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조사 받는 조현오 발언, 언론은 왜 받아쓰나

2012. 6. 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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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창] 검찰도 노무현 차명계좌 없다는데, 이것은 명백한 범죄다

[미디어오늘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조현오 전경찰청장의 일방적 주장을 일부 언론에서 이렇게 반복하여 크게 보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사 검찰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차명계좌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있다'고 주장하는 조씨의 주장이 보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지않는 한 이렇게 지속적으로 보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조중동은 노 전대통령에 대한 적대감을 조씨의 입을 통해 지면으로 반영했다. 죽은 노전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에도 아랑곳없이 조씨의 말이라면 일단 키우고 중계방송하듯이 확산시켜왔다. 이번에는 한국경제신문(6월5일자)이 중앙일보의 종합편성채널 JTBC 방송을 기사로 재포장해서 보도했다. 방송이 보도한 것을 신문이 다시 보도하고, 신문이 보도하면 방송이 이를 다시 포장해서 보도하는 식이다. 내용이 문제투성이다.

먼저, 한국경제신문은 JTBC 방송을 인용하면서도 조씨의 주장에 상당한 힘을 보태고 있다. 제목부터 보면, 검찰의 수사를 부정하는 조씨의 말을 크게 부각시켰다.

"조현오 '노무현 차명계좌 검찰도 인정'…계좌 없다는 검찰 주장 반박"(한국경제신문 6월5일자)

한국경제 6월5일자

피의자 조씨의 주장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보도행태이다. 이미 수사중인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은 다루지않는다는 것이 보도준칙이다.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보도하려면 균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피해자의 반론 주장도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피해자의 주장은 없다.

내용은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검찰 수사의 결론을 뒤집는 조씨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필요하다면 그의 주장을 실을 수 있지만 이 경우 이를 뒷받침할만한 물증이나 증인 확보, 새로운 주장 등 무엇이든 근거를 나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타언론사의 보도를 거의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조씨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조 전 청장의 JTBC와의 인터뷰를 인용하여 "검찰도 (노 전 대통령)차명계좌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차명계좌는 있다. 검찰도 그건 부인 못한다. 차명계좌는 2개다. 권양숙 여사 비서들 명의의 계좌며 20억원 정도가 들어 있었다. 검찰은 2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검찰이 얘기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신문은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있다고 확신한다" "분명히 있다" "제가 보증할게요" "있는 건 분명합니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주장이 진실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이 방송이 진실을 보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피의자의 목소리를 크게 보도하며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보도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 언론은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 원칙이란 무엇인가.

첫째,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보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에는 양당사자가 있는 법이고 이를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은 저널리즘의 ABC다. 조씨는 이미 노전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수사과정에서조차 이렇게 두 번 세 번 명예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당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일부 언론은 조씨와의 공범 수준의 보도를 한다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둘째, 수사검찰의 수사결과를 일단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조씨가 주장하는 '20억원 차명계좌는 없다'고 반복해서 말을 했다. 이를 믿고 안믿고는 언론사가 판단할 문제는 맞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조씨의 주장을 계속 주장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보가 되더라도 불법보도가 되지않는다. 법은 오보라고 무조건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 오보를 할 때 그것이 '오보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면책하고 있다. 그 상당한 이유는 일방적 주장이 아닌 최소한의 물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검찰의 수사가 믿을 수 없다면 그 수사 과정이나 내용 등을 문제삼으면 된다. 검찰 수사 대상인 피의자의 말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한국 언론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 밖에 되지않는다. 그 대상이 누구든 최소한의 인격권을 존중하는 언론의 자세는 기본이다.

검찰이 노전대통령의 차명계좌를 있으면서 밝히지 못하거나 공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없는 것도 만들어낼만큼 샅샅이 뒤졌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수사했다고 한다. 조씨의 일방적 주장을 거듭 보도하는 언론의 저의를 납득할 수 없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지만 부당한 개인의 인격권 침해는 막아야 한다. 인권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앞장 서서 이를 짓밟는 일은 민주주의 언론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는 언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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