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잡는 '사생 택시' 뒤쫓아보니

김은지 기자 2012. 3. 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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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5일 저녁 7시30분, 서울 상암동 CJ E & M센터. 공연을 보고 나온 팬들이 각양각색의 플래카드를 들고 횡단보도 앞 인도에 섰다. 이동하는 연예인 차를 향해 찰나의 인사를 할 요량이었다. 까만색 밴이 나타나자 소녀들의 함성이 커졌다. 이른바 '공방팬'이다. 공개방송을 보러 다니는 팬이라는 은어이다.

반면 밴이 나오자마자 택시에 올라타는 무리가 있었다. "아저씨 XXXX(차 번호)이요." 밴을 쫓아가는 '사생팬'은 공방팬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 여중생은 "사생 때문에 다른 팬까지 욕먹는다. 쟤네랑(사생팬) 공방팬과 안방팬(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팬)은 완전 다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팬도 "사생은 팬도 아니다. 사생'범'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인기 아이돌 그룹 'JYJ'의 사생팬 폭행 음성이 세상에 공개되고 사생팬의 행동이 여론에 지탄을 받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시사IN 윤무영 3월1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 & M센터 앞에서 아이돌 그룹을 기다리고 있는 '공방팬' 앞으로 밴이 지나가자, '사생팬'이 택시를 잡아타고 있다.

사생팬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팬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붙는다. 연예인이 자주 다니는 미용실과 식당 앞 혹은 숙소와 소속사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노숙도 불사한다. 실제로 국내 3대 엔터테인먼트사라 불리는 JYP·SM·YG 사무실 앞은 팬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JYP 사무실 앞 카페는 팬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다.

기자가 그곳을 찾은 3월15일 오후부터 자정까지 JYP 사무실을 바라보는 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 공부를 하거나 잠을 자며 시간을 때우다 사무실 앞에 밴이 들어오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인 팬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한 일본인(22)은 "2PM을 보기 위해 어제 한국에 왔다. 내일까지 소속사 앞과 숙소 앞을 들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은 "멤버들이 주로 움직이는 밤 시간에 팬들이 더 많이 몰린다"라고 말했다.

택시를 타고 연예인의 일상을 쫓는 일도 부지기수다. 사생팬을 태우는 '사택(사생택시)'뿐만 아니라 사생택시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사생팬이 주로 나타나는 곳에서 택시기사가 연예인 사진과 전화번호가 쓰인 명함을 주며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기본 3시간에 15만원이 '시가'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사생택시 운전사는 "속력을 내서 연예인 차에 붙어야 하고 가끔 사고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정도 받는다. 돈이 조금 비싸다보니 주로 20대 이상이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사생팬이 볼멘소리 하는 이유

한 사생팬이 자기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JYJ 멤버 박유천씨(위) 뺨을 때려 파문이 일었다.

3년 동안 한 아이돌 가수의 사생팬이었던 박미소씨(가명·29)는 "사택(사생택시)은 돈이 많기 들기도 하고, 어느 정도 사생을 뛰면(사생 활동을 하면) 동선을 알기 때문에 10대들은 잘 못 탄다. 대신 현장을 뛸 수 없는 20대 이상이 10대들에게 택시비를 보태주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사생택시를 타봤다는 이민지씨(가명·27)는 "택시 기사끼리 네트워크가 있어서 연예인을 쫓아가다가 놓치면 서로 무전을 해서 정보를 교환해 또 쫓아간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단독'을 하기도 한다. 단독은 자기만 본 장면을 뜻한다. 사생 활동을 하며 한 달에 150만원 정도를 썼다는 김아연씨(가명·29)는 단독 때문에 사생을 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번은 사생 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가 여자친구랑 헤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만 봤다는 게 알려지면서 다른 사생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나도 더 잘 안다는 생각에 좋아서 열심히 쫓아다니고, 남들 다 아는 거 모른다고 생각하면 진 것 같아서 더 쫓아다녔다." 그 내용을 사생팬 간의 네트워크(팬카페나 카카오톡 등)에서 공유하고, 경우에 따라 공개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사생팬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볼멘소리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4년차' 사생팬인 최아란씨(가명·20)는 "다른 팬들도 사생팬이 올려놓은 오빠 정보를 확인하고 사진 보면서, (우리를) 스토커라고 매도하는 건 웃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생팬의 '애정'이 연예인에게는 '피해'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지난해 JYJ 멤버 김재중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7년 동안 밥 먹을 때, 휴식을 취할 때, 집을 들어갈 때마저 죄인처럼 눈치를 보고 숨어다녀야 하는 게 정상적인 생활인가?"라는 글을 남기며 고통을 호소했다. 배우 장근석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사생팬 아이들아. 너네는 날 쫓아다니며 나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안다고 기만하며 수군대고 있겠지. 근데 그거 아냐? 그만큼 너네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이에 대해 한 스포츠지 가요 담당 기자는 "지금까지 연예계에서는 사생팬도 다 팬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극성스러운 만큼 강력한 지지층이자 소비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돌 멤버의 스트레스에는 둔감한 측면이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생팬의 행동이 폭력이라는 공감대가 넓어지면 소속사 쪽에서도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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