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층층 다랑논에 누런 가을이 겹겹이

2011. 10. 7.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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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함창 낙동강-속리산 트레킹

[동아일보]

상주갑장산 발아래 낙동면 용포리 층층 다랑논. 벼이삭들이 노릇노릇 잘도 익었다. 산들바람이 불면 노랑물결이 일렁이며

어찔어찔 멀미를 한다.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흐느적거리는 누런 벼이삭들. 따가운 가을햇살에 온몸을 부비며 신열을 삭인다.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논두렁에선 메뚜기들이 화들짝 놀라 팔딱팔딱 뛴다. 옥수수 알갱이처럼 가지런히 줄지어 떠 있는 하늘의 양떼구름

새털구름. 푸른 하늘에 돌멩이를 던지면 그만 쨍그랑! 하고 깨질 것 같다. 상주=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상주 함창 공갈못에/연밥 따는 저 처자야/연밥 줄밥 내 따줄게/이내 품에 잠자주소/잠자기는 어렵잖소/연밥 따기 늦어가오/상주 함창 공갈못에/연밥 따는 저 큰 아가/연밥 줄밥 내 따 줌세/백년언약 맺어다오/백년언약 어렵잖소/연밥 따기 늦어진다.//농요 '상주 함창 공갈못 노래'에서》

'공갈못'은 왜 하필 '공갈못'일까. 왜 공갈못이라고 불렸을까. 공갈못의 한자식 이름은 '공검지(恭儉池)'이다. 조선시대 관아에서나 요즘 관청 서류엔 공검지로 통한다. 그런데도 상주 함창 사람들은 한사코 '공갈못'이라고 말한다. 왠지 공갈못이라고 해야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공갈못은 바로 상주 함창 사람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피와 땀, 눈물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저수지 둑은 순전히 상주 함창 사람들의 고단한 부역으로 쌓은 것이다. 공갈은 어린아이 이름이다. 부역을 나오지 않았다고 그 집 아이를 둑 속에 산 채로 묻었던 것이다. 공갈이는 바로 상주 함창 농민들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들의 자식이었다. 비록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도 의미심장한 뼈가 있다. 오늘날 공갈못은 많이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그런대로 그 뼈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눈물겹다.

상주(尙州)는 '오래된 고을'이다. 천년고도 경주(慶州)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곳이다. 경주, 상주의 앞 글자 한 자씩을 따 경상도(慶尙道)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주는 암소 배 속처럼 아늑한 땅이다. 고즈넉하다. 들이 널찍하고, 쌀과 밭작물 등 오곡이 넘쳐난다. 이른바 '웅주거목(雄州巨牧)'의 고을이다.

사람으로 치면 배 위쪽의 명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서북쪽은 속리산 줄기가 큰바람과 추위를 막아주고, 동남쪽은 낙동강이 휘돌아나가며 들판을 적셔준다. 서북쪽은 밭이 많고 동남쪽은 들이 넓다. 상주 전체로 보면 밭 39%, 논 61%의 황금비율이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노른자위 땅이다. 밥사발 안쪽의 우묵배미 고래실이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기대고 산다./햇살 따가워질수록/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이성부의 '벼'에서

상주의 가을은 낙동강 언저리 들판에서부터 온다. 속리산 쪽은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았다. 함창들판 벼이삭이 노릇노릇 알맞게 익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흐느낀다. '시일야방성대곡∼'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운다. 몸을 낮게 들썩이며 훌쩍거린다. 금물결이 일렁인다. 붉은 저녁노을 물결이 출렁인다. "쏴아∼" 바람이 깔깔대며 지나간다. 누런 벼이삭들이 머리끄덩이를 통째로 잡힌 채, 마구 고개를 조아린다. 햇살이 따갑다. 벼들은 서로 온몸을 비비며 노여움을 삭인다.

갑장산(해발 805.7m) 발아래 낙동면 용포리 다랑논은 층층이 파노라마다. 연노랑 진노랑, 오겹 칠겹, 색색이 겹주름이다. 우리나라 최대 다랑논으로 이름난 곳이다. 메뚜기 이마빡만 한 논배미가 수두룩하다. 금쪽보다 귀했던 쌀 한 톨. 돌로 쌓은 논두렁이 성벽만큼이나 높다. 작은 논배미가 예쁜 상고머리 닮았다. 잘 깎은 밤톨 같다.

용포마을 이인희 이장(52)은 "서너 평, 대여섯 평 다랑논은 트랙터가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모든 걸 손으로 하는 수밖에 없지요. 요즘 갑장산 멧돼지들이 어찌나 말썽을 부리는지 밤엔 불을 놓아 지켜야 합니다.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은 힘이 드니까 아예 감나무를 심어버립니다"라고 말한다.

상주 서북쪽엔 우복동천(牛腹洞天)이 있다. 洞天(동천)이란 원래 '하늘이 돈짝 만하게 보이는 통바위골'을 뜻한다. 전란·굶주림·천재지변 3가지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지를 말한다. 한마디로 숨어살기 좋은 곳이 동천이다. 우복동천은 '속리산(해발 1057.7m)-도장산(해발 827.9m)-청화산(해발 984m)'을 세 꼭짓점으로 하는 골짜기이다. 암소 배 속 같은 통바위골인 셈이다. 요즘 행정구역상으로는 상주시 화북면 일대이다.

속리산 문장대는 보통 보은 법주사에서 오른다. 조선 세조 임금(재위 1455∼1468년)도 법주사 복천암을 지나 문장대에 올랐다. 조선 정조 때 학자 이동항(1736∼1804)도 '갓과 옷을 벗고, 바위틈을 따라, 몸을 굽히고 꺾으면서' 문장대에 올라갔다. 수많은 선비도 마찬가지였다. 문장대는 세조가 신하들과 글을 논했던 곳이다. 그래서 이름이 운장대(雲藏臺)에서 문장대(文藏臺, 文莊臺)로 바뀌었다.

그렇다. 보은 법주사는 연꽃의 꽃심이다. 미륵부처가 사는 도솔천이다. 묘봉-관음봉-문장대-문수봉-신선대-입석대-비로봉-천왕봉은 꽃술을 둘러싸고 있는 연잎이다. 법주사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왁자하다. 미륵보살의 땅이다. 부처님의 나라이다.

우복동천은 선비들의 땅이다. 도사들이 숨어 사는 곳이다.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린 선비들이 고사리를 캐먹으며 살던 이상향이다. 널찍한 연잎 아래 숨어 있다. 어두운 등잔 밑과 같다.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속리산 문장대는 불교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극히 유교적이고 도교적이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 33번지이다.

"속리산 산 정상은 문장루대(文藏樓臺, 文莊樓臺)이다. 천연적으로 돌이 포개져 힘차게 공중에 솟아 있는데, 그 높이는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넓이는 3000명은 앉을 만하다. 대(臺) 위에 가마솥 같은 구덩이가 있는데, 물이 철철 넘쳐서 가뭄에도 줄지 않고, 장마에도 불지 않는다. 이 물은 세 갈래로 나뉘어 반공(半空)으로 흘러내리는데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낙동강이 되고,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금강이 되며, 서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꺾인 것은 달천(川·남한강 상류)이 된다."

-조선 성종시대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서

속리산은 불교적이며 도교적이고 또한 유교적이다. 암벽과 소나무와 구름이 결코 다투지 않는다. 다소곳하면서 우아하다. 고은 시인은 '중년 여인의 관능적 음덕을 지녔다'고 말한다. 가을 속리산 문장대는 상주 화북 쪽에서 어깨를 타고 올라가는 게 제 맛이다. 산도 하늘도 말갛다. 속기(俗氣)가 없다. 화장기 없는 쌩얼 그대로이다.

속리산(俗離山)은 속세를 떠난 산인가. 아니다. 속리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건만, 사람이 스스로 도를 멀리하고(道不遠人人遠道),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았건만, 세속이 스스로 산을 떠났을(山不離俗俗離山)'뿐이다.

석공이 빚은 야외 설치미술 전시장. 막걸리 한잔 걸쳐 불콰한 신선이, 비스듬히 쓰고 있는 듯한 떡시루왕관 문장대. 뭉툭한 맷돌 같은 머릿돌. 큼직큼직한 함지박 바윗돌. 문장대 돌바닥엔 둥글게 파인 자리가 군데군데 보인다. 신선들이 앉아 있다 간 곳일까. 아니면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던 자리일까. 얇은 돌조각들이 알 부스러기처럼 널브러져 있다.

낙동강(洛東江)은 '상주 동쪽에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 상주의 옛 이름이 '낙양(洛陽)'이다. 그만큼 양지바른 땅이다. 상주 서쪽은 낙서, 상주 남쪽은 낙평, 상주 북쪽은 낙원(낙상)이다. 지금도 상주 곳곳의 땅이름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낙동강 따라 걷는 길은 흥겹다.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간질인다. 비봉산 낙동강길이 안성맞춤이다. 경천대∼자전거박물관∼경천교∼비봉산∼청룡사∼상도촬영장∼경천교∼경천대에 이르는 10.8km 코스이다. 슬슬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늘을 떠받친다'는 뜻의 경천대(擎天臺)는 낙동강 1300리 중에서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우뚝 솟은 절벽에 푸른 소나무 숲이 황홀하다. 푸른 숲, 쪽빛 강물, 남색 하늘에 금빛모래사장. 발걸음이 가볍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 Travel Info >

■ 교통 버스

= 동서울터미널~상주(30분 간격 오전 6시~오후 11시, 하루 23회),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오전 7시~오후 7시 40분, 하루 19회) 승용차=서울→중부고속도로→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상주나들목, 서울→중부고속도로→증평나들목→청천→사담→상주(화북)

※상주버스터미널 054-534-8250

■ 먹거리

▽청기와숯불가든 한우고기 054-535-8107 ▽ 지천 통나무집 콩나물밥 054-533-3313 ▽가미한식 054-534-0922

■ 상주 은자골 막걸리

3대가 100년 동안 이어온 양조장. 누룩을 직접 빚어 쓰며 서울 인사동에서도 인기 있는 쌀막걸리. 맛이 산뜻하면서도 깊은 농주 맛이 일품. 서울로 택배도 가능. 054-541-6409, 011-525-6409

▼속리산 경업대엔 임경업 장군 자취 곳곳에▼

문장대에서 바라본 속리산 전경. 석공이 빚은 야외설치미술 전시장같다. 우렁우렁한 바윗덩이와 늘 푸른 소나무, 그리고 쪽빛 하늘이 잘 어우러졌다.

무협은 '어른들의 동화'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무협 이야기라면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강호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옛날에도 똑같다. 저잣거리 화제는 단연 영웅들의 기상천외한 무용담이었다.

속리산은 임경업 장군(1594∼1646)의 무예도장이다. 곳곳에 임경업 장군의 자취가 전설로 내려온다. 경업대(慶業臺)는 장군이 무예를 닦은 봉우리(해발 1028m)이다.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우뚝우뚝 솟았다. 늙은 소나무들이 그 돌덩어리 어깻죽지에 뿌리를 박고 우렁우렁 서 있다. 소나무 거북껍질이 임 장군의 갑옷비늘을 닮았다.

임경업 장군은 '사내대장부는 모름지기 무예에 통달해야 한다'고 믿었다. '공부는 이름 석자 쓸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노래한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석자 용천검은 만권의 서적과 같네/하늘이 나를 냄은 어인 뜻인가/산동에 재상 나고 산서에 장수 난다는데/저들이 대장부면 나 또한 대장부 아니냐'

입석대는 임경업 장군이 누워 있던 바위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는 바윗덩어리이다. 7년 동안 무예를 익힌 뒤, 그동안 닦은 실력을 시험해 봤다는 것이다. 장군이 장검을 내리쳐 두부 자르듯 바위를 잘랐다는 금강석문도 있다. 금강석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관음사가 나온다. 장군이 토굴을 파고 머물던 곳이라 하여 임경업 토굴로 불리는 곳이다. 관음사 입구 바위동굴 속에는 장군이 마셨다는 장군수(석간수)가 지금도 고인다.

조선 민중들은 임경업 장군을 신으로 만들었다. 깎아지른 절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훌쩍훌쩍 뛰어다니고, 집채만 한 바윗돌을 공깃돌 굴리듯이 굴리는 초인. 그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다. 그는 형장에서 "아 나는 어찌하여 이 좁은 조선 땅에서 태어나 초라하게 살다 가는가! 천하의 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하다니…"라며 발을 굴렀다. 그는 오직 나라를 위해 검술을 익히고 병법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던 나라가 그를 버렸다.

"때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한번 나서 한번 죽는 것이 이와 같네/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이 마음/석자 추련검(秋蓮劍)을 십년 동안 갈고닦았네"

▼상주 감고을 축제 12∼16일▼

상주는 삼백(3白)의 고장. '쌀·누에·곶감'이 그것이다. 흰쌀, 흰 누에, 흰 곶감. 곶감에선 하얀 분말이 나온다. 상주곶감은 전국 판매량의 60%(1224억 원어치)를 차지한다. 떫은 감인 상주둥시를 깎아 말려 만든다.

2011 상주 감고을 축제가 12일부터 16일까지 5일 동안 열린다. 감 깎기, 감 염색, 탈곡, 디딜방아, 누에실뽑기, 다슬기 줍기 등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자전거 고장답게 자전거 묘기도 볼 수 있다. 상주는 자전거가 8만5000대(인구 11만 명)에 교통 분담률이 무려 21%나 된다. 최근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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