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 천연두 완치 기념 십장생도 제작

2009. 1. 3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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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오리건대박물관 소장 병풍서 확인(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십장생(十長生)을 소재로 하는 조선시대 그림은 적지 않은 숫자가 전한다. 그만큼 십장생도가 당시에 인기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십장생도 대부분은 누가, 언제, 어떤 일을 계기로 제작했는지를 알 수 없다.이런 아쉬움을 덜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가 발굴됐다.조선회화사 전공인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연구사는 최근 발간된 국립고궁박물관의 연간 학술기관지 '고궁문화' 2집에 투고한 미국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십장생 병풍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1924년 조선에서 미국으로 팔려간 이 그림이 현재까지 제작시기와 그 동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십장생도라고 말했다.

이 십장생도는 모두 10첩(帖)이며 그 중 8첩에 걸쳐 청색과 녹색이 두드러진 이른바 '청록산수'(靑綠山水) 기법으로 십장생도를 그렸으며, 나머지 2첩에는 이 그림의 제작에 관련된 관직과 이름을 순한문으로 기록한 좌목(座目)이 있다.

각 첩은 크기가 세로 201.9㎝에 가로 52.1㎝이며, 이를 온전히 펼쳐놓았을 때 전체 너비는 520.7㎝인 비교적 큰 병풍에 속한다.

좌목에는 도제조(都提調)이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인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유원(李裕元)과 제조(提調)이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이며 행지중추부사판(行知中樞府事判)이고 삼군부사(三軍府事)인 민겸호(閔謙鎬)를 필두로 모두 14명의 이름과 관직이 적혀있다.

특히 이들 명단에서 8번째인 수의(首醫.의사의 우두머리)이자 숭록대부(崇祿大夫),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인 이중식(李重植)부터 13번째 인물까지 5명은 모두 '대령의관(待令醫官)'으로 관직이 기록됐다.

박 연구사는 이들이 1874년 2월, 고종과 왕비 민씨(나중의 명성황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척(李척 < 土+石 > .나중의 순종)이 6살 되던 해인 고종 16년(1879) 12월 천연두에 걸렸을 때 그 치료를 위해 임시로 구성한 기구인 의약청(醫藥廳)의 멤버임을 밝혀냈다.

이 중 도제조인 이유원(1814-1888)은 이척이 태어났을 때도 영의정이자 산실청(産室廳)의 도제조였으며, 제조 민겸호(1838-1882)는 당시 민씨 척족의 중심인물이었다.

따라서 이 명단이 적힌 십장생 병풍은 이척이 천연두에서 회복된 것을 기념해 제작한 그림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박 연구사의 결론이다.

고종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을 보면, 이척은 1879년 12월12일에 천연두에 걸렸다는 판정이 내려졌다가 집중 치료를 거친 결과, 같은 달 21일에 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에 고종은 이를 기념해 죽을 죄에 해당하는 죄인을 제외한 모든 죄수를 석방조치하는가 하면, 증광시라는 특별 과거시험을 시행하라는 조칙을 내리기도 했다.

박 연구사는 "그간 조선시대 궁중장식화는 작품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 애를 먹었고, 특히 십장생도는 그런 현상이 더욱 심했다"면서 "이번 십장생병풍도는 제작시기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란 점에서 의의가 자못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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