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 종자가 되살려낸 천년고찰 '낙산사'

입력 2009. 10. 13. 16:15 수정 2009. 10. 13. 16: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낙산사 2차 복원불사 회향식

ⓒ 임윤수

사람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할머니보살님도 웃고 있었고, 서울에서 단체로 찾아왔다는 50대 중반의 보살님들도 단체로 웃고 있었습니다. 여기를 가도 웃음이고, 저기를 바라봐도 미소니 낙산사 경내는 온통이 웃음소리며 행복한 표정입니다.

어둠이 내려 더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밤 9시, 범종각 앞쪽 공간에는 무지갯살 같은 조명이 쏟아졌습니다. 알록달록하게 어둠을 밝히고 있는 조명에 사람들의 얼굴도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하게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강변의 조약돌처럼 빼곡하게 자리 잡고 앉아 손으로는 손뼉을 치고, 입으로는 웃음소리를 토해내며 하나가 됩니다.

10월 11일 저녁 낙산사 전경

ⓒ 임윤수

신명 많은 보살님들은 어느새 무대 앞으로 나가 덩실덩실 춤추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춤사위에 맞춰 손뼉을 치니 춤을 추던 사람들은 다시 박수소리에 맞춰 춤을 춥니다. 그야말로 절집마당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야단법석입니다.

회향식에 앞선 전야제, 그야말로 야단법석

지난 2005년 4월 5일, 식목일 산불에 거반이 전소되었던 양양 낙산사, 꿈을 꾸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천년고찰 낙산사에서 4년 6개월 동안 기도를 올리듯 애절하게 진행되었던 복원불사, 지난 2007년 11월 마무리 한 1차 복원불사에 이어 계속 진행하였던 2차 복원불사를 갈무리하는 회향식을 하루 앞둔 10월 11일 저녁의 낙산사 풍경입니다.

회향식이 평일에 치러지니 하루 전에 찾아 온 사람, 그 옛날 수항여행길에 들렀듯이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설악산에 다녀오다 들른 사람들로 낙산사 곳곳이 북적댑니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던 사람들이 떠나고, 하루 앞서 회향식에 찾아온 사람들은 기도를 하러 법당으로 들어갑니다.

부처님을 말하지 않았고, 찬불가를 노래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공덕을 누군가에게 돌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걸쭉하게 쏟아내는 입심도 찬불가가 되고 무애한 기도가 됩니다.

ⓒ 임윤수

어떤 사람들은 원통보전에서 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보타전에서 기도합니다. 홍련암에서도 기도소리가 들리고, 해수관음상이 있는 언덕에서도 기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법당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법당 앞마당에 쳐진 비닐하우스 안에 자리를 잡고, 비닐하우스에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마당에 선 채 그냥 달빛을 맞으며 스님이 하는 법문 소리를 들으며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터

보타전에서 기도를 집전하던 낙산사 주지 정념스님은 법문을 통해 '불사가 원만히 회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불자와 국민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불사의 공을 돌리며 '눈에 보이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중생들의 기도를 받고 있는 해수 관음상

ⓒ 임윤수

범종각 앞에서 펼쳐진 한바탕의 야단법석, 회향식에 앞선 전야제쯤으로 치러진 음악회는 저녁기도가 끝난 9시부터 거반 2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목탁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염불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초청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사람들을 신명나게 하는 찬불가가 되었고, 흥겨워서 춤추는 사람들의 몸동작은 바라춤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말하지 않았고, 찬불가를 노래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공덕을 누군가에게 돌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걸쭉하게 쏟아내는 입심도 찬불가가 되고 무애한 기도가 됩니다.

오봉산이 들썩거리고, 복근이 팽팽해질 만큼 흥겨운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다시 밤샘기도에 들어갑니다. 좁은 공간에서 108염주를 돌리며 108배를 올리고 있는 할머니보살님의 기도하는 뒷모습은 진지함을 넘어 차라리 애절합니다.

낙산사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울리는 타종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밤샘기도를 하던 사람들이 원통보전으로 모여듭니다. 원통보전에 봉안한 관세음보살상 후불탱화 회향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움직일 공간조차 없는 법당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차갑기만 어느새 쌀쌀해진 새벽 산 공기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깥에서 동참합니다.

6시쯤 후불탱화 회향식이 끝나니 사람들은 해수관음상이 있는 언덕으로 자리를 이동합니다. 탑돌이를 하듯 해수관음상을 돌며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동해의 일출을 맞이합니다. 동해를 두텁게 덥고 있던 가스층을 뚫고 솟아오르는 동해의 일출은 막혔던 가슴이 울컥할 정도로 장관입니다.

회향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2시간이나 남았는데 곳곳이 혼잡스러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댑니다. 낙산사가 넓다고는 하지만 1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운집을 했으니 북적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념스님은 혹시 의상대사의 불심종자

10월 12일 아침! 동해의 일출은 막혔던 가슴을 울커하게 할 정도로 잘어했습니다.

ⓒ 임윤수

지난 2007년 11월, 원통보전 복원불사에 이어 2차로 맞이하게 되는 복원불사는 지극한 정성이면 세월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번에 회향한 복원불사는 250여 년 전에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를 전거(典據)로 하여 그림속의 낙산사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정성의 결정체이며 복원불사의 사리입니다.

꽃이 있어야 열매를 맺고, 씨앗이 있어야 싹을 틔우고 꽃이 피는 게 순리니 불심이 열매이고 낙산사가 꽃이라면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세월을 거스를 만큼의 정성과 원력으로 낙산사를 복원한 정념스님은 씨앗일지도 모릅니다.

1300여 년 전의 인물인 의상대사, 가정을 이루지 않았으니 혈육이 있을 리 없는 의상대사지만 지극하고도 원대한 당신의 불심종자를 정념스님을 후손삼아 한국불교의 토대에 뿌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정암에 있던 스님이 갑작스레 낙산사 주지 소임을 맡게 된 일, 주지 소임을 맡아 보름 만에 만난 참화, 누구도 감히 엄두 못 냈을 복원불사를 4년 6개월 동안 이끌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감이며 감동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천년고찰을 창건한 이가 의상대사라면 먼 후일 불심을 열매 맺을 낙산사가 손상되었을 때를 대비해 다시금 꽃 피우거나 복원할 수 있는 불심 종자를 정념스님에게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회향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 임윤수

지극한 정성은 흐른 세월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었습니다. 김홍도의 그림 낙산사를 전거로 하여 복원된 낙산사 전경

ⓒ 낙산사

타버린 낙산사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정념스님의 기도는 정말 애절했고, 원력은 대단했습니다. 물이 필요할 대는 물을 탁발했고, 꽃술을 수정을 시켜야 할 때는 바람이나 곤충까지도 탁발했습니다. 불자들에게는 기도를 탁발했고, 국민들에게는 정성을 탁발해 주춧돌을 놓고, 기왓장으로 올려 낙산사를 꽃피웠습니다.

하늘은 바람으로, 바다는 파도로 박수 쳐

12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회향식에 앞서 이번에 복원한 빈일루 현판의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북적대는 사람들만큼이나 소개하는 내빈들도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위시한 종단스님들, 강원도지사를 비롯한 정재계인사 등 사회자가 한참을 읽어야 할 만큼 많습니다.

회향식이 진행되는 내내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네 탓 내 탓, 내 덕 내 공 하지 않고 그 동안의 잘못은 '나 때문'이고,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공덕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덕이며 은혜로 돌립니다.

자랑하거나 독차지하려하지 않고 서로에게 공을 돌리니 칭찬을 하듯 하늘과 바다가 손뼉치고 사람들도 손뼉 칩니다. 행사 전까지만 해도 잠잠하기만 하던 하늘은 갑자기 바람을 일으켜 만국기를 흔들어 박수소리를 내고, 바다는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로 손뼉을 치니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축하하고 손뼉을 치는 순간입니다.

정념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어른스님들과 정관계 관계자, 불자와 국민들에게 모든 공덕을 돌리고,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정념스님을 위시한 관계자들과 불자, 국민들에게 원만 불사회향의 공을 돌립니다.

화재 당시, 낙산에 불이 옮겨 붙었다는 보고를 듣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술이 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강원도 김진선 도지사는 기도와 정성, 원력과 추진력 그리고 판단력으로 복원불사를 이끌어 나간 정념스님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도지사의 부인은 1000일 기도를 했고, 양양군수는 출근을 하듯 복원현장을 찾았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꽃, 무산지역아동센터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 두루두루 감사해 하는 표정들이 이심전심의 염화미소로 행사시간 내내 환하게 피어납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잠시 들른 낙산사 유치원은 정념스님이라는 불심종자가 피워낸 또 하나의 꽃입니다.

낙산사 유치원은 또 하나의 꽃입니다.

ⓒ 임윤수

손을 흔들며 천진무구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아이들의 미소야 말로 관세음보살의 미소였으며, 마음 허전한 도시인들이 잠시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야 말로 21세기 불교가 피워내야 할 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참화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시간을 거스르고 올라가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의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설을 이렇듯 규모 있게 시설해 여법하게 운영하고 있으니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1300여 년 전 의상대사는 전국 방방곡곡에 부처님을 모셔 불심을 열매 맺을 법당을 창건하셨으니 불심종자를 이어받은 스님께서는 더 큰 원력으로 제2, 제3의 꽃을 전국 방방곡곡에 불국정토의 싹으로 활짝 피울 수 있기를 갈망해 봅니다.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