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람들이 이사하는 날, 신구간

입력 2011. 3. 4. 10:56 수정 2011. 3. 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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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사하는 집이 많아졌다. 아니, 생겨났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이겠다.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 우리 아파트에서만 무려 40세대가 이사했다. 왜 이런 집단 이사가 일어났을까. 아파트 옆에 쓰레기장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제주도의 풍습 '신구간'이다.

신구간이란 대한(大寒)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이르는 말이다. 제주도 민간에서는 이때를 신구세관이 교체하는 과도기라고 여긴다. 모든 신들이 하늘에 올라가 버려 땅에는 귀신이 없는 시기다. 다시 말하면 옥황상제의 임명을 받아 내려왔던 신들은 임기가 끝나 올라가고 새로 임명받은 신은 아직 착임하지 않은 이른바 신간, 구간이 교체되는 공백 기간인 셈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는 이사를 하거나, 집을 고쳐도 아무런 탈이 없다. 신구간이 아닌 때에 이러한 일을 했다가는 액운을 면치 못하니 삼가야 한다.

이런 믿음은 특정한 사물이나 주거지 곳곳에 신이 살고 있다고 여겼던 옛 조상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대문에는 문전신, 땅에는 토신, 부엌에는 조왕신, 변소에는 변소신, 칠성에는 칠성 할망 등 제주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이 있다. 아무 때에나 이곳들을 건드렸다가는 신이 노해, 병이 생기고 가족이 죽는 등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귀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신구간은 이사나 집수리를 하기에 아주 요긴한 때이다.

요즘 같은 최첨단 시대에 누가 이런 미신을 믿겠는가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신구간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매년 이때가 되면 주택의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제주시에 따르면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 이어지는 신구간에 맞춰 총 2천700여 가구에 이르는 공동주택이 공급된다고 한다. 이 기간에 약 5000여 가구에서 만여 가구가 이사를 한다. 이사센터나 가전제품, 가구점등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때문에 신구간에는 이사비용이 거의 1.4배로 올라간다.

신구간이 되면 사람들의 봉사활동이 활발해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구간 중고물품 무상교환장터와 신구간 이사도우미 봉사단이다. 특히 신구간 이사도우미 봉사단은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과 장애인가구, 소년소녀가장 가구 등을 대상으로 인력, 차량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취약계층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신구간 풍습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반면 문제도 있다. 아파트단지와 주택가에 필요없게 된 대형폐기물과 폐전자제품, 폐자재 등 쓰레기들이 대거 쌓이게 되어 제때 수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각종 쓰레기들이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배출되고 사람들의 쓰레기 무단투기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주하다보니 이러한 문제들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제주시 관계자는 "신구간에는 하루 평균 480여t의 쓰레기 발생량에 덧붙여 50여t 이상이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말했다.

신구간은 1월 말에서 2월 초의 기간으로 날씨가 몹시 추울 때이다. 추위로 인한 불편도 잇따른다. 그렇다면 제주 조상들은 왜 이 추운 기간에 신구간 이사풍습을 만들었을까. 제주도의 따뜻한 기후 조건과 농경사회라는 특징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 기간은 농경사회에서 새 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을 앞둔 농한기에 해당한다. 즉 집수리를 하거나 이사를 할 수 있는 일손이 남아있을 때이다. 또한 따뜻하기 직전 세균번식이 멈추는 기온(5℃ 이하)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이사하거나 집과 변소를 고쳐야 세균감염 같은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놀랍게도 기상청의 30여년의 제주 온도 분석에서 5도이하의 온도를 유지하는 날은 이 8일이 전부였다. 제주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대가 바뀌어 감에 따라 신구간도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져가는 듯하다. 많은 풍습들이 그래왔듯 신구간 역시 언젠가 사라질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이사를 하고 서로에게 무사를 기원해주는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박서현/인터넷 경향신문 고등학생 기자(제주 남녕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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