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첫사랑의 봉인을 해제시키는 멜로(리뷰)

입력 2012. 3. 16. 11:48 수정 2012. 3. 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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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에 익숙해진 입맛이지만 때로는 아무런 조미료도 가하지 않은 무공해 음식에 감칠맛을 느낄 때가 있다.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그려낸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이 그러한 영화다.

결혼을 앞둔 건축가 승민(엄태웅 분) 앞에 첫사랑 서연(한가인 분)이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15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대학시절 풋풋했던 기억들을 꺼내게 된다.

1996년의 봄, 건축학과 학생인 승민(이제훈 분)과 건축학개론 수업을 듣는 음대생 서연(수지 분)은 한 동네에 살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특정 공간과 음악 등을 공유하면서 두 사람은 교감을 나누고 추억을 쌓아간다.

'첫사랑'은 한국 멜로 영화의 단골 소재다. 수많은 멜로 영화들이 이 소재를 가지고 비극을 그리기도 하고 희극을 그리기도 했다. '건축학개론' 역시 기존의 멜로 영화와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한 감정을 스크린에 재현해내고, 현재에서 재회하는 남녀의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고, 왜 헤어졌으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영화는 잔잔하게 그려낸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시종일관 담백하다. 무리한 설정과 자극적인 에피소드도 없다. 두 사람의 만남은 3월 어느 대학가 한편에서 벌어지는 풍경처럼 익숙하고, 이별 역시 겨울 방학을 앞둔 교정 한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처럼 눈에 익다.

그럼에도 이 뻔한 이야기가 가슴을 두드리는 이유는 누구나 품고 있는 첫사랑의 보편적인 추억을 순박하게 또 정겹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주 감독은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의 감성을 집을 짓듯 차곡차곡 지어 올렸다. 충무로 데뷔 전부터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시나리오는 10여 년간 설계돼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고 지붕을 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 끝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첫사랑과 건축은 닮았다'는 참신한 발상은 건축공학을 전공했던 이용주 감독의 특별한 이력이 있었기에 출발할 수 있었다. 대학교 전공과목과 같은 딱딱한 제목이기는 하지만 어떠한 무게감도 느낄 필요는 없다. 영화에서 '건축'은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시작하고 15년이 흘러 다시 재회하게 되는 감성적인 매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캠퍼스와 정릉의 골목길, 바다를 눈앞에 두고 있는 주택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과 공간을 채우는 건축물에는 두 사람의 감정을 녹아들어 그 자체만으로도 추억을 환기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과거 속의 남녀가 풋풋한 감정을 키워나가는 정릉의 골목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더라도 정겹게 다가올 공간으로 그려냈다.

또 두 주인공을 엮어주는 또 하나의 매개로 등장하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기억의 습작은 '건축학개론'과 만나 대중가요가 영화를 만나 낼 수 있는 최상의 시너지를 낸 셈이다.

'파수꾼'과 '고지전'을 통해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제훈은 풋풋한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을 섬세하게 연기해내 또 하나의 인상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걸그룹 출신의 신인 여배우 수지 역시 첫사랑의 아이콘으로서 손색없는 풋풋한 매력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한가인과 멜로 영화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한 엄태웅의 연기도 안정적인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다. 또 대학생 승민의 연애 카운셀링을 해주는 '납뜩이' 역의 조정석의 감초 연기도 '건축학개론'의 빛나는 발견이다.

가슴을 후벼 파는 비극도, 행복 바이러스가 샘솟는 해피엔딩도 없지만 '건축학 개론'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기억을 꺼내게 하는 힘이 있는 멜로 영화다.

사진 = '건축학개론' 포스터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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