했다. 하늘이 이미 푸를 만큼 푸르다. 빨래처럼 널려있는 한치는 바람에 몸을 내맡겼다. 모두 맛깔스러운 모습으로 변신 중. 보트를 타고 3분 만에 차귀도에 닿았다. 섬에는 바람과 풀, 그리고 전설만 남았다."배추도 무도 싱싱하고 맛있고, 모슬포항에서 제일 비싸게 팔린 야채는 다 차귀도 거였어요. '재미있게 잘산다'고 소문나니까 마지막엔 8가구까지 늘어났대요."차귀도 안내를 맡은 문화해설사 고춘자(여ㆍ60) 씨의 말이다. 고 씨는 고산리에서 25년간 오징어를 말렸다. "오늘 같은 날은 오징어가 참말로 잘 마른다"며 날씨 칭찬을 했다. "차귀도에 들어가기에도 가장 좋은 날"이라며 탐방객을 설레게 한다.차귀도는 대섬, 지실이섬, 와도 세 개의 섬과 수면 위로 솟은 여러 개의 암초로 이루어졌다. 바위마다 낚시꾼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차귀도 인근은 소문난 낚시터. 참돔ㆍ돌돔ㆍ흑돔ㆍ자바리 등이 잘 잡히고, 쿠로시오 난류와 쓰시마 난류가 나눠 흐르는 지점이라 형형색색 희귀 어종도 많다.탐방로를 따라 10여분을 올라가니 저멀리 자구내 포구가, 가까이에 지실이섬(매바위)과 만삭의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을 한 와도가 한눈에 보인다. 매바위는 방향에 따라 독수리로 보인다는데, 매나 독수리나 범인의 눈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차귀도 대섬엔 억새가 한창이다. 작은 언덕과 벌판이 이어지고 섬 중앙은 오래전 마을주민이 쌓아올린 하얀 등대가 지키고 있다. 여전히 인근 고기잡이 배의 길 안내를 한다. 가파른 경사 탓에 심장이 '볼락볼락(두근두근)'한다는 볼래기 언덕을 지나니, 옛 집터 돌담이 나온다. 뒤로는 등대, 앞으로는 억새밭, 저 멀리 바다를 정원 삼은 '그림같은 집'이다.차귀도에는 현재 70~80여종의 자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거지덩굴' '해녀콩' 등 이름도 재미나다. 거지덩굴은 산삼을 닮았다. '심'본 줄 알고 달려온 심마니가 "에이, 거지같다"고 실망한 데서 비롯됐다.해녀콩의 유례는 조금 더 슬프다. 임신을 하게 된 해녀가 물질을 못하게 될까봐 독성이 있는 이 열매를 먹고 낙태를 시켰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고 해설사는 "해녀콩이 독하긴 한 것 같다"며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 다른 식물은 다 시드는데 이것만 주먹만하게 피었다"고 전했다.해녀에 얽힌 전설은 와도에도 흐른다. 젖먹이 아이를 키우던 한 해녀가 파도에 휩쓸려가면서 다른 해녀에게 "우리집 검은 소 가져가고, 내 대신 우리 아이 키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어쩐지 있었을 법 같아서 마음이 짠해진다.

▶차귀도 탐방 후엔 '작은 오름' 수월봉 트레일 코스

=바람과 전설이 가득한 '신비의 섬' 차귀도를 다녀왔다면, 이제 차귀도 밖 세상을 즐길 차례다.자구내 포구에서 고산리 선사 유적지, 갱도 진지, 수월봉, 검은모래 해변, 해녀의 집으로 이어지는 '수월봉 트레일(trailㆍ등산길ㆍ오솔길)' 코스(총 4.5km)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보자. 보통은 해녀의 집을 출발지로 삼지만, 종점인 자구내 포구에서 차귀도를 먼저 다녀온 후, 거꾸로 내려와도 무방하다.수월봉 트레일 코스는 오는 31일부터 제주올레걷기축제가 펼쳐지는 12코스가 지나는 길 위에 있어 축제기간에 맞춰 걷는다면 해안절경 등 아름다운 풍광 외에도 마을주민이 직접 준비한 먹거리도 맛보고, 음악회ㆍ뮤지컬 공연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나볼 수 있다.수월봉은 높이 77m의 작은 오름으로 해안절벽을 따라 드러난 화산재 지층 속에 다양한 화산 퇴적구조물이 남겨져 '화산학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정상에는 억새와 해송ㆍ까마귀쪽나무가, 가파른 절벽에는 물수리ㆍ매ㆍ가마우지ㆍ바다직박구리ㆍ흑로 등이 서식하고 있다.갱도 진지는 2차대전 당시 미군이 고산지역에 진입할 경우 직접 바다로 발진해 전함을 공격하는 일본군 자살특공용 보트와 탄약이 보관되어 있던 곳으로, 제주도 내 산재해 있는 일본군 군사시설 중 하나다.수월봉 트레일 코스를 본격적으로 걷기 전 자구내 포구에 위치한 성안가든(064-773-1943)에서 배를 채우는 것도 좋겠다. 고산리 이장 고광훈 씨가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거창한 관광지 음식이 아니라 기사식당처럼 소박한 제주도 가정식이 나와서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인기가 높다. pdm@heraldcorp.com

-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