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뛰어 넘은 SF작가 _ 장편 '신의 궤도' 낸 배명훈

어수웅 기자 2011. 8. 29.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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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에 패기의 도전장.. 본격 문학 진영서도 러브콜"난 쓰고 싶은 걸 쓸 뿐

작가 배명훈(33)을 만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는 기자와 정확히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SF를 쓴다더니 초감각을 지닌 것일까.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그가 휴대전화를 꺼냈을 때 한 번 더 멈칫했다. 미래를 배경으로 쓰는 작가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구형 모델. 번호도 017로 시작했다. 10년 넘게 같은 번호를 쓰고 있다고 했다. 선량한 대학원생의 표정을 지닌 이 작가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5년 뒤 미래를 알려면 최신 트렌드를 공부해야겠죠. 하지만 100년 뒤 미래나 트렌드를 쓰려면 어떨까요. 역사와 과거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작 '신의 궤도'(전 2권·문학동네)를 펴낸 이 젊은 작가의 관심은 '세계에 대한 해석'이다. 자아의 내면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계의 작동 원리에 대한 호기심. 이는 사실 그의 전공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한 이 젊은 작가는 "1차대전 전쟁사에 관해 학위 논문을 썼다"고 했다. 지구가 만든 인공낙원 행성 '나니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의 궤도'는 표면적으로는 모험 가득한 우주개척사 혹은 낭만 넘치는 행성 전쟁사. 드라마만 따라 읽어도 장르적 재미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독서를 거듭할수록, 양파 껍질의 외피 속에 숨은 작가적 욕망이 겹으로 드러난다. 그 욕망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쌓아올린 종교와 철학체계에 던지는 패기의 도전장이기도 하다. '인공위성의 궤도를 따라 도는 신(神)'이라는 상상력, 행성의 남반부와 북반구 사이에 권력 투쟁… 인간의 욕망과 자아의 내면에 집중하던 그간의 한국 문학 입장에서 보면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의 상상력인 것이다.

최근 배명훈에 대한 관심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2009년 첫 책 '타워'를 펴냈을 때만 해도 SF 작가로 불렸지만 이제는 소위 본격 문학 문예지들도 앞다퉈 그에게 청탁한다. 지난해에는 단편 '안녕! 인공존재'가 출판사 문학동네가 주관한 '제1회 젊은작가상'(심사위원 박완서 신경숙 윤대녕 황종연 신형철)의 수상작으로도 뽑혔다. 문학평론가들의 조명도 잇따르고 있다. "장르라는 표면장력을 빌려 새로운 문학도로를 질주"(강지희),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도 섬세함과 정교함을 잃지 않고 있다"(권희철).

하지만 갑자기 쏟아진 문단의 관심이 정작 그에게는 좀 느닷없기도 하다. 자신은 원래 SF 마니아도 아니었고 '문단문학'에도 별 관심 없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왔다는 것. '문단문학'이란 표현의 까닭을 묻자 "순문학이라고 하면 왠지 장르문학은 '불순문학'으로 들리고, 본격 문학이라고 하면 반대쪽은 '본격적이지 않은 문학'으로 들리잖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작가들은 원래 꼬리표를 싫어하는 것 같다"면서 "SF 진영에서 청탁을 하면 일부러 장르 농도를 옅게 한 작품을 쓰고 문예지에서 원고 청탁을 하면 일부러 '우주 전쟁' 이야기를 쓴다"며 웃었다.

재능 있는 많은 작가에게 글쓰기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한글을 처음 배웠을 때 유치원생 배명훈의 취미는 어머니에게 드릴 동시 쓰기였다고 했다. 부모님과 교수님은 대학 전공을 직업으로, 글쓰기는 취미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원래 옆길로 새는 걸 격려·고무·조장하는 게 서울대 외교학과 학풍"이라고 유머러스하게 받았다. 그러고는 "솔직히 글을 쓸 때가 가장 재미있다"면서 "내가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세 번째로 멈칫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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