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은퇴]이상민, 코트 다 가졌던 행복한 남자

2010. 4. 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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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이준목 기자]신은 가끔 불공평하다. 한 명의 인간에게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 최고의 재능과 인기, 1인자의 영광까지 수많은 축복을 한꺼번에 몰아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22일 은퇴발표 공식기자회견을 갖는 이상민(38·서울삼성)은 한국 프로농구사에서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최고의 스타로 꼽힌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며 장수했던 이상민의 인기비결은 지금도 농구계 최대 미스터리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한국농구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부상하며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한 이상민은 프로출범 이후에도 항상 당대 최고스타의 반열에서 군림해온 행복한 선수였다.

◇ 1998-99시즌 대전 현대 시절 이상민. ⓒ KBL

'우승복, 상복, 인기복' 코트를 다 가졌던 행복한 남자

역대 한국 농구스타를 통틀어 이상민 만큼 ´모든 것을 가졌던´ 선수도 드물다. 아마추어시절 성인 최고의 무대였던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 최초의 우승을 달성했고, 프로무대에서도 무려 세 번이나 정상에 등극했다.

국제대회에서도 10년 넘게 한국대표팀의 주전 가드로 두각을 나타내며 ´농구대통령´으로 불리는 허재조차 이루지 못했던 아시안게임(2002년 부산)과 아시아농구선수권(1997년 사우디)에서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이상민은 당당히 팀의 중심이자 아이콘이었다.

상복도 끊이지 않았다. 홍대부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던 91~92시즌 농구대잔치 신인왕과 도움왕을 시작으로 상무를 거쳐 97~98시즌부터 대전 현대를 통해 프로무대에 데뷔한 이상민은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정규시즌 MVP에 선정됐다.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03~04시즌 KCC에서는 마침내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석권했다.

인기 면에서도 이상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상민이 성인농구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당시는 때마침 한국농구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던 시기로, ´마지막 승부´와 ´슬램덩크´ 등의 영향으로 농구가 신세대의 국민스포츠로 급부상했다. 앳되고 여려보이던 외모와 달리, 특유의 정교하고 감각적인 패스능력과 창의적인 경기운영 능력, 코트를 아우르는 리더십과 강인한 승부근성을 두루 갖춘 이상민은 ´컴퓨터 가드´라는 애칭을 들으며 이전과 다른 신세대 농구스타들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상민의 또 다른 별명중 하나가 바로 ´영원한 오빠´다. 문경은, 우지원, 전희철 등 동시대를 풍미한 ´농구대잔치 세대´ 스타들이 프로화 이후 부침을 겪는 가운데서도 이상민은 단연 독보적인 인기를 얻으며 사상 최초로 9년 연속 올스타투표 1위를 차지한데서 드러나듯 이상민은 실력과 인기, 꾸준함 면에서 모두 최정상을 놓치지 않았던 유일한 선수였다.

◇ 2009-10시즌 서울 삼성 이상민.

최고이면서 가장 다재다능했던 포인트가드

사실 어떤 면에서는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한 이상민의 높은 인기와 화려한 경력은 오히려 농구선수 이상민의 진가를 논할 때 오히려 장애물이 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이상민은 대학 시절부터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등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했고, 프로에 와서도 추승균, 조성원, 조니 맥도웰, 찰스 민렌드, 테렌스 레더 등 '동료복'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민이 걸출한 동료들과 함께 수많은 영광을 누릴 수 있었듯, 그들 역시 이상민이라는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주는 패스를 받아 재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이상민은 90년대를 풍미했던 강동희, 허재, 오성식, 김승기를 비롯해 프로화 이후 등장한 김승현, 주희정, 신기성, 양동근, 전태풍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대 최정상급 가드들과 기량을 겨뤘다. 지금도 이상민 vs 강동희, 이상민 vs 김승현 등을 거론하며 전성기를 놓고봤을 때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누구냐 하는 것은 농구팬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는 화젯거리다.

이상민은 사실 어느 한 가지 면만 떼어놓고 봤을 때 부동의 1인자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한국농구를 풍미한 가드 계보를 돌아볼 때, 강동희의 능수능란한 경기조율, 김승현의 창의성, 신기성의 슈팅능력, 주희정의 속공전개, 전태풍의 돌파와 드리블링은 모두 역대 최고수준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모든 덕목을 고루 갖춘 선수는 허재 이후 한국농구에서는 오로지 이상민이 유일했다는 게 중론이다.

소속팀과 대표팀 등에서 이상민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1년 선배 문경은은 "패스를 잘하는 선수는 그밖에도 많지만, 항상 가드 입장에서 팀원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살피고 가장 ´받아먹기 좋은 패스´를 넣어주는 능력은 이상민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프로화 이후 활약했던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도 KBL에서 최고의 가드로 누구냐는 질문에 언제나 이상민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을 정도다.

전성기의 그는 패싱과 게임조율 외에도 필요할 때는 득점을 올릴 수 있었고, 승부처에서 마지막 슛을 날릴 수 있는 배짱을 갖췄다. 단신이면서도 덩크슛을 꽂아 넣는 탄력을 앞세워 리바운드에도 재능을 발휘했고, 속공과 지공에서의 게임운영에 모두 능수능란했다.

포인트가드면서도 가드로서의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고, ´도우미´와 ´해결사´의 자질을 모두 겸비한 그의 다재다능함은 이상민의 진가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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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편집 김태훈 기자 [ ktwsc28@dailian.co.kr] - Copyrights ⓒ (주)이비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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