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m 첩첩산중 '실타래' 폭포수의 반가운 가을마중

박경일기자 2012. 9. 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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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오르는 밀양 '영남 알프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영남 알프스'. 가지산, 백운산,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 등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영남 내륙의 산 무리들을 흔히 영남 알프스라고들 합니다. 우리 땅의 전형적인 산세에다가 만년설로 쌓인 유럽 '알프스'의 이름을 끌어다 놓으니 한편으로는 '사대주의'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유치하단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호들갑스러운 오버'란 얘기를 듣는대도 그닥 할 말이 없지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준봉들의 어깨를 딛고 영남 알프스의 능선에 올라서보니 꼭 그렇게만 생각할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여기의 산들이 알프스와 똑같대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알프스와는 다른 점이 열배, 스무배쯤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쪽 긴 능선의 고산 준봉들을 그저 하나하나의 산 이름으로 부르고 만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억울한 일이겠다 싶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거대한 산군(山群)들이 물결치면서 첩첩이 겹쳐지고, 산정(山頂)에 난데없는 거대한 억새 평원이 펼쳐지며, 협곡 사이로 까마득한 폭포가 명주실 타래처럼 쏟아지는 풍경을 보면서 "'알프스'란 이름이 이래서 붙여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즈음에 영남 알프스를 찾아갔던 것은 고원 억새 물결로 가장 아름답다는 가을을 앞두고 있어서도 그랬지만,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경남 밀양시의 재약산 사자봉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설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밀양의 얼음골에서 사자봉을 잇는 케이블카가 시험운행 중입니다. 케이블카는 오는 22일 본격적으로 운행을 시작할 계획이랍니다. 그 케이블카를 미리 타고 영남 알프스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긴 능선을 밟아봤습니다.

케이블카로 단숨에 1020m까지 해발고도를 높인 뒤에 걷는 길이었으니, 등산이라기보다 트레킹에 가까웠습니다. 관목 숲의 깊은 터널을, 드넓은 억새의 평원을, 탄력 있고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 맛은 가히 최고였습니다. 암봉에 걸터앉아 첩첩이 이어진 산줄기를 오래 바라보기도 했고, 맑은 물이 차고 넘치는 계곡을 끼고 걷기도 했고,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 아래로 이어진 길을 딛기도 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가을의 초입. 영남 알프스의 고원을 가득 채운 억새는 하루하루 더 피어나 바람에 흰 솜털을 날릴 것이고, 대기는 더 맑아져서 푸른 하늘 아래 고산준령들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다가설 것입니다. 여름의 녹음은 지나갔고, 가을의 단풍은 아직 먼 이즈음이라면 영남 알프스를 건너가는 길을 찾아가보면 어떻겠습니까. 이곳을 권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한참을 생각해봐도 이곳에다 견줄 만한 길을 좀처럼 떠올릴 수 없었으니까요.

밀양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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