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터널·억새바다·층층폭포.. 밀양의 秘境 속으로 '직행'

박경일기자 2012. 9. 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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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오르는 영남 알프스

# 케이블카 타고 '산의 안쪽'으로 단숨에 오르다.

경남 밀양시 산내면. 산내(山內)라 함은 '산의 안쪽'을 말함일 텐데, 그건 밀양시내에서 언양 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방팔방이 그야말로 중중첩첩(重重疊疊)의 산들이다. 치솟은 산과 산의 틈으로 국도가 흘러간다. 산내면 일대는 지금 온통 붉게 익어가는 사과밭으로 가득하다. 어찌나 사과나무들이 많은지 열어놓은 차창으로 달큰한 사과 향기가 밀려 들어온다. 인근의 단장면 일대는 주렁주렁 열린 파란 대추들이 한가득이다.

밀양의 얼음골을 찾아나서는 길. 폭염의 기세가 다 수그러든 뒤에, 한여름에 고드름이 얼었다가 처서가 지나면 녹는다는 얼음골을, 바람 끝이 서늘해진 지금 다 늦게 찾아가는 이유는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다. 얼음골에서 재약산 사자봉 쪽 능선을 잇는 '얼음골 케이블카'가 지금 시험운행 중이다. 케이블카 설치는 14년 전부터 추진돼 온 사업. 그러나 환경 훼손 여부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착공이 늦춰지다가 지난 2010년 4월에야 공사가 시작돼 최근 완공했다.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구연마을에서 진참골 계곡까지 연결된 케이블카는 1.75㎞로 국내 최장이다. 오는 22일 본격 운행을 앞두고 상·하부 탑승장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케이블카의 시험운행에 동승했다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는 목적은 해발 1020m의 고지까지 몸을 올려놓는 데 있다. 케이블카 운영업체가 듣는다면 섭섭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감흥은 그닥 특별하달 게 없다.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처럼 주위에 우람한 암봉이 펼쳐진 것도 아니고, 통영 미륵산의 케이블카처럼 한려수도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것도 아니다. 케이블카가 닿는 상류 정류장 쪽의 능선도 밋밋하기 이를 데 없다. 케이블카 하부 탑승장 쪽에는 명소로 꼽히는 '호박소'가 있긴 하지만, 케이블카 안에서는 숲으로 가려져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바라다보이는 흰 암봉으로 이마를 삼은 백운산(白雲山)의 풍경도 별다를 게 없다. 주민들은 케이블카 안에서 보면 백운산의 드러난 화강암이 '호랑이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고 자랑하는 모양인데, 그저 '그렇다니 좀 그래 보이는' 정도일 따름이다.

그러니 케이블카를 타는 목적은 거기에 타서 고도를 올려가며 경치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얼음골 케이블카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단번에 재약산의 거대한 능선 위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게 가장 큰 미덕이다. 그렇다고 그게 '시시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케이블카를 탄 보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해발 1000m 능선으로 단숨에 올라서 마주하는 초가을 무렵의 '영남 알프스' 산군(山群)들이 더없이 아름다우니 말이다.

# 산과 산이 겹쳐진 영남알프스의 장쾌함

재약산의 높이는 해발 1189m. 재약(載藥)이란 이름은 신라 흥덕왕이 지은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약수를 찾아 헤매다 여기서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되자 아버지 흥덕왕이 직접 이름을 내렸다는 것. 또 재약산 깊은 산중에서 피리를 만드는 대나무가 난다는 이야기도 있고, 음식을 끊은 중들이 거처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얘기야 진위도 가릴 수 없고 위세 당당한 산이라면 흔히 있는 전설이지만, 굳이 이런 이야기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산길을 오르내리다보면 신령스러움이 느껴진다.

재약산의 정상은 사자봉이다. 하지만 이 봉우리는 최근까지만 해도 재약산과 따로 취급을 받아 '천황산'이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이던 1925년 일본인들의 측량 오류로 사자봉이 별도의 산으로 간주됐고, 거기에 '천황'이란 왜색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옛 이름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사자봉이란 이름을 찾게 됐지만, 산행 표지판 등에는 아직도 천황산과 사자봉이란 이름이 혼재돼 자칫 헷갈리기 쉽다.

케이블카의 상부 종점은 능동산과 재약산 사자봉을 잇는 해발 1020m의 능선에 있다. 능선에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산내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서 나무덱을 딛고 오르면 곧 터널처럼 깊은 숲길을 만나게 되고, 제법 긴 능선길을 따라가면 낮은 키의 관목과 억새가 펼쳐진 평원이 나타난다. 평원에는 억새가 이제 막 피어나서 바다를 이루고 있다. 솜털 같은 꽃은 아직 피우지 않았지만, 바람에 억새가 몸을 누이며 나부끼는 모습은 장관이다.

사자봉은 바로 아래 사자 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바위를 딛고 올라서보면 왜 이 일대의 산들을 '영남 알프스'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왜 재약산을 영남알프스의 중심으로 부르는지 비로소 실감이 된다. 뒤쪽으로 가지산과 능동산, 백운산, 운문산, 억산이 우뚝 솟아있고, 전면으로는 270도로 시야가 펼쳐진다. 그 시선 안으로 중중첩첩의 산이 그려내는 선들이 끝도 없다. 고헌산,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 시산….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산들이 마치 둥글게 친 병풍과도 같다.

이런 압도적인 전경은 한 장의 사진으로는 어림도 없고, 동영상의 영상으로도 담아낼 도리가 없다. 가히 명당 중의 명당이다. 그 자리에 서서 고려 때 승려 명람이 시 한 수를 지었다. '영해의 바다가 김해의 바다와 연(連)해 있고, 양산의 산은 울산의 산과 접해 있다.' 그렇게 바다와 산이 이어지는 딱 그 자리에서 일군의 등산객들이 도시락을 펼쳐놓고는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보자기를 펴놓고 차린 소박한 식사에서 최고의 반찬은 당연히 산세가 그려내는 풍경이었다.

# 무협지 배경 같은 절경 폭포를 만나다

점입가경. 억새평원은 사자봉을 넘어가면 더 광활해진다. 사자봉과 수미봉을 잇는 낮은 목의 평원은 온통 억새들로 가득하다. 이른바 '사자평'이라 이름 붙은 너른 평원이다. 사자평 한쪽에는 산을 타고 넘는 구름이 내려놓은 습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습지도 형성돼 있다. 굵은 나무 없이 관목 숲과 너른 평원이 어우러진 사자평은 1980년대쯤 들어섰던 목장의 흔적이다. 당시에 산과 산을 잇는 해발 800m 남짓 고원 일대의 나무를 베어내곤 목장의 초지를 조성했다. 눈이 쌓이는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썼을 정도라니 평원의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애초에 이쪽의 산지에 '영남 알프스'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아마 산정에 펼쳐진 너른 초지의 목장과 풀을 뜯는 소의 이국적인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목장이 다 문을 닫은 지금은 관목과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리면서 평원의 면적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억새군락은 제법 광활하다.

재약산의 아름다움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뉘어 불린다. 그 하나가 사자봉 동남쪽 기슭의 사자평 고원지대 너른 초지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사자광평'이다. 산 동쪽은 울창한 수림과 기암절벽이 흘러내려 '옥류동천'이라고 부른다. 산의 서쪽은 금강폭포와 금강대 등이 펼쳐지는 '금강동천'이다. 이 중 최고 경관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층층폭포와 폭포로 대표되는 산 동쪽의 옥류동천이다. 수미봉에서 고사리분교 터를 거쳐서 표충사로 내려서는 제법 긴 내림길을 택하면 옥류동천을 다 볼 수 있다.

옥류동천에서 최고의 풍경이라면 두 개의 폭포다. 이즈음의 잦은 비로 폭포의 위용은 더욱 당당해졌다. 첫 번째로 만나는 폭포는 층층폭포다. 까마득한 폭포 두 개가 연이어 떨어지는데 그 거대한 규모와 힘찬 물줄기에 입이 딱 벌어진다. 위쪽의 폭포가 떨어지는 자리에 현수교가 놓여 있는데, 아래쪽의 폭포는 발밑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폭포가 워낙 크니 도저히 한 번에 두 개의 폭포를 다 볼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두 번째로 만나는 폭포는 흑룡폭포다. 이 폭포는 아래로 내려설 수 없고, 등산로에서 난간 너머로 멀찌감치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데, 명주실 타래를 풀어놓은 듯 물줄기가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져 내린다. 폭포 하나가 떨어져 깊은 소(沼)를 만들고, 그 소에서 넘친 물줄기가 또다시 폭포가 돼서 콰르르 쏟아지는 모습은 마치 중국 무협영화의 배경에 나오는 절경을 연상케 한다. 폭포 위쪽으로는 거친 암봉이 그 풍경에 가세한다. 어디 이 두 곳의 폭포뿐일까. 산자락을 타고 이곳저곳에서 이름도 없는 폭포가 만들어져 물줄기로 떨어지는데, 마침 밀려온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으니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굽이를 돌 때마다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관목에서 소나무로, 때로는 울창한 활엽수림으로 바뀌고, 산길도 초지에서 돌바닥으로, 다시 푹신한 흙바닥으로 바뀌니 두세 시간 남짓의 짧지 않은 하산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 표충사에서 만어사, 그리고 영남루까지….

밀양에는 외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명소들이 곳곳에 있다. 재약산 산행의 들머리 혹은 종점이 되는 표충사도 그중 하나다. 표충사는 서원이 경내에 있어 불교와 유교가 한 영역 안에 있는 특색 있는 사찰. 본래 죽림사란 이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을 이쪽으로 이전하면서 표충사란 이름이 붙여졌다. 표충사는 일제강점기 판사였다가 사형선고를 내린 뒤 입산해 불교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자리에 올랐던 고승 효봉선사가 주석하다 입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절집은 거기에 깃든 고승들의 자취만큼이나 정갈한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표충사와 함께 밀양의 만어사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만어사는 발치쯤에 돌이 무너져 이룬 거대한 너덜겅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몰려온 동해의 용과 물고기들이 변해 돌이 됐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그래서 이 돌을 서로 부딪치면 금과 옥의 소리를 낸다는데, 전설대로 지천으로 깔려 있는 돌 하나를 들어 다른 돌을 내리치면 신기하게도 맑은 종소리가 난다. 돌무더기 가장 위쪽에는 큰 바위 하나를 전각에 모셔두고 있는데, 그 바위가 바로 동해의 용이 돌로 변한 형상이라고 전해온다.

이 밖에도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영남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꼽히는 밀양의 대표적인 명소다. 그 앞에 서 있는 천진궁은 단군 이후부터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 고려, 조선 등 8개 왕조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들러볼 만하다. 또 영남루 아래쪽의 아랑사는 정절을 지키려다 죽임을 당한 조선 명조 때 밀양부사의 외동딸 '아랑'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인데, '청구야담'으로 전하는 아랑의 이야기는 TV로 방영 중인 드라마 '아랑사또전'의 모티브가 됐다. 아랑사에는 1963년 육영수 여사가 봉안했다는 아랑의 영정이 걸려 있다.

밀양=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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