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 제주의 허파를 앗아가다

2012. 9. 1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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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의 수난… 보전 대책은

제주도에서는 지금 환경분야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열리고 있다. 이 회의의 180여개 발의안 가운데 우리나라가 제출한 것은 20건으로 이중 제주도 지역형 의제가 5건이다. 가장 제주도적인 의제로 용암숲 곶자왈의 보전과 활용지원방안과 하논분화구 복원방안이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제주의 자연과 인간, 경제활동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곶자왈이야말로 제주도만의 고유성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보편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곶자왈을 중심으로 제주다운 자연환경의 정체성과 그것을 훼손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지난해 여름까지 '세계7대 경관' 지정을 위해 제주도는 '통화중'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이름 짓기 열풍에 휩싸여 있다. '세계 환경수도', '세계 환경허브', '유네스코 국제보호지역', '보물섬', '세계 환경보전의 모델' 등. 생물권보전지역(2002) 지정, 세계자연유산(2007) 등재, 세계지질공원(2010) 인증 등 유네스코 트리플 크라운 등극의 여세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훼손되는 곶자왈=그러나 거창한 이름 짓기 열풍의 이면에는 중산간지대의 무분별한 개발, 마구잡이 해안도로 건설, 잦아지는 대형 기상재해 등 환경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 8일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조성된 에코랜드 골프장(구 비치힐스)을 찾았다. 클럽하우스의 드넓은 주차장에서 보이는 골프코스는 울창한 숲 속에 조성돼 있다. 모두 제주 생태계의 허파에 해당되는 곶자왈을 훼손한 것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깎여나가고 생긴 잔디밭 군데 군데 키 큰 구실잣밤나무 등이 유령처럼 서 있다.

2009년 10월 개장한 골프장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조성되어 2010년 9월 문을 연 생태공원과 테마파크로 인해 334만5000㎡ 규모의 곶자왈이 사라졌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그냥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최근에 곶자왈이 가장 크게 훼손된 사례"라고 말했다. 곶자왈사람들 김효철 대표는 "곶자왈 지대 대부분은 여전히 전체 면적의 30%까지 개발이 가능하다"면서 "근년 들어서도 영어교육도시, 신화역사공원, 테디밸리리조트 등 골프장, 도로 등이 개발됐거나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곶자왈의 가치, 다양한 식생과 전통지식=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쌓여 있는 곳에 나무와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숲을 이룬 지역이다. 제주방언으로 '곶'은 나무와 덩굴이 엉클어진 자연림, '자왈'은 자갈이나 잡석을 일컫는다. 과거에는 경작지로 개간하기 어려운 불모지로 인식됐다. 그러나 십여년 전부터 난대성 상록수림의 이산화탄소 흡수효과와 멸종위기·희귀동식물의 은신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곶자왈의 암괴는 요철지형을 이루며 쌓여 있기 때문에 그 틈새로 지하수를 많이 머금고 있다. 보온·보습효과가 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기 때문에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생태공간이 바로 곶자왈이다. 구실잣밤나무, 참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등이 곶자왈의 대표적 난대성 수종이다. 제주고사리삼, 골고사리(일명 변산일엽), 큰톱지네고사리 등 제주도에는 전국 양치식물 종의 80%가 서식한다. 붓순나무(거문오름), 육박나무, 백서향, 개가시나무 등의 희귀식물도 다수 서식한다.

김찬수 박사는 "곶자왈에는 지형, 지질, 수자원, 종다양성뿐만 아니라 토속신앙, 생업과 관련된 모든 전통지식, 즉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현재 산림청이 5억원을 들여 진행중인 곶자왈 보전 및 활용기술 개발 연구를 맡고 있다. 예컨대 곶자왈 지대의 숯가마터에는 옛 사람들이 살던 집터와 노루텅이라고 부르는 사냥용 함정도 발견됐다. 김효철 대표도 "곶자왈이야말로 자연의 치유력, 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전통적으로 이용해 왔던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드러내 주는 제주도의 상징"이라며 "이는 제주 WCC 총회의 슬로건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보전의 걸림돌과 대안=에코랜드는 4대 곶자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조천·함덕 곶자왈의 핵심지대인 교래곶자왈에 속해 있다. 으름난초, 제주상사화, 주걱일엽, 금새우란, 큰톱지네고사리 등이 서식한다. 골프장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부터 입지의 부적절성, 부지 헐값 매입 등 논란이 일었다. 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거쳐 개발사업시행승인을 받고 난 이후 7차례에 걸쳐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을 변경해 환경보전방안을 축소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약속과 달리 지하수를 과다사용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멸종위기야생동물2급인 '애기뿔소똥구리'를 보전하기 위해 마련하도록 협의된 대체서식지를 제대로 조성하지 않았다.

제주도 전체 면적의 6%를 차지하는 곶자왈의 대부분이 민감한 중산간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압력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다. 현재 전체 곶자왈 면적의 약 14%가 훼손됐다. 그러나 직접 훼손된 땅 이외에도 골프장이나 위락단지 안에 잘려진 채로 남는 파편화된 곶자왈도 생태계 안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WCC 추진기획단 김양보 총괄기획팀장은 지난 5월 한 토론회에서 "곶자왈의 훼손에는 정부, 제주도, 기업이 모두 책임이 있다"면서 "곶자왈지대의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 가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곶자왈 개발면적을 총량제로 제한하고 산록도로 위쪽으로는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곶자왈 전체 면적에서 사유지가 60%에 이른다. 2007년 결성된 곶자왈공유화재단은 곶자왈내 사유지를 개발업자에 앞서 사들이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들인 땅은 아직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김효철 대표는 "제주도가 부지매입을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자금이 부족하고 도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미흡하다"고 "정부가 사유지를 사들이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효율적인 국민신탁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제주=글·사진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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