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1) 스마트폰의 어린 노예

류인하·유희곤 기자 2012. 7. 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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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도 친구랑 말 안 해요, 카톡방에서 수다 떨면 돼요" 초등생 장훈이의 24시

초등학교 6학년생인 서장훈군(12·가명)은 하루 첫 일과를 스마트폰으로 시작한다.

눈을 뜨자마자 베갯머리 밑에 숨겨둔 스마트폰에 손이 간다. 밤새 친구들이 보낸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일어난 기척을 하면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자는 척하며 친구들이 보낸 카톡에 답을 한다.

반 친구들끼리 만든 카톡방에는 밤새 아이들이 나눈 대화가 20개나 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나하나 읽어보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장훈이의 기상시간은 오전 7시30분이다. 시험기간에는 오전 6시에도 일어난다. 아무리 시험기간이더라도 일어나기 전 카톡 확인은 필수다.

씻으러 화장실을 가는 길에도 장훈이는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심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해 뉴스를 본다. 대부분 연예인 가십거리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을 때면 게임을 한다. 주로 하는 게임은 '런닝 프레드'와 '아스팔트'다. 아스팔트는 원래 1000원을 주고 사야 하지만 '블랙마켓'(불법으로 무료 앱 다운로드를 할 수 있는 곳)에서 공짜로 다운로드했다.

집에 있으면서 유일하게 스마트폰을 만지지 못하는 때는 밥 먹는 시간이다. 엄마는 장훈이가 스마트폰을 만지기만 해도 "그만 좀 해라"며 화를 낸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아빠는 지방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한 달에 세 번 정도만 서울에 온다.

■ 스마트폰 하다 등굣길 교통사고

8시20분쯤 집을 나선다.

학교에 갈 때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듣는다. 빅뱅의 '몬스터' 노래를 좋아한다. 인피니트와 비스트도 좋아한다. 동생이 노라조의 '여자사람'을 좋아해서 동생과 함께 갈 때면 이 노래를 틀어주기도 한다.

집에서 교실까지 걸어가는 데는 10분 정도 걸린다. 이 시간에도 장훈이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친구들이 "학교 도착했냐" "나는 도착" 이런 카톡을 보내기 때문이다. 일일이 대답을 해주다보면 어느새 학교 앞이다.

장훈이는 작년에 스마트폰 초기 버전인 '코비폰'을 썼는데 교통사고가 나면서 폰을 바꿨다. 문자를 하면서 걸어가다 차가 오는 것을 못 봤다. 다리에 약간 충격이 있기는 했는데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을 심하게 하면 왼쪽 무릎이 조금 아프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30분 정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도 하고, 게임도 한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애들 대부분이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다. 대화를 굳이 할 필요없이 카톡방에서 수다를 떨면 된다. 같은 반 친구가 아니라도 다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어 편하다.

■ 교사에게 숨긴 채 게임·카톡

수업은 오전 9시부터다.

담임교사가 수업 시작 전에 바구니를 들고 와 "스마트폰을 제출하라"고 얘기하지만 몇몇을 빼곤 대부분이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을 감춰둔다. 장훈이는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휴대폰 숨기기가 습관이 됐다.

학교에서는 카톡을 되도록 적게 한다. 학교는 와이파이(wi-fi)존이 아니라 데이터 사용량이 차감되기 때문이다.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는 하루에 120~150개 정도의 카톡 문자를 보낸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 가면 500개 정도의 카톡 문자를 보내는 편이다. 3만4000원짜리 요금제를 쓰지만 매번 데이터 사용량을 초과해 5만원 정도가 나온다.

수업이 시작되면 되도록 스마트폰을 꺼놓는다.

괜히 카톡을 보냈다가 알림음 때문에 스마트폰을 숨긴 사실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훈이는 수업시간 40분 내내 '친구들이 카톡을 보내진 않았을까'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한다. 몇몇 반 친구들은 알림음을 끄고 몰래 카톡으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쉬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에 집중한다. 요즘엔 10분 만에 '런닝 프레드' 스테이지를 13단계까지 깰 실력이 됐다. 보통 한 스테이지당 3분 정도 걸리지만 장훈이는 빠른 편이다. 석 달 전쯤부터 시작한 런닝 프레드는 현재 랭킹이 국내 80위 정도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카툰 위즈' 게임에 빠졌을 때는 랭킹 800위까지 갔었다.

학교에서 마음 놓고 스마트폰을 만질 수 있는 장소는 화장실이다. 교사들이 복도를 지나가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걸 볼 수도 있어서 게임은 주로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한다.

점심시간에는 스마트폰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같이 점심을 먹기 때문이다.

장훈이의 교실은 5층이다. 친한 친구들은 4층에 있어서 5층에 있는 친구들과 모여서 4층으로 내려간다. 장훈이와 친구들은 모여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굳이 카톡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수업을 마치고 청소까지 하고 나오면 오후 3시 남짓이다. 학원을 세 군데나 다니기 때문에 바삐 움직여야 한다. 주중에는 수학·영어·합기도 학원을 다닌다. 토요일에는 방과후수업으로 학교에서 기타와 필드하키를 배우고 있다.

■ 저녁밥 먹으면서 '웹툰'

학원에서는 스마트폰을 쓰는 게 힘들다. 수학교사가 꽤 깐깐하기 때문이다.

수학교사는 일일이 "휴대폰 가져왔어. 안 가져왔어"라고 물어본다. 가끔은 직접 전화까지 한다. 스마트폰 개수까지 확인한다. 학교보다 훨씬 철저하다. 이때는 장훈이도 스마트폰을 그냥 제출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영어학원은 원어민 교사가 가르쳐서 스마트폰을 따로 제출하지는 않는다. 한국어 발음이 우스꽝스러워서 좀 만만하다.

책상 위로 스마트폰을 올리진 못해도 밑에서 몰래몰래 카톡을 한다. 영어수업 시간에만 카톡을 40~50개씩 주고받는다. 필기할 게 거의 없어서 스마트폰을 사용해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후 7시쯤 영어수업이 끝나면 다시 수학수업반으로 돌아가서 숙제를 한다. 집이나 학교에서는 숙제를 할 시간이 없어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장훈이는 오후 8시30분부터 30분 동안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온다. 학원과 집까지는 5분 거리다. 집에 엄마가 없을 때는 밥을 먹으면서 동생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본다. 요즘 제일 재미있게 보는 것은 < 패션왕 > 이다. 54화까지 봤다. 밥은 엄마가 차려놓고 나가시긴 하는데 먹기 싫을 때는 시리얼만 먹고 나온다. 설거지는 동생이 한다.

오후 9시5분, 수학학원 앞에 학원 셔틀버스가 도착하면 학원차를 타고 가 합기도를 배운다. 합기도를 마친 후 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11시쯤 된다.

합기도 수업이 끝난 뒤에 스마트폰을 꺼내 보면 카톡이 10개 정도는 와 있다.

"뭐하냐" "○○랑 △△랑 사귄다더라" 이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선생님 욕도 많다. 며칠 전에는 여자아이들이 카카오스토리에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봐. 여기서 원하는 것을 말하면 다음에 해줄게"라고 써놓은 글을 봤다. 장훈이가 "욕해주기"를 고르자 여자애들이 카톡으로 "×× 꺼져"라고 욕을 했다. 그냥 다 장난이라 생각한다.

■ PC 없어도 스마트폰 게임 즐겨

오후 11시쯤 집에 도착하면 씻고 나서 바로 컴퓨터를 켠다. 시험기간만 아니면 컴퓨터로 게임을 할 수 있다. 월~목요일은 안되고 금~일요일만 가능해 아쉽기도 했지만 요즘은 괜찮다. 대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면 된다.

장훈이는 12시쯤 침대에 눕지만 잠은 오전 1시쯤에 잔다.

방을 혼자 쓰기 때문에 "잔다"고 말하면 엄마가 굳이 들어오시진 않는다. 이불을 덮고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하고 친구들이랑 카톡으로 대화도 한다. 한 시간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잠이 든다.

장훈이는 스마트폰을 쓴다고 해서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에 31명이 있는데 한 번도 10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1학기 기말고사에는 6등을 했다.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음란물을 보지나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장훈이는 자신이 빠져들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물론 음란물을 보는 친구가 2명 있지만 보고 나서 행동으로 옮기거나 하지는 않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요즘 장훈이에게는 고민이 생겼다. 게임을 할 때마다 엄마가 "너는 스마트폰 중독"이라며 스마트폰을 뺏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훈이는 자신이 중독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이랑 스마트폰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물으면 물론 가족이 먼저이긴 하지만 스마트폰은 장훈이에게는 '목숨'이다. 제일 친한 친구 규현이보다 스마트폰이 중요하다.

< 류인하·유희곤 기자 ach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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