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예쁘고 서정적인 서해안의 '해를 품은 마을'.. 해돋이 명소 '당진 왜목마을'

2012. 2. 8. 18: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돋이 사진 한 장으로 상전벽해가 된 마을이 있다. 바로 충남 당진시 석문면의 왜목마을이다. 15년 전만 해도 왜목마을은 초가집 일곱 채가 전부인 한적한 어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작가들이 찾아오고 뒤이어 해돋이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왜목마을은 서천 마량포구와 함께 서해안의 육지에서 바다 해돋이를 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다. 지도를 보면 당진시는 내해인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화성시와 평택시를 마주본다. 당진에서도 북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왜목마을은 동쪽으로 바다가 열려 있어 멀리 서해대교 방향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는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왜목이라는 범상치 않은 마을 이름은 와목(臥木)에서 비롯됐다. 와(臥)는 사람이 누워있다는 뜻의 글자이고, 목(木)은 뜻과는 상관없이 음만 빌려왔다. 누워있는 사람의 목을 뜻하는 와목은 이 지역의 방언발음에 따라 왜목으로 변했다. 실제로 장고항포구에서 왜목마을을 보면 나지막한 산 사이로 움푹 들어가 가늘게 이어진 마을의 형상이 누워있는 사람의 목처럼 보인다.

이른 새벽 서해대교를 건넌 차량들이 높은 굴뚝에서 불을 뿜는 당진 현대제철소를 등대 삼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린다. 대부분 현대제철소로 출근하는 차량들이다. 그러나 현대제철소를 지나서도 계속 달리면 십중팔구 왜목마을 해돋이를 보러가는 사진작가나 관광객들이 탄 차량이다.

왜목마을로 가는 차량들은 현대제철소를 지나자마자 10.6㎞ 길이의 석문방조제를 만난다. 일직선으로 뻗은 석문방조제 왼쪽으로는 하얗게 얼어붙은 석문호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석문호는 가창오리를 비롯한 철새들의 보금자리. 날개를 접은 채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는 가창오리는 왜목마을에 해가 뜰 때 쯤 환상적인 군무를 선보인다.

석문방조제를 비롯해 삽교천방조제(3.4㎞)와 대호방조제(7.8㎞)가 들어서기 전 당진에는 수많은 포구가 있었다. 지금은 매립공사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석문방조제에서 왜목마을 사이에는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포구가 두 곳이나 남아 있다. 포구 모양이 장구(장고)를 닮았다는 장고항포구는 왜목마을에서 볼 때 바다건너 해가 뜨는 곳. 5월에 실치축제가 열리는 포구 끄트머리에는 낟가리를 닮은 노적봉과 뾰족하게 생긴 촛대바위가 이색적인 풍경을 그린다.

촛대바위는 장고항포구에서 보면 뭉툭하게 생겼지만 왜목마을에서 보면 촛대처럼 보인다. 촛대바위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와 왼쪽으로 돌아가면 천정이 뻥 뚫려 있는 해식동굴이 나온다. 삼각형 모양의 동굴 천장에는 소나무 가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신비로움을 더한다.

장고항포구와 이웃한 용무치포구는 다행히 개발의 손길이 비켜 간 곳으로 눈 덮인 갯벌에는 작은 어선 몇 척이 한가롭게 누워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는 깨진 얼음덩어리들이 남극의 유빙처럼 떠다니고 포구 너머로는 화성시에 속한 국화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해마다 이맘때면 왜목마을은 이른 새벽부터 사진작가들로 북적인다. 사진 찍기 좋은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삼각대를 세워놓고 자동차에서 눈을 붙이는 사람이 있을 정도. 포구 한쪽에 늘어선 수백 명의 사진작가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망원렌즈를 설치해 높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왜목마을에서는 연중 장고항포구와 국화도 사이에서 솟는 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진작가들을 매료시키는 작품은 2월과 11월에 각각 보름동안 장고항포구의 촛대바위에서 솟는 해돋이. 가을에는 해무로 인해 해돋이를 못 볼 확률이 높아 사진작가들은 해마다 2월이 오면 왜목마을에서 치열한 자리다툼을 한다.

왜목마을을 서해안 최고의 해돋이 명소로 만든 주인공은 마을 주민 조선형(64)씨. 현재 당진사진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사진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마을에서 늘 보던 해돋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가 20년 전인 1992년. 그로부터 5년 후 사진동호회에 가입한 조씨가 그 사진을 발표하자 사진작가들이 너도나도 왜목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을 뒷산인 해발 70m 높이의 석문산은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포인트. 정상에 오르면 왜목마을 서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대호간척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반대쪽은 해돋이 명소인 왜목마을로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 행사 때는 10만 명의 관광객이 운집하기도 했다.

왜목마을의 변신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초가집이 헐리고 음식점과 펜션 등이 하나 둘 생겨나더니 어느새 50여 채로 늘었다. 주민들이 "지난 10년 동안 해돋이 사진 한 장으로 먹고 살았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닌 듯 마을에는 지금도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서해는 동해보다 5분 정도 늦게 해가 뜬다. 마을 아낙들이 썰물 때를 만나 시시각각 넓어지는 갯벌에서 갯돌에 붙은 굴을 딴다. 하늘이 열리고 나서도 좀처럼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느닷없이 촛대바위에 촛불을 밝혀 놓은 것처럼 해가 걸린다. 갑자기 몰려온 구름 탓에 그때 그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동해의 해돋이는 장엄하고 화려하지만 왜목마을의 해돋이는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해가 육지에서 솟기 때문에 바다처럼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는 황홀한 노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잔의 심지를 돋우듯 고도를 높이던 해가 구름 속을 드나들며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장면은 왜목마을에서 볼 때 더욱 감동적이다. 촛대바위에 해가 걸리는 날이 정해져 있는데다 그것도 손에 꼽을 정도로 며칠 안 되기 때문이다.

당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goodnews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