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66, 작은 프리사이즈?여자도 골치아픈 여성복 사이즈

2009. 8. 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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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연유진 기자]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소비자들이 사이즈를 물어보고 있다.

ⓒ 연유진

"언니, 저 통통 66인데 한 사이즈 큰 거 없나요?""미안 언니, 이거 '프리사이즈' 하나로 나왔어요. 언니한텐 좀 작겠다." '44, 55, 66, 77' 그리고 '프리 사이즈'. 대한민국 여성치고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여성복 매장에서 치수를 논할 때 이 단어들은 필수적이다.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두 자리 숫자로 사이즈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여성도 정확히 어떤 사이즈인지 알지 못한다.

여성복에서는 같은 '55'사이즈도 업체마다 다르다. 그런가 하면 아무나 못 입는 '프리 사이즈'도 공공연히 존재한다. 정답 없는 여성복 사이즈, 신묘한 치수 호칭의 세계를 알아봤다.

'44, 55, 66, 77'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없으면 불편

'이 옷은 44부터 77 사이즈 까지 있습니다.'

ⓒ 연유진

'44, 55, 66, 77 사이즈'는 1980년 제정된 의류제품 기준 치수 호칭이었다. 지금의 한국기술표준원이 공업진흥청이던 1979년, '1차 국민표준체위조사' 사업이 있었다.

당시 한국 성인 여성의 평균은 키 155cm , 가슴둘레 85cm로 공업진흥청에서는 이 두 치수의 끝자리 5를 나란히 따서 '55'를 한국 여성 표준 사이즈로 정했다고 한다. 표준을 기본으로 키는 5cm, 가슴둘레는 3cm를 더하고 빼는 식으로 44, 66, 77, 88 사이즈가 만들어졌다.

이후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이 지났다. 한국기술표준원 '사이즈 코리아'사업의 최신 조사자료(2004년 기준)에 따르면 20세~24세 여성들의 평균 신장은 160.7cm, 가슴둘레는 81.9cm로 큰 변화가 있었다.

사이즈코리아 사업 연구원 문창원씨는 "44, 55, 66과 같은 여성복 치수 호칭은 90년대 이전부터 이미 공식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2005년 갱신한 'KS 규격 치수'는 권고사항이다. 실제 의류기업들이 이를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름 있는 의류업체에서는 가슴둘레를 기준으로 '82, 85, 88' 호칭으로 여성복 사이즈를 분류한다. 동대문이나 인터넷에서 팔리는 많은 여성복들도 S, M, L과 같이 기술표준원에서 규격을 정한 치수 호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백화점이나 동대문, 인터넷할 것 없이 여성복 소비자와 판매자는 '44, 55, 66, 77'로 소통한다.

"요즘 동대문 옷들도 S, M (L은 잘 안 나오고요) 호칭으로 치수가 나와요. 하지만 상표에 뭐라고 적혀 있든, 손님들과는 55, 66으로 얘기해야 잘 통합니다. 치수가 아예 안 적힌 옷들은 대부분 프리사이즈예요." 동대문 의류상가 '굿모닝 시티'에서 여성복을 판매하는 이아무개씨는 '55, 66, 77' 같은 사이즈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가장 대중적이고 편한 호칭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80년대엔 치수가 법으로 지정돼 있었다. 의류업체들은 반드시 치수를 표시해야 했고, 사이즈의 허용치를 벗어나면 시장에 옷을 내놓지 못했다.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치수들이 통용되는 것은 관례가 돼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기술표준원 의류 담당자인 최근영씨도 공식적으로 제한된 용어가 여전히 활용되는 이유를 짐작해볼 뿐이다.

의류업체마다 실제 크기가 다른 이유는 '디자인의 차이'?

한국기술표준원에서는 현대 여성 실제 체형에 가까운 치수를 기반으로 '의복 생산 바디 제작'도 해놓았다. 의복 생산 바디는 패턴과 샘플 제작, 검품단계까지 활용된다. 그런데 의류 업체들마다 사이즈가 다른 것은 각 브랜드마다 다른 의복 바디와 도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마다 디자이너들이 정하는 상세치수가 달라져요." 동대문의류봉제협회 관계자는 치수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소 의류업체 모두 디자이너의 소관이라고 했다.

"실제로 호칭별 치수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옷감의 특징과 디자인을 무시하고 사이즈를 규격화하자는 것은 불가능해요. 재킷을 기획할 때, 이 옷은 좀 마른 여성이 입는 것이 예쁘겠다 싶으면 정해진 사이즈에서 어깨너비나 허리까지 길이를 더 줄여 디자인을 하죠. 소비자들도 호칭은 참고만 할 뿐인 걸로 알고 있어요." 국내 여성의류업체 한섬의 전직 디자이너 송지영씨의 말이다. 그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가장 예쁘게 소화할 수 있는 체형을 염두에 두고 생산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프리사이즈인가?

"디자인을 소화할 수 있는 치수는 정해져 있잖아요"

ⓒ 연유진

"모자나 양말같이 성별·체형·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맞는 사이즈를 프리 사이즈라 했다. 등장 자체가 생산자 측 편의에 의해 생겨났다."

사이즈 코리아 최근영 담당자는 '프리사이즈'는 기술표준원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판매자 임의로 프리사이즈 범위를 정하고 호칭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여성복에도 프리사이즈가 있다. 신축성이 좋은 티셔츠나, 민소매 티, 고무줄이 들어간 옷이나 품이 큰 옷들이 프리사이즈로 많이 팔린다. 그러나 일부 여성복은 55나 66 하나의 사이즈만 생산되는데 이런 단일 치수 옷에도 프리사이즈 태그를 붙인다. 판매자 편의에 따라 한 사이즈만 만들고 역시 판매자 마음대로 프리사이즈 호칭을 남발하고 있다.

"프리사이즈라고만 적혀 있을 때는 입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일부 매장은 옷을 입어볼 수 없게 되어 있고, 인터넷에서 상세 치수를 보고 사도 막상 입어보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프리사이즈인데 안 맞으면 불쾌감도 든다." 대학생인 조은성(25)씨는 프리사이즈로 나오는 일부 여성복 구매에서 느낀 불편함을 토로했다.

"여성복 브랜드 타깃은 패션에 관심이 많고 패션을 리드하는 늘씬한 20대 여성이 되지요." 전직 디자이너 송씨는 프리사이즈 또한 55, 66 여성들을 모델로 생각하고 옷을 만들게 된다고 답했다.

"'프리사이즈'는 55, 66 여성들이 자유롭게 선택해서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제작부터 큰 사이즈의 여성들을 생각하고 만든 옷이 아니에요." 서울통상진흥원의 서울패션센터 홍보담당자는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55∼66 여성들 사이즈로 원사이즈를 만들어야 재고 비용이 준다. 기업들마다 타깃 고객층을 상정하는 것을 두고 무어라 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원 사이즈 의류에 프리 사이즈 호칭을 붙이는 것은 다분히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할 소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인터넷에서 옷을 많이 사입는다는 한여진(28)씨는 "프리사이즈 옷을 보면 이게 나에게 맞을지 안 맞을지 대충 짐작은 간다. 여자들은 공공연히 프리사이즈가 55~66 사이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사진이나 숫자만으로는 치수를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어떤 옷들은 소재를 만져볼 수도 없고 감이 안잡힌다. 55∼66도 아니고 44∼55 정도를 프리사이즈로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진짜 프리사이즈 옷과 실질적으로 사이즈가 있는 옷들이 다같이 프리사이즈 상표를 다는 것은 혼란스럽다." 그는 또 "누구를 위한 프리사이즈인지 모르겠다"며 "판매자들은 편의에 따른 프리사이즈 호칭을 차라리 원사이즈라고 고치고 소비자들에게 상세 사이즈와 소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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