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자금 대출 사상 최고.. 한숨짓는 '렌트 푸어'

2012. 8. 2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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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오경희(가명·31·여)씨는 지난해까지 6년간 2년마다 1000만∼2000만원씩 전세 보증금을 올려주며 서울 강서구의 한 오피스텔에 살았다. 올려주는 돈은 모두 은행 빚이었다. 지난해 10월에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갑자기 전세를 월세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월 75만원을 현금으로 내라는 것이었다.

오씨는 급하게 주변 복덕방을 뒤졌지만 마땅한 전셋집은 거의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적당한 빌라를 찾았지만 전세금을 기존보다 2000만원 이상 더 내야 했다. 회사의 직원 대출, 은행 마이너스 통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야 간신히 길바닥에 나앉는 처지를 면했다. 오씨는 "벌써 1년이 지났다"며 "당장 또 내년 10월이 걱정된다"고 했다.

은행 등에서 임차보증금을 빌리는 전세자금대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렌트 푸어(Rent Poor)'가 확산되고 있다. 전셋값 인상폭이 워낙 크다보니 월세를 살며 푼푼이 모아 전셋집으로 옮기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렌트 푸어는 전세금 때문에 진 빚을 갚기에 급급한 무주택 세입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해마다 전셋값 인상 탓에 가슴을 졸이는 렌트 푸어에 비하면 '하우스 푸어'는 자기 집은 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5월 말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22조5422억원으로 지난해 말 20조2262억원보다 2조3160억원(10.2%) 늘었다고 29일 밝혔다. 1∼5월 기준 전세자금대출 증가액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이 전세 보증금으로 쓰였다는 의미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 수요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전셋값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서 무주택자는 집을 사기보다 전세를 선호하고 있다. 집을 가진 사람은 팔기보다 월세를 놓거나 전세 보증금을 올려 집값 하락을 만회하려고 한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이 맞물려 전세는 부동산 시장에 나오는 족족 사라지고 전셋값은 치솟는다.

이미 전셋값은 무섭게 올랐다. 국민은행이 집계한 주택 전세가격 종합지수는 지난달 106.9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2010년 7월 전세가격과 비교하면 아파트는 24.3%, 일반 주택은 18.7% 올랐다. 2년 전 2억원 하던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면 올해 계약을 연장할 때 4860만원을 더 올려줘야 하는 셈이다. 현재 은행권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고 연 6% 정도다. 5000만원을 더 빌리면 이자로만 매월 25만원이 추가로 나간다.

더 큰 걱정은 다가오는 가을 이사철이다. 전문가들은 전셋값이 다시 치솟아 '렌트 푸어'의 고통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 박정욱 선임연구원은 "내년 적용되는 4인 가구 최저생계비 155만원을 기준으로 전셋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전용면적 50∼60㎡의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전국 평균으로 6년2개월 걸린다"며 "서울의 경우 최저생계비를 10년5개월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전셋집을 구할 정도"라고 말했다.

강창욱 한장희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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