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숭례문 화재현장, "깊은 한숨만.."

2008. 2. 12. 17: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뉴스24>

날씨는 싸늘했다. 포근한 휴일을 지나 갑자기 수온주가 뚝 떨어진 12일 오후. 한순간의 화재로 잿더미가 된 숭례문 근처의 겨울은 살갗을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날카로운 바람마저 불었다. 흉물스럽게 변한 숭례문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마음요? 아프죠. 그렇지만 결국 또 잊히지 않겠습니까."

숭례문 화재 3일째인 12일 오후, 현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부서져 내린 대한민국의 자존심, '국보 1호'의 참담한 모습에 눈물을 훔쳐냈다.

화재 현장에는 경찰과 감식반·건설업체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숭례문의 모습은 차츰 흰색 담장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은 높은 건물에 올라가면 훤히 흉측스러운 모습은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유숙 씨(46)는 불타버린 숭례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 씨는 "화재 당시 뉴스를 보고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해외에 있는 친척들까지도 숭례문이 불탄 게 사실이냐는 전화가 왔었다"며 "현장을 보니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지난 대형 사고들처럼 이번 일도 시민들의 기억에서 곧 잊힐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아픈 마음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기 위해 국화꽃을 놓고 가는 행렬도 이어졌다. 숭례문 앞 국화꽃들은 하얗게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중국 조선족으로 살다 3년 전 한국 국적을 획득했다는 김성권(61)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김씨는 "600년 역사가 단숨에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7년 전 고향땅을 밟고 소중한 대한민국 주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대한민국 국민이 됐는데 이렇게 나라가 무너진 것 같은 참담한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며 "나라를 세우는 마음으로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지켜보는 시민들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어르신들은 임진왜란 때에도 지켜왔던 숭례문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에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국보 1호에 대한 안전장치가 이렇게 허술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쯧쯧' 혀를 차는가 하면 분노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전길영(75) 씨는 "숭례문이 불타버린 것은 역사와 전통을 허투루 여기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라며 "역사를 모르는 요즘 사람들이 나라 망신을 다 시키고 있다"며 정부의 허술한 문화재 관리에 분노했다.

현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허전함은 남녀노소 누구나 같은 마음 같아 보였다. 칼바람이 부는 숭례문 앞에서 모두 얼어붙은 날씨만큼 얼굴 가득 아쉬움이 가득했다.

단축수업을 마치고 찾아왔다는 이안나·이여진·임수정(14) 양은 "당연한 듯 있었던 숭례문이 이렇게 된 모습을 보니 너무 허전하다"면서도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이렇게 쉽게 허물어지게 놔둔 어른들이 참말 밉다"고 입을 모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졸업장을 든 채로 숭례문을 바라보고 있는 경상수(19) 군도 "마치 대학 입시에 떨어진 기분이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했다.

한편 화재현장을 가리기 위한 가림막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장에 담장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도 많았다.

지방에서 직접 보기 위해 올라왔다는 채지민·이봄(22)씨는 "평소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이렇게 불타버린 다음에서야 찾아오게 되서 너무 죄책감이 느껴진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면서도 "모든 시민들이 현장을 보고 반성할 수 있도록 일주일 동안이라도 이 모습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리려고만 하면 안된다"며 비판했다.

딸을 대학에 입학시키고 함께 찾아온 박순자(42) 씨는 "담으로 가리는 것은 돈 아까운 짓"이라며 "시민들이 보고 많은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담장 설치 업체인 삼성건설 관계자는 "담장을 설치하는 이유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경복궁 복원과 마찬가지로 작업공간 확보를 위해 담장 설치는 필수적이다"고 해명했다.

한편 참담한 모습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지시가 내려진 부분도 있다고 귀엣말을 했다.

한편 현장을 지켜보는 시민 중 대다수는 이명박 당선인의 국민성금 제안에 대해 '동참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는 정부의 무책임에 대한 질타부터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과와 재발방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연한 듯 언제나 그 자리에 곧게 서있을 줄 알았던 숭례문의 처참한 모습은 지나가던 시민들의 발을 붙들었다. 시민들은 사진으로 또는 마음으로 충격적인 현장을 기억 속에 새기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숭례문의 처참한 뒷모습이 아른거리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 싶었다.

◆숭례문 '국민성금으로 복원?'…시민들 화났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10일 전소된 숭례문을 '국민 모금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제안하자 네티즌은 '이럴 때만 국민에게 손 벌리는가'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포털 네이버의 yijae****는 "지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 국민들이 금니까지 뽑아가며 모은 성금으로 위기를 극복한 결과가 지금 이렇다. 태안에 줄을 잇던 자원봉사와 국민성금은 어디로 갔는지 태안 주민들은 자살에, 분노에, 허망에 살고 있다"며 "차라리 서울시와 문화재청, 소방방제청의 간부들의 봉급을 삭감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본지의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린 hour****는 "태안 기름유출 사태 때도 그렇고 정작 책임져야 할 기관은 책임을 안지고 국민 성금으로 대체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뒷수습은 국민들 보고 하라는 건가"라고 전했다.

김**는 "세금은 국민 돈 아닌가. 어차피 세금으로 복원할 거면서 무슨 또 성금을 모은다고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 당선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당선 후 사회환원하겠다는 금액을 기부하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포털 다음의 미**는 "숭례문 개방하기에 급급했던 당선인의 책임도 있다. 어차피 당선 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으니 당선인의 돈으로 복원하자"고 제안했다.

파*는 "(MBC TV '무한도전'에 '돌아이'라는 별명으로 출연 중인)노홍철과 호형호제 한다더니 완전히 '돌XX'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또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이번 사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비난이 이어졌다.

포털 네이버의 ony***는 "여태까지 세금 떼먹은 적 없고 국민연금도 다 냈고 숭례문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데 우리 모두의 책임이면 나도 책임이 있다는 소리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7**는 "정작 잘못한 사람은 방화범인데 왜 이명박, 노무현, 문화재청장들에게만 화살이 돌아가나"라며 "이 시기를 모금운동으로 잘 헤쳐나가고 유사 범죄를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병묵·박정일기자 honnezo@inews24.com

IT는 아이뉴스24, 연예스포츠는 조이뉴스24

(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