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환의 백투더 KBL] '흥미 쑥쑥' 가드형 외국선수, 돌아올 순 없는가?

최창환 기자 2011. 6. 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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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 포지션으로 KBL을 주름잡았던 외국선수들을 떠올리면 마치 멸종된 공룡이 연상된다. 한때 무서운 기세로 KBL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

KBL에는 언제부턴가 '몸빵형' 외국선수가 득실거리기 시작했고, 화려한 테크닉을 갖춘 가드형 외국선수는 화석으로 남은 머나먼 옛날의 공룡과도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다.

국내 농구 팬들에게 '화려한 농구'를 선사했던 단신 외국선수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KBL에 길이 남을 화석이 된 가드형 외국선수와 그들이 멸종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단신 외국선수의 컴백 가능성에 대해 진단해본다.

'최초의 테크니션' 제럴드 워커부터 알렉스 스케일까지

KBL을 찾은 단신 외국선수 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은 단연 제럴드 워커(38, 184cm)다. 원년 시즌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안양 SBS(현 한국인삼공사)의 부름을 받은 워커는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노 룩 패스와 전광석화 같은 돌파 등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이며 국내 농구 팬들에게 쇼킹을 안겨줬다.

다재다능한 능력까지 뽐내며 KBL 출범 첫 트리플 더블의 영예까지 차지한 워커는 중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SBS를 원년 시즌 준우승으로 이끌며 자신의 진가를 끌어올렸다.

워커가 이룩한 단신 가드의 '코리안 드림' 바통은 버나드 블런트(40, 188cm)가 이어 받았다. 키는 작았지만, 블런트의 1대1 공격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폭발적인 공격력을 앞세워 데뷔 시즌에 신생팀 경남 LG(현 창원 LG)를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블런트는 이듬해 카를로스 윌리엄스, 서장훈 등 쟁쟁한 득점머신들을 제치고 득점 1위(평균 29.9점)에 오르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단신 외국선수의 활약은 외국선수제도가 자유계약제로 바뀐 2004-2005시즌에도 계속됐다. 드숀 해들리의 대체 외국선수로 서울 삼성에 입단한 알렉스 스케일(33, 186cm)은 돌파면 돌파, 외곽이면 외곽 등 해결사 능력이 뛰어난 외국선수였다.

원맨 속공 상황에서 스케일이 보여주는 화려한 덩크슛은 삼성의 농구를 한층 신명나게 만들었다. 당시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서장훈은 "함께 뛰었던 단신 외국선수 중 최고였다"며 스케일의 기량에 대해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스케일과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처드니 그레이(33, 187cm) 역시 시즌 도중 퇴출됐지만 단신으로도 KBL에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외국선수다. 그레이는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넘나들며 원주 TG삼보(현 동부)의 경기력에 안정감을 심어줬다.

그레이와 함께 뛴 바 있는 김주성은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선수 중 1명이다. 도중에 짐을 쌓지만 TG삼보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헌을 한 선수"라며 그레이를 회상했다.

골밑 강화를 위해 그레이의 퇴출을 감행한 전창진 감독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그레이는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한국을 떠났다.

화석이 돼야만 했던 이유

전창진 감독이 무난한 활약상을 펼치던 그레이를 퇴출시킨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골밑 강화'였다. 자유계약제가 처음으로 시행된 2004-2005시즌, 각 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준급 빅맨을 공수해왔고, 이 때문에 자밀 왓킨스를 보유하고 있던 TG삼보조차도 김주성의 체력부담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레이는 31경기 만에 퇴출됐다. 그리고 TG삼보는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그레이 퇴출로 인한 팬들의 원성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TG삼보 입장에서 탁월한 외국선수 교체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단신 외국선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그레이와 스케일은 187cm 이하의 신장으로 KBL을 누빈 마지막 외국선수가 됐다. 220cm(크리스 알렉산더, 217cm)에 육박하는 외국선수가 뛰는 등 KBL 외국선수의 장신화 추세, 단신선수의 단절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180cm대의 외국선수가 활약했던 것을 감안하면, 공룡이 멸종된 것과 같이 눈 깜빡할 사이에 단신 가드의 존재감이 사라지게 된 것.

사실 단신 가드의 비중이 줄어든 것은 최근 1~2년 사이에 발생한 일은 아니다. 출범 초기만 해도 KBL에서 단신 가드가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두에 언급한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는 외국선수 외에도 작은 키로 KBL에 입성한 선수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7-1998시즌 광주 나산(현 부산 KTF)에서 뛰었던 아도니스 조던의 신장은 웬만한 국내선수보다도 작은 178cm였다.

단신 외국선수의 수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이유는 외국선수 신장제한 규정의 변화에 있다. 원년시즌 외국선수의 신장은 203.2cm 이하 선수 1명, 190.5cm 1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국내의 장신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하지만 서장훈, 현주엽 등 체격 좋은 토종선수들이 잇따라 데뷔, 2000-2001시즌을 앞두고는 외국선수 2명 합계 398.78cm(최대 208.28cm)로 바뀌게 돼 외국선수의 트렌드에도 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게 됐다.

수준급 토종 빅맨을 견제하기 위해 체격 좋고 몸싸움도 좋은 '조니 맥도웰 타입'의 외국선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서장훈이나 김주성 정도의 빅맨을 보유한 팀이 아니라면 단신 외국선수에게 눈길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설상가상 2008 신인 드래프트에서 역대 최장신 센터인 하승진(221cm)이 전주 KCC의 부름을 받자 KBL은 외국선수의 신장을 폐지하는 강수를 띄웠다. 농구는 키가 클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다.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림을 향해 더 많은 득점을 올려야 승리를 챙길 수 있는 종목이니 당연한 이치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지겠다. 서장훈과 김주성, 하승진과 이승준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184cm에 불과한 제럴드 워커를 선택하겠는가, 217cm의 크리스 알렉산더를 선택하겠는가. 단신 외국선수들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다.

단신 외국선수, 돌아올 수는 없을까?

신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한계도 분명하지만, 단신 외국선수는 NBA에서나 나올 법한 하이라이트 장면에 목말라했던 국내농구팬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했던 존재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신장제한이 폐지되고, 각 팀들이 지키는 농구에 초점을 둔 전략을 선호하면서 단신 외국선수는 각 팀 관계자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타입이 되어버렸다.

2008-2009시즌부터 KBL은 외국선수의 신장제한을 폐지했다. 오는 2011-2012시즌부터는 기존 2명 보유 1명 출전에서 1명 보유로 외국선수 선택에 대한 폭이 더욱 좁아진다.

이런 제도 속에서 단신 외국선수가 컴백할 수 있을까. 너무도 뻔한 질문이다. 농구 관계자들 역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단신 외국선수의 컴백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상윤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 또한 "가끔씩 '앨런 아이버슨(183cm) 같은 선수가 KBL에서 뛰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제도에서 그렇게 작은 선수를 데려올 구단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국선수의 신장제한 제도가 되살아나지 않는 이상 단신 외국선수가 KBL에서 뛰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단순히 보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외국선수 신장제한 제도가 되살아난다면 10개 구단의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서장훈과 더불어 단신 외국선수들과 뛰어본 경험이 많은 김주성은 "외국선수 신장에 제한이 있다면 당연히 정상급 토종 빅맨을 보유하고 있는 팀들끼리만 우승 경쟁을 하게 된다. 키가 작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플레이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팬들 입장에서 크게 아쉬운 부분이겠지만, 장신 외국선수들이 보여주는 고공 농구 역시 시각에 따라서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플레이가 될 수 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주성은 이어 뼈있는 한 마디도 덧붙였다. "국내 가드들이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줘야 한다. 예전과 같은 압도적인 1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가드들의 기량이 상향평준화된 것은 고무적인 부분이다. 아시아에서 경쟁력을 뽐낼 수 있는 가드가 많기 때문에 국내 가드들의 기량 발전이 계속된다면, 팬들은 국내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단신 외국선수에 대한 향수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김주성의 말이다.

국내 선수들의 체격조건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는 가운데 단신 외국선수의 컴백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넌센스다. 결국 외국선수 신장제한의 폐지로 단신외국선수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는 농구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은 남겨진 자(토종 가드)들의 몫이다.

# 사진 문복주 기자, KBL Photoro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1-06-07 최창환 기자( doublec@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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