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깎아 줄테니 나가지 마세요~"..불황이 낳은 역전세난

2012. 8. 2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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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백웅기 기자]주택담보 대출을 막지 못해 경매로 몰리는 사례가 늘면서 전세 보증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전세 수요자들이 융자 비중이 큰 전셋집을 꺼리는 경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수도권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당장 현금 융통이 급해 전셋집을 깎아주겠다고 나서는 집주인도 생겨나는 상황이다. 불황이 낳은 또다른 역(逆)전세난의 모습이다.

최근 전셋집 마련에 나선 김모(30) 씨는 전셋값이 많이 올라 걱정을 하던 차에 예상밖의 경험을 했다. 직장과 가까운 서울 양재동 인근에 집을 얻으려던 중에 "전셋값을 깎아줄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중개업소가 소개한 물건은 2006년 신축한 공급면적 40㎡의 빌라로 당시 집주인은 전세를 끼고 3억2000만원을 주고 매입했다. 이후 집주인은 2년 전 1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그사이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액은 2억원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최근에 세입자가 계약기간 만료로 전세 보증금을 요구하자 당장 현금 융통이 급해진 집주인이 8000만원에라도 계약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귀가 솔깃했지만 김 씨는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당초 1억원 초반의 물건을 알아봐 달라는 말에 물건을 소개했던 중개업자도 "다른 집 같으면 2년 전 가격 받아도 무리가 아니지만 (계약하기가) 좀 껄끄럽긴 할 것"이라며 "싼 물건을 찾는 사람들한테 한번씩은 얘기해보지만 지금은 집값이 처음 샀던 가격만도 못해 융자비중이 높아져 계약하려 들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 경우 임대차보호법에 의해 7500만원까지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지만 세입자 입장에선 계약이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집값 하락과 대출이 맞물려 융자 비중이 커진 주택을 소유한 이들은 세입자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했지만, 이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금융 비용마저 감당하지 못할 우려가 커진 것이다.

최근 집값 하락으로 주택 담보가치인정비율(LTV)을 초과한 대출분을 신용대출로 전환하려는 정부 차원의 금융 대책이 모색되고 있지만 이는 미봉책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이 크다. 향후 언제쯤 집값이 반등한다는 보장이 없는 가운데, 담보 비중 초과 대출분을 신용대출로 전환하면 기존 담보대출 금리보다 더욱 큰 이자부담을 떠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박상언 유엔알 컨설팅 대표는 "당장 금융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집주인들에게 신용대출로 전환하라고 하는 것은 더 큰 위험 부담에 노출되게 하는 것일 수 있다"며 "융자 비중이 높아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다면 일단 전세 보증금을 낮추고 매월 이자 비용 수준을 감내할 만한 정도로 월세를 받는 반전세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전략은 물론 세입자도 참고할 사항이다. 박 대표는 "현재 수도권 경매 시장의 낙찰가율이 70~75%선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전세를 구할 때엔 융자 규모가 보증금이 확보될 수 있을 만한 수준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융자가 많은 집은 집주인과 상의해 보증금을 낮추는 협상 전략도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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