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Green.. 투어토커..지자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배명재·김진우기자 2009. 10. 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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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세종대왕 동상 옆 꽃밭을 '플라워 카펫'으로

ㆍ정책·행사 국적불명 명칭 투성이… "뜻 헷갈려"

온통 외국어 물결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명동 거리에 즐비한 영어 간판 아래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기자한글날인 9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설치된다. 동상 뒤편에 조성된 넓은 꽃밭 이름은 '플라워 카펫'이다. 지난 8월 말 한글문화연대가 "시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 이름을 남용하지 말고 우리말글로 바꿔달라"는 내용의 질의서를 서울시에 보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사실상 이름을 바꾸지 않겠다는 내용의 답변을 내놓았다. '플라워 카펫'이라는 국적 불명의 명칭을 쓴 데 대해선 "표기는 한글을 사용하고 발음은 영문식을 선택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군색한 변명을 덧붙였다. 한글문화연대 관계자는 "외국어 오·남용을 지적하는 질의서를 보내면 열이면 열 서울시와 같은 반응"이라면서 "일전에 대전시 유성구가 '테크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어 사용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사례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각 지자체의 구호는 영어 일색이다. 전남 고흥군은 'HI Goheung, Happy Goheung'을 내걸어 '서울시 구호(Hi Seoul) 짝퉁'이라는 구설수에 올랐다. 경기 파주시가 사용하는 슬로건은 'G & G 파주'인데 'Good and Great 파주'의 약자다. 한글학회 관계자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나치게 영어를 남발해 시민들이 알아볼 수 없게 하거나, 시민과는 거의 상관 없는 이름을 손쉽게 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산하기관들이 대놓고 알파벳으로 기관 이름을 쓰고 있는 점도 매번 지적된다. 지난 9월 한글학회 한글사랑지원단이 정부부처 및 산하공공기관들의 누리집(인터넷 홈페이지)의 우리말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Kobako(한국방송광고공사)' 'K water(한국수자원공사)'처럼 알파벳 이름을 크게 앞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알파벳으로만 적고 있고 'dibrary(디브러리·디지털 도서관)'와 'koscom(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은 한글 이름도 알파벳을 그대로 읽은 것뿐이다.

정책 이름에서도 순 우리말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보건복지가족부가 관광정보 등을 제공하는 현지전문가를 노인 인력으로 활용하는 사업 '투어토커(Tour Talker)'는 "노인은커녕 일반인도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쓴소리를 듣고 있다. 여성부는 범국민 녹색생활 실천운동에 '위 그린(We Green)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녹색생활운동의 확산을 목적으로 후원하는 여성단체의 모집체는 'G-Korea 여성협의회', 여성부 후원행사 이름은 '여성이 그린 세상, 지 코리아(G-Korea)'다. 노동부는 '내가 그린Green 희망잡기Job氣'라는 복잡한 사업 이름을 쓰고 있다. 이밖에도 'Talk사업'(교육과학기술부) '서울형 데이케어센터'(서울시) 등 처음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정책 이름이 무수하다.

각종 공문이나 보도자료에도 영어 등 외국어가 남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일 배포한 '아시아 개도국과의 녹색성장 협력 강화' 보도자료에서 우리나라의 녹색성장 협력 동향을 소개하면서 'capacity building 사업 지원' 등 일부 대목에서 영어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또 재정부 고위 간부들의 브리핑이나 보도자료에는 '디폴트가 일어나지 않도록 롤오버 자금의 경우 외환보유액으로 지원' 'FDI(해외직접투자) 급증' 등과 같은 영어 표현이 등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고검이 월 두 차례 발간하는 소식지 제목은 'Seoul Hi-Pros News'로 영자신문 제목 같다. 국어기본법 14조에는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김중섭 경희대 국제교육원장(국어학)은 "국가 전체가 호기심을 주기 위해서 한글에 영어를 섞고 한자까지 집어넣는데 잠깐의 호기심이 우리 언어를 망치게 된다"면서 "한국어의 세계화도 좋지만 그 전에 문화의 그릇인 우리 언어의 소중함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배명재·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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