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로 분양받은 집값 폭락에.. 입주 예정자 줄줄이 집단소송

강아름기자 2012. 8. 14.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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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I 적용 받지 않는 집단대출 '부메랑'건설사 상대 계약해지 요구, 은행엔 "갚을 빚 없다" 제소.. 소송 4년 전 0→27개 단지패소 땐 연체이자 눈덩이.. 은행들 연체율 치솟아 비상, 보증 선 건설사는 부실 위험

"분양계약해제소송에서 건설사를 압박하기 위해선 그 돈줄을 쥐고 있는 대출 은행들을 대상으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반드시 같이 해줘야 합니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 예정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집단소송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집값이 오를 줄 알고 빚을 내 새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람들이 부동산가격이 폭락하자 시공업체에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집단대출을 해준 은행에는 갚을 빚이 없다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이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과 중도금대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진행하는 단지(사업장)는 27곳에 이른다. 주택경기가 괜찮았던 2008년엔 관련 소송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소송 건수와 부동산 경기가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 가격이 조정을 받기 시작한 2009년과 2010년 각각 4개 사업장에서 소송이 제기됐고, 하락폭이 커진 지난해엔 소송전이 17곳으로 확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10개 단지의 계약자들이 소송을 냈다. 한 단지에서 여러 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된 경우도 있는 걸 감안하면 실제 소송은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분쟁의 중심엔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을 받지 않는 집단대출이 있다. 집단대출은 은행이 새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분양 받은 사람에게 개별 심사 없이 일괄적으로 중도금 등을 빌려주는 제도로, DTI 규제와도 무관하다. 상환능력이 안 되는 계약자라도 입주 시점에 가격이 오른 집을 되팔아 은행에 갚으면 되는 구조여서 부동산 활황기엔 전혀 문제가 안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분양가 밑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동안은 신도시 아파트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올라 집단대출이 자산 증식에 큰 도움이 됐지만, 최근 몇 년 새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되레 빚 수렁으로 빠지는 블랙홀이 된 것이다.

이는 집단소송이 주로 경기 김포ㆍ일산, 인천 청라ㆍ영종도 등 최근 가격 하락폭이 컸던 신도시에서 봇물을 이루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인천 경서동 청라지구 동문굿모닝힐(전용 141.61㎡)의 경우 2009년 1월 분양 당시 4억7,540만원에서 현재 3억9,040만원으로 17.9%나 떨어졌다. 다른 단지도 대부분 5(청라롯데캐슬ㆍ159.11㎡)~10%(반도유보라2차ㆍ130.97㎡) 하락했다. 김은진 부동산114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 정부의 부동산세제 완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반짝 상승하던 시기에 분양 받은 아파트들의 하락폭이 특히 크다"고 분석했다.

DTI 적용을 받지 않는 집단대출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람들이 집값 급락으로 큰 손실을 보자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계약해제소송을 벌이게 됐고, 그 과정에서 대출을 해준 은행을 상대로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는 소송을 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송전은 은행과 고객, 건설사 모두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은행들은 연체율 비상이 걸렸다. 작년 말 1.18%였던 집단대출 연체율은 올해 5월 말 1.71%로 치솟았다. 주택대출 평균 연체율(0.85%)의 두 배를 넘는다. 집단소송이 늘어날수록 관련 연체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집단대출의 보증을 섰던 건설사들 역시 건설시장 침체에 따른 구조조정 압박에다 소송까지 겹쳐 부실화 위험이 더 커졌다. 입주 예정자들도 소송에서 지면 엄청나게 불어난 연체이자를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데, 자발적으로 대출을 받은 이상 은행에 이길 가능성이 희박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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