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치유가 필요한 사회 '힐링 신드롬'

2012. 7. 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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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행·출판 산업 등에서 열풍… 팍팍한 현실이 만들어 낸 현상

상처 입은 개인에게는 치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치유는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치유는 이제 하나의 산업이다. 힐링 열풍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자 일종의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행업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여행업계에서 '힐링'을 전면에 내세운 여행상품이 등장한 것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지난 5월, SBS < 힐링캠프 > 에 출연한 법륜 스님이 진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SBS 제공

기업 대상으로 정신건강컨설팅도 등장

노매드 힐링트래블은 지난해 서울시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힐링 여행 전문업체다. 관광 중심 여행이 아니라 심신치유 프로그램 중심의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이 회사가 여행사업을 시작한 것은 10년쯤 됐지만, 힐링 여행상품을 만든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이 회사가 판매하는 국내 힐링 여행에는 심리치유사가 동행한다. 이 회사 윤현덕 팀장은 "힐링 여행은 아직은 초기 단계다. 아직 힐링 전문가들이 많지 않아 심리치유사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래서 힐링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링 여행상품을 찾는 이들도 치유와 위로를 구하는 이들이다. 올해 초 힐링 여행사업에 뛰어든 힐링투어 관계자는 "가족관계나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 힘들다거나 혼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고 상담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여행계의 힐링 열풍이 아직 초기 단계라면, 출판계에서는 힐링이 활황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 서점 YES24 검색창에서 '힐링'을 입력하면, 2001년 이후 출간된 책 67종이 나온다. 이 중 24권(36%)이 지난해 이후 출간된 것들이다. 그 이전의 책들이 < 힐링 소사이어티 > 처럼 종교적인 영성 수련법에 관련한 책이었다면 지난해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책들은 심리치유와 관련된 것들이다.

키워드를 '치유'로 바꾸면 더 많은 책을 찾을 수 있다. 제목이나 부제에 '치유'가 포함된 책들은 840종이 넘는데, 2008년 이후 출간된 책들은 표나게 '치유'를 강조하고 있다. <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 (2008), <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 에세이 > (2008), <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별아 치유의 산행 > (2011), < 치유하는 책읽기 > (2012) 등 치유의 범위는 육아, 여행, 미술, 책읽기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같은 '힐링' 호황을 반영하듯,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아예 매장 한쪽에 '힐링 서적' 코너를 따로 만들어 관련 서적을 배치하고 있다.

힐링은 개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기업 임원과 노동자들 또한 힐링의 대상이다. 정신건강 컨설팅업체의 등장이 그 증거다. 한 정신건강 컨설팅업체는 개인프로그램 이외에 기업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한다. 임원들을 대상으로는 '성찰적 리더십 프로그램', 감정노동자들을 대상으로는 '마음의 상처를 돌보는 심리치유 프로그램'이 있다. 핵심 임원 프로그램은 종합심리검사·상담·워크숍으로 구성되는데, 임원 개인세션은 1인당 350만원, 단체 워크숍은 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한국생산성본부는 지난 5월, 기업 조직원의 정신건강을 진단하는 평가도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정신건강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게 그 이유인데, '직원이 행복해야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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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상반기의 키워드는 힐링이다. 교보문고는 힐링 서적 코너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 정원식 기자

힐링은 대학에도 자리잡았다. 동국대 평생교육원은 지난해 12월 '마음치유사' 과정을 개설했다. 분기별로 진행되는 이 과정의 정원은 20명이다. 지난 6월 4일 시작한 3기 과정에는 6개 강좌가 개설돼 있는데, 한 강의당 25만원의 수강료를 받는다. 3기 과정은 정원 20명을 모두 채웠다.

'마음치유사' 과정을 주관하는 것은 한국마음치유협회다. 이 협회는 스님들이 주축이 돼 2009년에 만들어졌다. 이 협회 등명 스님은 "문명은 발달하고 있는데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음을 치유할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이 마음치유를 배워 자신도 치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마음치유사 과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분들이 마음치유사 과정을 듣고 용기를 얻고 간다"고 덧붙였다.

고통의 완화가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방송계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7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SBS < 힐링캠프 > 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대중의 마음속에 각인시켰다. 최근 베스트셀러 저자로 이름을 얻고 있는 법륜 스님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최근에는 KBS1TV에서 강박증, 폭식증, 공황장애가 있는 출연자 5명이 21일 동안 합숙하면서 심리치료를 받는 과정을 담은 2부작 '탈출 트라우마, 도전 21'이 방송되기도 했다.

이 같은 힐링 열풍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우리 사회의 팍팍한 현실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소득 불평등의 증가, 경제위기, 경쟁의 강화 등은 모두 사회적 스트레스로 작용하는데, 이런 사회적 차원의 고통을 집단적으로 해소할 방법은 없다. 결국 개인적 차원의 치유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힐링을 통한 고통의 완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김태형씨의 말이다. "1980년대에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중심에 두고 개인적인 문제를 등한시했다. 지금은 반대로 개인의 문제가 부각되는 반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관심은 등한시하는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 많은 힐링 상품이 나왔는데도 과연 우리 삶이 좋아졌느냐 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치유는 꼭 필요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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