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원-투펀치] ⑩스티브 내쉬와 그랜트 힐

김희준 입력 2011. 1. 16. 07:11 수정 2011. 1. 1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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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스포츠레저부 = 사람들은 스티브 내쉬(37. 191cm)가 볼을 갖고 달리기 시작하면 주먹부터 불끈 쥐고 소리 지를 준비를 하곤 했다. 마치 웃을 대목을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개그 프로그램처럼 그들은 내쉬와 피닉스 선즈 선수들이 어떤 플레이를 만들어낼지 알고 있었다.

앞 선에서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29. 208cm)와 숀 메리언(33. 201cm)이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측면에서는 퀸튼 리차드슨(31. 198cm), 보리스 디아우(29. 203cm), 라자 벨(35. 196cm), 레안드로 바보사(29. 191cm) 등이 번갈아 코너를 향해 달렸다.

상대가 어떤 수비 대형을 갖추든 그것은 문제가 안 됐다. 만약 속공이 저지된다면 내쉬는 스타더마이어와 2대2 플레이를 펼칠 것이다. 상대가 스위치 수비를 하든, 더블팀을 하든 공은 10초가 지나기 전에 피닉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누군가의 손 끝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성공. TV 캐스터와 해설자들에게 설명할 틈조차 주지 않는 피닉스의 속사포 공격이 끝나고 한숨을 돌리면 어느새 스코어는 100점을 넘어 있었다.

한동안 수비위주로 흘러가던 미 프로농구(NBA) 판세에 변화를 몰고 온 피닉스의 '옛 모습'이다.

2010~2011시즌을 치르는 내쉬의 곁에는 스타더마이어도, 메리언도, 바보사도 없다. 점수는 변함없이 100점을 넘기고 있지만 승률 6할, 7할을 가볍게 넘기던 그들의 성적표는 어느새 바닥까지 떨어졌다. 1월 14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성적 16승 21패. 서부콘퍼런스 11위로 8위 포틀랜드와는 3경기차다.

물론 이 정도면 후반기에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러나 '미래'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경영책임자인 로버트 사버 구단주(50)는 너무 많은 인심을 잃었다.

사버 회장은 구단 재정을 아끼고자 운영의 지나치게 깊은 곳까지 간섭했고, 이는 피닉스 팬들로부터 농구 보는 즐거움을 빼앗아갔다.

2010년 여름 내쉬의 마지막 남은 조력자였던 스타더마이어와 바보사가 각각 뉴욕 닉스와 토론토 랩터스로 떠나면서 그들의 런앤건 농구는 불완전한 형태로 바뀌었다.

지난 해 12월 트레이드를 통해 '보수 공사'를 실시했지만 팀은 올해 1월을 1승 4패로 시작하는 등 회복의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앨빈 젠트리 감독(57)도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9~2010시즌에 주전 라인업을 8번 바꿨던 그는 시즌을 절반도 치르기도 전에 이미 12번이나 주전 라인업을 손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피닉스에 대한 애정을 쉽게 접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삼촌 콤비' 내쉬와 그랜트 힐(39. 203cm) 때문이다.

두 선수는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 10살 넘게 차이나는 쟁쟁한 후배들 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에, 관록까지 붙은 그들은 석양이 보여주는 마지막 장관과도 같다.

▲ 시간을 달리는 중년, 내쉬

2004년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내쉬는 소속팀 구단주 마크 큐반(53)으로부터 재계약 의사가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당시 그는 미국 나이로 29세였다. 큐반은 곧 30대가 되는 내쉬에게 장기계약은 위험한 도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쉬에게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피닉스에서 마이크 댄토니 감독(60)과 만난 그는 NBA의 경향을 바꿔놓았다.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시도되는 정신 없는 공격에 상대는 패닉에 빠졌다.

마구잡이 같은데도 패스는 칼 같았고, 슈팅은 정확했다. 기가 막힌 픽앤롤 플레이에 적시적소에 위치한 슈터들의 움직임에 피닉스는 승승장구했다.

내쉬는 2005년과 2006년에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다. 2006년 피닉스는 평균 20점씩 잡아주던 빅맨 스타더마이어 없이도 서부콘퍼런스 플레이오프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따냈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내쉬였다. 내쉬는 데뷔 후 최고성적인 평균 18.8득점 4.2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분투했다. 어시스트도 평균 10.5개로 단연 리그 1위였다.

제 아무리 건강한 선수일지라도 30대 초반을 넘기면 경기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내쉬는 오히려 경기력이 더 좋아졌다. 그는 야투성공률 50%, 자유투 90%, 3점슛 40%를 4번이나 기록한 NBA 역사상 유일한 선수인데 이 기록 모두가 피닉스 이적 후에 작성된 것이다.

지난 시즌에도 피닉스는 서부콘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LA 레이커스에 의해 무너졌지만 마지막까지 보여준 투혼에 동료들은 물론이고 상대까지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시즌에도 내쉬는 17점-10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비록 최고의 픽앤롤 파트너를 잃었지만 교묘하게 빈틈을 잘라 들어가는 드리블과 정확한 중거리슛, 수비를 끌어 모은 뒤 빼주는 어시스트 패스 등은 변함없이 위력적이다.

13일 118-109로 승리한 뉴저지 네츠전에서는 내쉬는 23득점 16어시스트 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특히 자유투 11개 모두 성공시키면서 통산 성공률 90.39679%를 기록, 마크 프라이스가 갖고 있던 90.3895%를 제치고 역대 통산 자유투 성공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내쉬는 12경기 연속 자유투 100%를 기록 중이다)

내쉬는 진정한 프로이기도 하다. 이혼과 갑작스런 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도 높은 개인훈련 프로그램도 성실히 소화하고 있다.

몇 년 전 그의 비시즌 중 하루 훈련일과가 공개된 적이 있었다. 신체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체력 훈련과 경기감각 유지를 위한 농구 훈련으로 구성된 당시 프로그램은 내쉬가 늘 거르지 않았던 부분으로 오늘 날까지도 그가 NBA에서 30분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남아있다.

내쉬는 애리조나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분명 예전보다 낮잠이 늘어난 것 같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아직은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내쉬는 연패 속에서도 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트레이드 루머가 나도는 가운데서도 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는 경기 후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분명 팀이 현재 처한 상황은 매우 안타깝고, 아쉽다"라고 말하면서도 "피닉스 구단에서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할 때까지 나는 피닉스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라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 투혼의 신사, 그랜트 힐

한때 힐은 '먹튀의 아이콘'과도 같았다. 불의의 발목 부상 후 몸값 못하는 선수로 여겨졌다. 2000년 올랜도 매직 이적 후 7시즌 동안 60경기 이상 소화한 시즌이 2번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힐은 '재기의 아이콘'이 됐다. 아무리 큰 부상일지라도 꾸준함과 믿음이 있다면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산 증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타더마이어, 그렉 오든(23. 213cm) 등 큰 부상을 입은 선수들은 저마다 한번씩 힐로부터 조언을 구했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피닉스 구단의 선수관리 시스템 영향이 컸다는 평가를 하지만 힐 본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포기하지 않은 힘이 컸다.

보스턴 셀틱스의 닥 리버스 감독(50)은 "힐이 아직까지 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힐은 그 기적을 뛰어넘었다. 그냥 뛰고 있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뛰고 있기 때문. 2008~2009시즌과 2009~2010시즌 그가 결장한 경기는 단 1경기에 불과했다. 올 시즌에도 겨우 2경기 밖에 쉬지 않았다.

힐은 올 시즌 평균 14.2득점을 기록 중이다. NBA에서 샤킬 오닐(39. 216cm), 커트 토마스(39. 206cm)와 함께 가장 나이 많은 선수로 등록되어 있지만, 오히려 득점기록은 5년 만에 최고기록을 세우고 있다.

NBA 역사상 38세(미국 나이 기준)의 나이에 평균 14점 이상을 올린 선수는 6명뿐이며 30대 후반 선수 중에서는 2004~2005시즌 레지 밀러 이후 최다득점이다.

지난 해 12월 19일 113-110으로 이긴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는 3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힐이 정규경기에서 30득점을 올린 것은 5년만이었고, 무려 10년 만에 다시 나온 힐의 30득점-10리바운드 기록이었다.

당시 ESPN을 비롯한 여러 매체가 힐의 노익장에 찬사를 보냈지만, 젠트리 감독과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젠트리 감독은 "힐의 활약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고, 힐 역시 "뛰다보니 리듬을 잘 타서 그렇게 많은 득점을 올린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로 힐의 경기 스타일은 많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노련미가 더해지면서 깔끔해졌다.

폭발적인 퍼스트 스텝은 실종된 지 오래됐지만 깔끔한 속임 기술과 절묘한 스텝을 앞세워 점수를 따냈다. 드라이브인 마무리 기술은 이미 정평이 나있었고, 피닉스 이적 후에는 슈팅 밸런스도 정교해졌다.

또한 통산 어시스트가 4.4개일 정도로 경기 운영과 패스에도 일가견이 있어 내쉬나 고란 드라기치(25. 193cm) 등을 살리는 데 있어서도 훌륭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사실 힐은 최근 오른쪽 무릎을 다쳐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닌 덕에 복귀는 어렵지 않을 전망. 팬들은 이제 그가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 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힐보다 1년 늦게 데뷔한 안토니오 맥다이스(37. 206cm)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가운데 힐은 2011년 여름 FA가 된다. 만약 계속 뛴다면 피닉스에 남을 지, 아니면 우승을 위해 다른 팀으로 갈 지, 아니면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ageless duo'로 불리는 내쉬와 그랜트 힐이 없다면 올 시즌 피닉스에서는 더 볼 것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나이를 잊은 두 스타의 투혼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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