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쪽방에 누우니 10cm 여유 .. 외풍이 내 코를 때린다

입력 2012. 1. 17. 00:11 수정 2012. 1. 1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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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구의 서울 진(眞)풍경 - ① 건축가, 도시 쪽방을 가다

서울 창신동 쪽방 골목 내 한옥 마당. 한 칸 한 칸이 쪽방으로, 생활에 필요한 세간살이가 밖으로 나와 있다. 정면엔 공동 수도가, 왼쪽엔 토끼를 기르는 우리가 있다. 공간을 두루 볼 수 있도록 파노라마로 찍어 붙였다.

조정구서울은 숨가쁘다. 건축도 그렇다. 초고층 스카이라인과 낡은 연립주택이 공존한다. 건축가 조정구(46)씨는 13년째 서울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다. 매주 시장통을, 쪽방촌을, 그리고 오랜 주택가를 순례하며 건축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조씨가 격주로 '서울 진(眞)풍경'을 연재한다. 우리네 삶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이자, 우리 도시의 앞날에 대한 제안이다.

집과 노숙의 경계, 도시 쪽방은 그 지점에 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주거이자, 살 수 있는 최소 공간이다. 연말연시 뉴스 메뉴에서 빠지지 않지만 정작 그 안의 모습이 어떤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찾았다. 현재 동대문 밖 창신동 일대엔 54개 건물에 490개의 쪽방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하는 창신동 일대 생활문화자료조사에 참가, 쪽방 골목과 건물의 실측조사를 맡았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져 버릴 곳이다.

 지난달 20일 오후 9시, 북적대는 동대문에서 옛 기동차 길로 들어섰다. 뚝섬에서 동대문을 오가며, 유원지 가는 이들과 채소를 실어 나르던 기찻길이다. 1932년 개통돼 63년까지 다닌 디젤 기차인 기동차도, 선로도 없어지고 이름만 남았다. 캄캄한 길 위에 모텔 간판만 등불처럼 떠 있다. 길 양쪽으로 쪽방촌이 있다. 위쪽은 오랜 골목에 쪽방으로 변한 여인숙과 한옥이, 아래쪽은 불타버린 판자촌에 빼곡히 들어선 70년대 쪽방 건물이다.

 아래쪽 골목, 춥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어느 집에선가 나온 아저씨의 안내로 방을 찾아 들어갔다. 길로 바로 난 문을 열고 들어선 통로는 폭 60㎝도 안 됐다. 길보다 낮은 바닥. 주인 할머니를 따라 방 두 개를 지나쳐 맨 끝으로 갔다. 방엔 기척이 있었다. 안내하고 나오는 할머니를 비켜설 공간이 없어 다시 길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야 했다.

 작고 낡은 방, 미닫이 문을 닫는다. 때 낀 작은 냉장고 위에 볼록한 브라운관 TV가 놓였다. 그 옆 3단 서랍 위엔 전에 살던 이의 세간인지 도시락만한 나무 도마, 이쑤시개가 담긴 플라스틱통이 놓여 있었다. 선반엔 보호 커버가 벗겨진 작은 선풍기, 할머니가 걷어 놓은 이불과 베개가 있다.

 춥고 작은 방, 머리를 서랍장 옆으로 끼워 넣듯 밀어 넣어 가까스로 몸을 펴고 누웠다. 10㎝ 정도 남았다. 등과 허벅지 정도에나 전기보일러의 온기가 전해졌다. 외풍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내 무릎 위를 맴돌았다. 쪽방은 '하나로 온전한 방이 쪽이 나서 나뉘게 됐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날그날 하루치 방세를 내고 묵는 간이숙소를 일본선 '도야'라 한다. 도야는 숙소라는 뜻의 '야도-宿'를 거꾸로 말한 것. 쪽방이든 도야든 그 이름엔 가난한 이들의 애환과 해학이 담겼다.

 주인할머니 어씨(72)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이다. 피난 나와 부산서 하꼬방을 짓고 살았다. 어머니가 먼저 서울의 지금 이곳에 자리잡고 식구를 불러 올렸다. 그게 1957년, 열 일곱 살 때였다. 이 하꼬방 동네에선 한 방에 10명, 많게는 20명도 살았다. 동네엔 색시집도 많았다. 69년에 큰불이 났다. 근처 살던 아이들이 라이터에 가스를 넣으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동네가 모조리 타고, 동문 시장도 사라졌다. 그와 함께 많은 것이 사라졌다. 아편 하던 한센병 환자들, 망태를 메고 다니던 넝마주이 재건대로 사라졌다. 몇 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블록으로 다시 집을 지었다. 하꼬방 판자집은 지금의 쪽방이 됐다.

 이 근처는 모두 월세다. 한 달 14만원, 최근엔 난방비로 1만원을 더 받는다. 투숙객은 모두 남자. 폐지 줍는 이, 기초생활 수급자, 노인, 장애인, 인력시장에 드나드는 이들이라 했다. 살다 살다 여기까지 흘러 든 이들이다.

 쪽방, 고맙기도 쓸쓸하기도 하다. 이나마 몸을 누일 수 있다는 게 고맙고, 이 조그만 방의 고독과 추위가 쓸쓸하다. 고른 곳 하나 없는 벽에 엉긴 벽지를 보며 가까스로 잠을 청했다. 화장실은 좁은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길가로 나와 다시 다른 집 문을 열고 들어간 계단 밑에 있었다. 방에 누울 때보다 한층 더 몸을 구긴 채 일을 봐야 했다.

 쪽방은 이 지역 중심이다. 동대문 쪽방의 경우 1호선 전철이 있고, 시내가 가깝지 않았다면, 그곳에 쪽방이 형성되지 않았을 거다. 보기 싫다 해서 거주자들을 시설로 보낸다고 쉽사리 없어질 곳도 아니다. 개발의 여러 계산에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것, 쪽방의 생명력엔 이유가 있다. 주거의 최후 전선이다. 서울의 어제가 그대로 담겨있다. 이를 도시공간으로 되살리는 일, 우리 건축가에게 떨어진 일이다.

글·사진=조정구(건축가)

실측조사 =강동균·황주현·윤다원·홍혜리·최수연

◆조정구

=건축가. 2000년 구가도시건축 설립.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을 화두로 삼고 있다. 대표작으로 서울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 대상을 받았고,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서울 서대문 한옥에서 4남매를 키우며 산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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