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또 다른 출발선'에 서다.. '김창완 밴드' 결성

2008. 11. 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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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첫 음반 '더 해피스트' 내고 내달 콘서트

ㆍ"먼저간 막내 몫까지 '행복한 가수' 되고 싶다"

산울림은 국내 대중음악사의 큰 산맥이다. 산울림이 데뷔한 1970년대 후반은 한국 대중음악의 암흑기로 불린다. 유신 등 시대적 상황과 대마초 파동 등으로 신중현·한대수·김민기 등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명맥은 끊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산울림은 음악평론가 박준흠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어있던 음악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활화산"이었다.

77~78년 연이어 내놓은 1~3집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있어 '길이 남을 명반'으로 통하며 현재까지도 국내 마니아들은 물론 일본 음반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집 대상이다. 박준흠씨는 "산울림의 음악은 현재의 록 마니아들이 들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나다"며 "특히 그들의 음악성이 국내는 물론 해외 음악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없는 독창적이었다는 점에서 산울림의 천재성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산울림의 보컬이자 맏형 김창완이 산울림을 정리했다. 97년 산울림의 마지막 음반을 발표한 이후 배우로 활동해온 김창완은 이달말 산울림의 앨범 13장과 동요 음반 4장으로 구성된 < 산울림 전집 세트 > 를 내놓는다. 아울러 절친한 후배 뮤지션 4명과 함께 '김창완 밴드'(사진)를 새롭게 결성, 25일 첫 음반 < 더 해피스트 > 를 선보인다.

이 모든 변화는 산울림의 멤버이자 김창완의 막내 동생 창익의 사고사로부터 시작됐다. 김창완은 "1월 초 캐나다에서 지게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막내가 정리를 했다. 지금의 일은 언젠가 해야 될 일이었지만 동생의 사고로 20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동생의 사고 후 어떤 생활을 했을지 짐작되고도 남는 그가 정신을 차린 건 '포크리프트'(지게차)라는 노래를 만들면서였다. 'I hate the forklift. I don't like the machine'(나는 그 지게차가 미워, 나는 그 기계가 싫어)이라는 후렴구가 울려퍼진다.

"이 노래를 만들며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정신을 차려 작업을 시작했죠. 밴드를 꾸린 것도 겨우 두달 전쯤이었어요. 그동안 써놓은 곡들은 많았지만 동생의 사고 후 다 접었어요."

11년간 새 앨범을 내놓지 않은 것에 대해 그는 "산울림으로서 새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보다는 옛곡이라도 좋으니 무대에 많이 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장이라도 더 앨범 작업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했다.

옛것을 정리하고 또다른 출발선에 선 그는 향후 "행복한 음악을 하는 행복한 가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산울림으로서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다들 잘 안 믿는데 그랬어요. 행복한 척하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음악인이랄까. 쉰살 때까지 전 항상 '뼛 속까지 비관주의자'라고 말해왔어요. 이제서야 그런 우울을 벗어던졌죠."

그 같은 우울의 근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전쟁을 겪었던 어른들로부터 유전된 바가 크다"고 털어놓았다.

"어릴 적 본 어른들의 모습은 궁핍했고 이산가족으로 상처를 받는 등 너무 불행했어요. 전쟁 때 헤어진, 한번도 보지 못한 외할머니를 어린 시절 무당집 가서 제사지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런 것들이 감수성 어린 아이들한테 불행한 인생관을 심어준 듯 해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살면서 수많은 사랑과 기쁜 일들이 필요했죠. 하지만 쉰 살이 넘고 동생의 사고를 겪으면서 이제는 삶의 명령어가 이해돼요.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은 생명에 대한 명령'이라는 것을요. 지금 행복하냐고요? 물론이죠.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막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행복한 가수'를 꿈꾸며 그는 다음달 27~29일 홍대 앞 롤링홀에서 김창완밴드의 단독 콘서트를 갖는다. 향후 김창완밴드를 통해 "산울림을 잘 모르는 세대나 나를 배우로 알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산울림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그는 "앞으로는 팬들을 괴롭힐 정도로 무대에 많이 설 예정"이라고 다짐했다. 인디 밴드들의 산실인 롤링홀에서 기타를 치며 로커로 변신하는 김창완의 모습이 어떨까 사뭇 기대된다.

< 문주영기자 > - 재취업·전직지원 무료 서비스 가기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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