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여행을 말하다

장태동 여행작가 2012. 9. 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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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장태동의 여행일기 / 청주 수암골 골목길 / 글·사진=장태동 여행작가

[[머니위크]장태동의 여행일기 / 청주 수암골 골목길 / 글·사진=장태동 여행작가]

30~40년 전 골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낡은 담장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이 푸근해 지는 건 남루한 생활의 편린마저 함께 나누고 살았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카스테라' '단팥빵' '소보루' '빵'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먹던 짜장면과도 바꿀 수 없었던 빵은 기다림과 설렘을 알게 해준 대상이었다. 달동네 좁은 골목의 아이들은 그렇게 컸다. 아직도 빵처럼 부푼 꿈을 꾸는 희망의 빵집이 청주 달동네 수암골에 있다. '탁구'는 그곳에서 오늘도 '희망'을 굽는다. 수암골은 오늘도 여행자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나눠주고 있다.

그곳에서는 걸음이 느려진다. 간혹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여행자의 마음을 붙드는 그곳은 경치 좋은 곳도 역사 깊은 곳도 아닌, 이제는 몇 남지 않은 달동네 골목길이다. 청주 수암골 달동네로 발길을 옮겼다.

◆골목은 추억을 부르고

마을 어귀에 큰 나무가 있다. 시골 마을에 있을 법한 동구나무를 인구 60만이 넘는 청주시 수암골에서 보았다. 여느 동구나무처럼 수암골의 그것도 나무 그늘을 넓게 드리웠다. 사람들은 그 그늘에 앉아 쉰다.

동구나무 옆에 작은 가게가 있다.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쉬던 사람들이 연신 가게를 들락거리며 음료수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가게 벽에 '삼충상회'라고 적혀있다. 그 앞에 < 제빵왕 김탁구 > 촬영장이었던 '팔봉제빵점'이 있다. 이 빵집은 지금도 실제로 빵을 팔고 있다.

수암골은 < 제빵왕 김탁구 > 와 < 카인과 아벨 > 등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림이 있는 옛 골목'으로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곳이었다.

수암골 여행의 출발점은 동구나무 앞 삼충상회다. 가게 벽에도 그림이 있다. 소녀가 나무에 이마를 대고 있는 그림이다. 아마도 숨바꼭질을 하나 보다. 그 앞을 지나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올라가는 동안 좌우로 골목길이 나있다. 골목은 그렇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어린 시절 골목은 놀이터이자 세상의 전부였다. 술래잡기며 다방구, 찐돌이 등 여럿이 함께 하는 놀이를 즐기며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뛰어 다녔다. 해질 무렵 골목은 집마다 피어나는 저녁 짓는 향기로 가득 찼다.

노는 데 정신 팔린 아이들은 거뭇거뭇해지는 골목길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밥 먹고 놀아라'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 왔지만 '히히덕' 거리며 딱지치기와 구슬치기에 빠져 놀던 아이들에겐 소용없었다. 결국 부지깽이에 빗자루를 들고 나선 엄마에게 붙들려 끌려가면서도 골목길 어둠 속에 '내일 보자'라는 인사를 남기곤 했다.

몸은 커지고 골목이 좁아지면서 잃어버린 것은 놀이터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골목은 좁았지만 가장 큰 세상이었고, 몸집은 작았지만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큰 꿈을 꾸며 살던 때였다.

수암골(우암산 서쪽 산기슭에 있는 달동네)

◆피난민 마을에서 벽화가 있는 마을로

수암골은 한국전쟁 피난민 정착촌이었다. 피난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면서 마을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집들이 다 똑 같은 크기와 구조였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고 70년대를 거치면서 집도 고치고 골목에도 시멘트가 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들은 여전히 고만고만했다. 지금도 작은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들이 대부분 작고 폐쇄적이다.

골목도 좁아 어느 곳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가야 할 정도다. 낡은 기와 아래 오래된 빗물받이가 힘겹게 붙어 있는 골목은 30~40년 전 골목 그대로다.

재개발 바람이 불어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서는 가운데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달동네인 수암골, 오래된 마을 정체된 삶에 새순이 돋게 한 건 그림이었다.

충북 민예총과 학생 등이 힘을 모아 낡고 오래된 마을 담과 벽, 길에 기발한 상상력과 발랄하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그렸더니 마을 분위기가 밝고 명랑해졌다. 재개발의 광풍에서 살아남아 마을과 사람들은 그대로 남았다. 그렇게 희망의 씨앗을 틔운 그곳에 타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골목과 그림을 보러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골목은 좁지만 정겨웠다. 전봇대를 타고 오르는 말괄량이 소녀의 뒷모습,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아이들 모습, 계단에 그려진 피아노 건반 그림, 골목을 달리는 털복숭이 강아지 그림, 좁은 골목 바닥에 그려진 빨간 꽃송이,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발레리나의 모습,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천진난만한 아이 얼굴 등 골목에 그려진 그림은 이곳을 찾는 여행자를 꿈과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렇게 사람들 마음에 굳은살을 녹이고 아이 같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추억의 골목이 현실에 남아 있으니 추억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할까. 달동네 비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시절, 그 골목에서 아이들은 뒹굴고 놀며 꿈을 꾸었다. 몸이 큰 뒤 골목은 좁아졌지만 골목 밖 세상의 하늘을 이고 살 수 있는 힘의 뿌리는 여전히 그곳에 닿아있다.

대청호

◆대통령이 걸었던 숲길

수암골에서 돌아나왔다. 청주 외곽에 있는 '청남대'를 가보고 싶었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있는 '청남대'는 대통령 별장이었다.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변 환경이 빼어나다는 의견에 따라 그곳에 대통령 별장을 만들게 된 것이다.

1983년 12월 27일 준공식을 마친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 5명의 대통령이 88회, 336박 471일 머물렀다.

전직 대통령들은 그곳에서 휴가를 보낼 때 가족들과 바비큐 파티, 보트 타기, 골프, 산책 등을 즐겼다. 특히 청남내 내 골프장은 5,6공화국 시절 대통령이 종종 이용했고 그 이후의 대통령들은 골프를 즐기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4월 18일 관리권을 충청북도로 이양하면서 청남대는 일반에 공개됐다.

자전거 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조형물

청남대는 돌아볼 곳이 많이 있어 개인별로 코스를 정해 돌아볼 수 있다. 그중 꼭 가봐야 할 곳은 대통령역사문화관, 돌탑, 본관, 오각정, 골프장 옆 산책길, 대통령광장, 노무현 대통령 산책길 등이다.

대통령역사문화관은 역대 대통령의 사진과 기록물은 물론 외국 국빈에게서 받은 선물과 청남대에서 사용했던 물건 등을 전시했다.

역사문화관을 나와 본관 쪽으로 가다보면 돌탑이 하나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남대 관리권이 충청북도로 이관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탑에는 청남대가 있는 문의면 32개 마을 이름을 새겼다.

청남대 본관은 수암골처럼 '제빵왕 김탁구'를 촬영했던 곳이다. 본관 뒤편으로 가면 대청댐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오각정이 나온다. 오각정까지 간 뒤에 갔던 길을 다시 걸어 나와 골프장으로 간다.

골프장 옆 가로수 산책길은 걷기 좋은 길이다. 길 왼쪽에는 골프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호수가 보인다. 골프장 그늘막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풍경이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청남대 산책길

골프장 옆 산책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전거 타는 조형물이 있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 길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대통령 광장이 있고 광장을 지나쳐 더 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걸었던 산책길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노무현 대통령 산책길 안내판이 있다. 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약 1km 정도 되는 숲길을 천천히 걷는다. 나무가 우거져 햇볕이 걸러든다. 푸르른 숲의 정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향기처럼 느껴진다.

[여행정보]

< 길안내 >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청주IC - 청주 입구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 공단오거리에서 직진 - 상당공원 앞에서 좌회전 - 우암초등학교 바로 전 우회전 - 표충사 앞에서 좌회전 - 수암골 이정표 따라 가다 보면 팔봉제빵점 건물이 나옴. 제빵점 건물 앞 삼충상회가 수암골 골목길 여행의 출발점이다. 수암골에서 나와 도청·육거리 방면 - 보은·대청댐 방면 - 문의면 청남대 매표소 부근 주차장에 주차 후 매표소에서 매표를 한 뒤 셔틀버스를 타고 청남대에 들어가면 된다.

대중교통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상당공원을 거쳐 우암초등학교 가는 버스를 탄다. 우암초등학교 정류장에 내려서 약간 뒤로 걸어와 우암초등학교 정문 앞에 선다. 정문 앞에 '수암골 500m' 이정표가 있다. 우암초등학교 담을 따라 걷다가 표충사 쪽으로 간다. 표충사를 지나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팔봉제빵점 건물이 있다. 제빵점 건물 앞 삼충상회가 수암골 골목길 여행의 출발점이다. 수암골에서 나와 우암초등학교 앞 큰 길 건너에서 도청·육거리 방향 시내버스를 타고 도청 정류장에서 내린 뒤 문의 가는 31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청남대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청남대로 들어가면 된다. 청남대는 승용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다.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문의면 소재지 문의 파출소 앞에 있다)에서 표를 산 뒤 청남대 가는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셔틀버스 요금 왕복 3천원) 셔틀버스 이용자는 주차비 무료. 다만 승용차를 타고 청남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편의를 제공하는데 청남대 홈페이지에서 '승용차입장예약제'를 신청하면 된다. 문의 043-220-6412

< 음식 >

냉면과 햄버거로 유명한 동그라미(043-252-9862) 식당이 청주시내 성안길 제일은행 부근 주네스 앞에 있다. 냉면은 비빔장 맛이 좌우한다. 맵고 얼큰한 비빔장 맛 속에 다양한 맛이 아주 조금씩 녹아들어 있다. 얼큰하고 매운 냉면을 먹은 뒤 수제햄버거와 우유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수암골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이었던 '팔봉제빵점'(043-223-7838)에서 추억의 빵을 맛 볼 수 있다.

< 숙박 >

청주고속터미널 주변에 모텔이 많다. 청주시 율량동에 라마다플라자청주호텔(043-290-1000)이 있다. 청남대 주변에는 청남대펜션(043-286-5589. 청남대 매표소까지 차로 약 3분 거리. 청남대까지는 차로 약 10분 거리) 등이 있다.

< 청남대 여행정보 >

입장료는 3000~5000원. 주차요금은 승용차 2000원.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입장하고 오후 6시까지 돌아볼 수 있다.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당일 등은 휴관이다.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

www.moneyweek.co.kr

) 제2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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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장태동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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