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할미산성, 김유신의 할아버지가 쌓았다"

김태식 2012. 2.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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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구간 첫 발굴조사, 신라유물만 잔뜩

성벽구간 첫 발굴조사, 신라유물만 잔뜩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고대 성곽인 할미산성은 예상대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몰아내고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던 무렵에 쌓은 성곽으로 드러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문화유산연구원(원장 박상국)은 이곳을 보수 정비하려는 용인시 의뢰로 할미산성(경기도기념물 215호) 중 남쪽 성벽 구간에 대한 1차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성벽 축조방법이 전형적인 초기 신라시대 특징을 보이고, 다른 무엇보다 출토유물이 6세기 중반-7세기 중반 무렵 신라시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1일 말했다.

할미산성은 1998년 충북대 중원문화재연구소가 지표조사를 하고 2005년에는 경기도박물관이 시굴조사를 벌인 결과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한 직후 쌓은 퇴뫼식 석축 성곽일 것임이 지적된 바 있다.

이런 추정은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한 발굴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확인됨으로써 할미산성은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새삼 확인됐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조사결과 할미산성 성벽은 지형 흐름에 따라 바닥을 마련한 다음 그 위에 넓적한 돌로 바깥벽을 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바깥벽 바닥 쪽에서는 이른 시기 신라의 전형적인 성벽 축조기법으로 지적되는 단면 이등변 삼각형의 덧댄 시설이 확인됐다. 현재까지 확인한 성벽 높이 5m 이상이다.

성벽 뿐만 아니라 그 내부 공간에 대한 발굴도 진행한 결과 삼국시대 집터 5곳과 원형 구덩이 유적 3기 등을 확인했다. 또 중국제 녹유자기와 6세기 중반 이후 7세기 중반 무렵에 집중하여 등장하는 신라계 토기 유물을 다량 확보했다.

출토 유물 중 안쪽 성벽 보강토에서 청동기시대 돌도끼 1점도 수습함으로써 이 시대에는 할미산성 일원에 고지성 취락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할미산성은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金武力)이 주동이 되어 쌓았을 공산이 아주 커졌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551년 백제와 합동으로 고구려 공략에 나서 한강 중상류 유역을 먼저 차지한 다음 2년 뒤에는 백제가 수복한 한강하류 유역마저 백제에서 탈취했다. 나아가 신라는 이들 한강 유역 지배를 확고히 하고자 그곳에 신주(新州)라고 하는 광역지방행정 구역을 설치하고, 초대군주로 김무력을 임명했다.

김무력은 금관가야 마지막 구형왕의 셋째 아들로 신라에 들어가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의 아들 중 서현이 바로 김유신과 김흠순 형제, 그리고 태종무열왕비이자 문무왕의 어머니가 되는 문명태후의 아버지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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