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의 UFC 익스프레스] 정찬성은 포이리에를 어떻게 격파했을까?

조회수 2012. 5. 18. 13: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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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통쾌한 승리가 있을까. 지난 5월 16일 펼쳐진 UFC on Fuel TV 대회의 메인이벤터로 나선 정찬성이 강적 더스틴 포이리에에게 멋진 서브미션 승을 거두며 타이틀 도전권과 보너스 2개를 동시에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정찬성의 이번 대승을 다시 한 번 짚어보도록 하자.

우선 정찬성이 이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기본적 요인으로는 '오른손잡이 VS 왼손잡이' 대결구도에서 왼손잡이인 포이리에의 게임을 완벽히 무너뜨렸다는 걸 들 수 있겠다. '왼손잡이를 완벽하게 압도한 오른손잡이' 하면 떠오르는 건 단연 프라이드 시절의 효도르 VS 크로캅 전에서의 효도르다. 크로캅과 스탠딩에서 맞선다는 건 거의 자살행위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효도르는 크로캅의 주전장인 스탠딩 타격전에서 게임을 완전히 압도했는데, 그 기본 전략은 '왼쪽으로 돌며 전진해 계속 압박한다.'였다. 효도르의 압박에 된통 걸린 크로캅은 결국 1라운드 만에 완벽하게 탈진했고, 경기가 끝난 후 본인이 왜 그토록 지쳤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사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계속 압박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에서 크로캅은 스탭으로 척 하고 빠지는 모습이 아니라, 이렇게 허둥지둥 중심이 무너지며 가까스로 방어해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이건 타이밍 상으로 효도르에게 자꾸 탁탁 잡혔었다는 얘기인데, 이처럼 밸런스가 무너질 정도로 타이밍을 내주게 되면 정타를 허용하지 않더라도 거머리에게 피 빨리듯 체력이 쭉쭉 빠지게 된다.)

정찬성은 효도르와 방법은 약간 달랐을지 몰라도 어쨌든 왼손잡이인 포이리에를 계속 압박해 질리게 만드는 데 성공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정찬성의 발이었다.

사진에 나와 있듯 이날 정찬성이 공격을 할 때 자세히 보면 항상 본인의 왼발이 포이리에 오른발의 바깥 쪽 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흔히 '상대 발을 먹었다.'고 표현하는데, 왼손잡이를 상대하는 데 있어 타격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발을 먹은 게 아니라 상대 스탭을 잡아서 각도 상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격투 마니아들이라면 왼손잡이와 싸울 때엔 그 왼주먹, 왼발에서 멀어지기 위해 본인의 왼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법칙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발을 먹지 못하고 왼발이 상대 왼손잡이의 오른발 안쪽에 계속 놓이게 되면 왼쪽으로 스탭을 밟아도 소용이 없다. 어디로 움직이든 간에 결국 왼손잡이의 왼손 공격 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찬성은 이날 대부분의 경우, 특히 본인이 치고 들어갈 때는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이 원칙을 지켰다.

이렇게 '일단 발을 먹는다.'는 원칙 하 에 정찬성은 크게 두 가지 타격 패턴으로 포이리에를 압박했다. 첫 번째는 왼손을 슬슬 뻗어주며 포이리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다음, 위 사진에 나온 것처럼 라이트 스트레이트나 훅을 던지며 압박하는 패턴이었다. 여기서 발만큼 또 중요한 게 머리 위치다. 정찬성의 머리 위치를 보면, 포이리에의 오른쪽 어깨 바깥쪽으로 빠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미 얘기한 대로 발을 먹은 상태에서 머리까지 옆으로 빼서 치니 왼손잡이의 주무기인 카운터 왼손 펀치가 나올 수 있는 각도가 거의 사라지다시피하는 것이다. 과거 K-1에서 마이크 잠비디스가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를 KO시켰던 순간 이와 비슷한 각도가 나왔다.

키드의 앞손이 나오는 순간 잠비디스의 라이트 훅이 터지는 장면, 잠비디스의 머리는 키드의 오른쪽 어깨 바깥으로 빠져 있고, 왼발 또한 키드의 오른발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찬성과 완전히 똑같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포이리에가 만일 앞손(오른손)을 좀 더 활용해 변화무쌍한 잽과 훅 공격 등으로 카운터를 날렸다면 정찬성의 이런 패턴에 제동을 걸 수 있었겠지만, 이날 포이리에는 계속 왼손 공격에만 의존하려 하며 자멸의 길을 걸었다.

두 번째 패턴은 정찬성과 포이리에 둘 다 언급한 라이트 어퍼컷으로 시작되는 것이었는데, 이 때 정찬성의 머리 위치는 첫 번째 패턴과는 반대로 포이리에의 왼쪽으로 많이 숙인 상태였다. 하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다. 포이리에의 왼손 카운터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머리를 빼는 게 포인트인데, 중요한 건 머리는 반대 방향으로 숙였을지 몰라도 왼발은 똑같이 상대 오른발 바깥 쪽 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 그러면 어퍼컷을 날리는 순간 상대 카운터를 맞을 수 있는데, 엄청난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정찬성은 이 원칙을 지키며 어퍼컷을 안면과 바디에 골고루 날려주며 재미를 보았다. 특히 포이리에가 왼손 펀치를 치고 들어온 직후엔 꼭 정찬성의 어퍼컷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비제이 펜이 굉장히 잘 쓰는 패턴이기도 하다. 비제이 펜은 오른손잡이끼리의 대결 상황에서 상대방이 크라우칭 스타일로 잽을 치고 들어오는 순간 머리를 살짝 빼 그걸 피하며 오른손 어퍼컷으로 숙인 상대방의 안면을 가격하는 데 능한데, 정찬성이 쓴 기술과 원리가 같다. 선제공격을 날리고 들어온 선수들은 그 공격이 맞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카운터를 경계해 몸을 웅크리게 되어 있다. 비제이 펜이나 정찬성이 쓴 어퍼컷은 그 순간 위쪽으로 보통 날아오는 카운터 펀치를 경계해 몸을 낮춘 상대를 밑에서 위로 올려쳐 딱 잡아버리는 아주 수준 높은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마이크 타이슨처럼 순간적으로 빠르고 깊게 거리를 확 좁히면 이 펀치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패턴은 스탭이 좋고 스피드가 빠르며 상대보다 긴 리치를 가진 선수들이 타이밍을 절묘하게 딱! 하고 잡아야 쓸 수 있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포이리에는 정찬성이 오른쪽으로 숙이는 순간순간 왼발 킥을 높게 차 안면을 노리거나 펀치와 무릎 공격을 섞어 찔러주며 그쪽으로 숙이지 못하도록 만든 후 자신의 게임을 풀어나갔어야 했지만, 정찬성이 그렇게 카운터를 낼 만 한 여유를 주지 않고 틈만 나면 선제공격을 하거나 재빠른 카운터 공격을 날려댔기 때문에 도저히 그럴 기회를 잡지 못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해묵은 격언을 정찬성이 환하게 빛나게 해 주었다고 하면 적합할까.

이런 완벽한 압박에 포이리에의 실수 한 가지가 더해지며 정찬성의 게임은 날개를 달게 되었는데, 바로 '오른발 로우킥의 부주의한 활용'이었다. 이날 정찬성은 두 차례나 포이리에의 킥을 잡아 테이크다운으로 연결시켰는데, 모두 포이리에의 오른발 로우킥을 잡고 들어간 것이었다.

타격 뿐 만 아니라 테이크다운이 가능한 종합격투기에서는 왼손잡이 선수가 앞발(오른발) 킥을 쓸 때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물론 오른손잡이 선수도 마찬가지다.) 원래 왼손잡이 VS 오른손잡이는 서로의 왼쪽, 오른쪽이 훤히 열려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는 왼손과 왼발, 오른손잡이는 오른손과 오른발을 선제타로 구사할 수 있는 반면, 둘 다 앞손과 앞발을 원래 패턴대로 활용해주기란 그만큼 더 어렵다. 그쪽은 서로의 몸이 닫혀 있어 빈틈도 없는데다 각도도 좀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대결구도에서는 뒷손을 선제타로 날리며 각을 만든 후 앞손으로 감거나 올려 때리는 패턴이 많이 나오는데, 펀치 동작이야 그렇다 쳐도 중심이 크게 불안해질 수 밖 에 없는 킥 동작을 쓰려면 굉장히 주의 깊게 타이밍을 살펴야 한다. 앞발 킥 단발로 큰 데미지를 주기는 힘든 반면, 상대는 그 순간 밀고 들어오기가 굉장히 편하기 때문이다. K-1에서 양발 킥을 아주 능숙히 구사했던 미르코 크로캅이 종합격투기로 넘어온 후 왼발 킥의 동작을 최대한 간결하게 가다듬고, 오른발 킥은 거의 봉인하다시피 했던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에 더해 포이리에는 정찬성이 뒤로 빠지는 순간이 아니라 자기 거리를 확실히 잡고 중심을 앞발에 실은 후 받아 때릴 기회를 보고 있을 때 단발 앞발 킥을 날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여러 차례 범했다. 물론 정찬성 입장에서는 '땡큐'였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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