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청도 운문사에서 삶을 묻다

2012. 8. 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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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고찰. 신라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한 장소로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인 운문사는 학승들이 공부하는 대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안거에 든 스님들을 뵐 수 있을까? 귀동냥으로 법문이라도 들어볼라치면 걸음을 서둘러야 할 참이다. 산사로 드는 길목, 산속의 맑은 물소리처럼 마음에 평화와 고요가 깃든다. 하여도 절집 입구를 쫓아 오르는 잰 걸음을 본다면 큰 스님들은 모두 쓸데없는 욕심이라 할지 모른다. 어리석은 놈, 천천히 오르며 무슨 소리를 들어봤느냐, 뭐 하려고 그리 걸음을 서두르는 것이냐? 산과 들에 피는 꽃과 나무, 작은 바람소리도 모두 마음에 둘 것인데, 아직도 부질없는 마음만을 쫓는 것이더냐?

구름도 쉬어가는 산사, 청도 운문사

마음이 들떠 조용히 정신을 깨우려 할 때, 너나 할 것 없이 추천하는 절이 바로 경북 청도 운문사(雲門寺)다. 땡볕이 바짓가랑이를 붙잡지만 몸을 온전히 바르게 세우고 호거산 운문사로 든다. 대개의 사찰이 산기슭에 자리한 것과는 달리 운문사는 운문계곡을 곁에 두고 나지막한 평지에 자리한 품이 드세지 않으면서도 안온한 느낌을 준다. 절 뒤로는 병풍처럼 소나무 산이 펼쳐지고 산 모양이 웅크리고 앉은 호랑이를 닮아 있다.

따로 일주문이 없는 탓에 범종루 아래로 법문에 발을 디딘다. 운문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고찰. 신라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한 장소로,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일연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의 밑그림을 그리고 완성한 곳 또한 운문사다. 특히 운문사는 우리나라의 대표 비구니 사찰로 학승들이 공부하는 대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운문사는 일반관람객이 둘러볼 수 있는 공간과 스님의 도량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반인들의 발걸음을 일부 제한하고 있는 까닭은 이곳에 국내 최대 규모의 운문승가대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된 이래 많은 졸업생이 배출되었으며, 현재에도 2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정진하고 있다. 학인스님들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청규를 엄격하게 실천하고 있다. 세속과 떨어진 여승들이 수도하는 도량답게 절집의 품은 가지런하고 정갈하다.

처진 소나무의 온화하고 너른 품세

소나무가 울창한 솔바람 숲길.

운문사는 어리석은 마음을 온전히 깨우고 그 마음을 읽어줄 것만 같은 품이 너른 절집이다. 경내에 들어서자 그 이름 유명한 '막걸리를 마신다는 소나무'가 예의 처진 가지를 내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품세이다. 천연기념물 180호인 이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랜 수령의 소나무로 뭇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 '처진 소나무'다. 나무 아래로 가지를 뻗은 모습이 풍성하고 너그러운 품을 지녀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한다. 삼삼오오 가족단위의 관람객을 안내하던 문화해설사가 맨 먼저 자리를 잡는 곳 역시 바로 소나무 앞뜰의 자리다. "해마다 음력 삼월삼짇날 막걸리 열두 말을 드시는, 귀하게 대접받으며 모셔지는 소나무입니다. 수령이 5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막걸리로 원기를 보충하는 것이지요."

품이 너른 소나무를 지나 일종의 강당인 만세루를 지나니 펼쳐지는 경내의 모습은 잔잔하고 여느 절집과는 사뭇 다르게 온화하여 이내 마음이 편해진다. 유형문화재 424호인 만세루는 법회를 하는 장소였으나 현재는 행사장으로 쓰이는 곳으로 조선 초기의 건물로는 우리나라 사찰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문사는 대웅보전이 두 개

만세루 앞으로 햇살이 들자 대웅보전 현판과 단청, 창살의 문양이 화려하게 빛난다. 이 대웅보전은 새로 지어진 대웅보전이다. 현재 운문사에는 대웅보전이 두 개. 새로 지어진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이고, 또 비로자나불을 모신 또 다른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관람객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1994년 새롭게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던 옛 법당의 이름을 대웅보전에서 비로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비로전이 그 이전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옛 대웅보전의 현판을 그대로 둔 것입니다. 그래서 대웅보전이 두 개인 사찰이 된 셈이지요."

황락삼(오른쪽)·정말수(왼쪽) 부부는 결혼 30년 만에 첫 여행으로 운문사에 다녀왔다.

그만큼 운문사는 법보의 보고이다. 비로전(보물 제835호)뿐만 아니라 삼층석탑(678호) 등 보물이 7개에 이른다. 보물 제193호로 지정된 금당 앞 석등, 보물 제316호로 지정된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보물 제317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208호로 지정된 동호(銅壺) 등이 있으며, 오백나한전 안의 나한상도 보기 드문 작품이다.

안내를 하던 문화해설사는 "해질 무렵 운문사를 찾아 저녁예불을 참관해야 운문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인다. 비구니 스님들의 승가대학이 있는 곳인 만큼 예불 전 스님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저녁 예불시 울리는 북과 범종 소리의 긴 여운을 들어야만 운문사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나무 그늘 아래 솔바람 숲길을 거닐며

아쉽지만 대웅보전 뒤편의 정원을 둘러보고 경내를 벗어나 솔숲길로 접어든다. 솔향기 아득한 숲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솔숲길로 약 600여m를 운문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중간 중간 나무 데크의 길과 이어진 솔바람 일렁이는 숲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치유의 숲길이다.

만세루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절집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중년의 부부가 한가로이 솔숲을 거닐며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다. 운문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왔다는 황락삼(울산시 남구 삼산동)·정말수 부부는 결혼 30년 만에 첫 여행으로 운문사에 다녀오는 길이다. 사느라 그 흔한 여행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중년 부부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배어난다.

"신혼여행도 못 다녀온 셈입니다. 춘천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그날 폭설이 내렸어요. 하는 수 없이 반나절 만에 돌아왔는데, 그 이후에는 자식 키우고 바쁘게 살다보니 여행을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집사람하고 바람도 쏘일 겸 무작정 나왔는데 운문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남편 황씨의 무안한 내색에도 아내 정씨의 표정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꺼운 얼굴이다. "울 아저씨가 참말로 따뜻한 사람입니다. 숨이 막힐 때면 숨을 터주는 공기 같기도 허고, 답답할 때 바라보는 하늘 같기만 허지요. 그래 고생이 힘들지 않았어예."

솔바람 숲길에서 잠시의 일상을 내려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닮아있다. 숲길 너머에 고운 노을이 내리고, 부부가 탄 작은 트럭이 달리는 풍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글·사진|이강 <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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