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프리즘]삼성화재 9연패·77연승 신치용 감독

2007. 8. 8.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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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8일 프로배구 챔피언결정 3차전이 끝난 천안 유관순체육관 기자회견장. 현대캐피탈에 우승컵을 내준 삼성화재 신치용(52) 감독은 뜻밖에도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회견 말미 옅은 미소까지 지으며 기자들에게 "수고 많았습니다. 연락 주시면 소주 한잔 사겠습니다"란 말을 뒤로하고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문득 궁금한 질문이 떠올라 따라갔던 기자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르게 쓸쓸함이 배어난 그의 뒷모습에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4개월 넘게 흐른 지난 3일 용인 삼성화재 훈련장. 신 감독은 후덕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쉬는 동안 패배의 아픔이 다 아문 걸까. 그는 "솔직히 10연패 달성은 프로스포츠에서 희귀한 기록이라 욕심이 났죠. 아쉽지만 정규리그 우승으로 만족해요"라며 "쉬면서 가족여행 갔다오고 지인들 만나면서 보냈습니다. 이상하게 쉬면 더 바빠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팬들은 올 시즌 삼성화재에 큰 기대를 걸 수 없다. 몇년간 신인 드래프트 최하위 지명권을 받은 탓에 유망주를 키우지 못했고 새 용병 영입도 지지부진하다. 센터 고희진과 레프트 이형두는 각각 무릎과 경추 수술을 받고 공을 놓은 상태다. 신 감독은 "프로배구 첫해 우승하고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정도 내려가는 시기를 예상했습니다. 우승하면 전력보강이 어려운 현재의 프로배구 선수 수급 구조에선 당연한 결과죠"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삼성화재는 그나마도 올해 3명의 선수를 잃었다. 9연패 신화를 함께한 신진식과 김상우, 방지섭이 은퇴했다. 신진식 은퇴를 둘러싸고는 잡음도 많았다.

원래 스타급 선수가 은퇴할 때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구단이 잡아도, 안 잡아도 불만인 게 선수다. 신 감독은 "은퇴는 선수가 결정하는 겁니다. 본인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일주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줬어요. 그런데 다음날 한 스포츠신문에 앞뒤 자르고 '구단 은퇴 종용' 기사가 난 거죠"라며 "섭섭했지만 (신)진식이와 소주 한잔하며 터놓고 얘기했죠. 본인이 부상 때문에 제대로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래도 부족한 듯"(신)진식이 몸은 본인보다 제가 더 잘 압니다. 담당치료사도 힘들다고 얘기했어요. 전 (신)진식이 20년을 내다보고 생각했습니다"고 신진식의 은퇴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신 감독은 이제 도전자의 입장이다. 9연패와 77연승의 신화는 배구사의 지나간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는 "솔직히 우승 트로피가 쌓이면서 걱정도 쌓였어요. 주위의 견제와 이유없는 비난도 심했고 선수들 스스로 자기 안에 빠져드는 것도 문제였죠"라며 "전부 업보죠. 이젠 짐을 덜어서 홀가분하고 뒤도 돌아볼 여유가 생겼죠. 그래도 감독은 우승을 해야 합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올 시즌 추구하는 건 '매력있는 배구'다. "끈끈한 배구로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습니다. 선수들이 개인적 매력도 발산했으면 합니다. 너무 얌전해요. 오죽하면 (고)희진이한테 앞장서서 팔뚝에 문신하고 머리 염색도 하라고 했습니까. 물론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함정은 있죠."

그의 별명은 제갈공명이다. 그만큼 지략이 뛰어나다. 선수들을 아우르는 방식도 탁월하다. "15년간 몸담았던 한국전력 코치 시절 모든 걸 배웠습니다. 지는 것부터 배운 게 큰 도움이 됐죠. 한때 팀이 힘들어 근무 파트에 있었는데 당시 배구 서적을 많이 접하며 눈을 떴어요."

그의 배구론은 '인화'가 핵심이다. 배구의 특성상 좋은 공격수만 갖고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 탄탄한 수비와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선수와 선수,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 밑바탕에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조직력의 힘은 거기서 나옵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인화의 배경에는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화재 감독 생활 12년간 그의 집에 발을 들인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다. 매일 오전 7시 치러지는 '공포의' 체중 검사는 고참이라고 예외가 없다. 물론 훈련 전날 음주는 용납 안 한다.

신 감독은 훈련 때만큼은 저승사자로 불린다. 그는"창단 초창기에 대학 졸업반 선수들이 삼성화재는 다 꺼렸어요. 훈련 많이 하기로 악명이 높았거든요"라며 "힘들었지만 창단 후 3년간 틀을 다져놓은 게 지금껏 흐름을 유지하는 비결이죠"라고 웃는다.

그는 외유내강형이다. 혼자 삭이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답답하면 나름의 해소법을 찾는다. "산 이상이 없어요. 주로 혼자 찾습니다. 술도 좀 합니다. 주량은 소주 3∼4병 정도예요. 대화가 막혔을 때 좋은 재료죠."

본인 표현을 따르자면 그는 최근 철이 들었다. 바로 가장으로서다. 그는 "항상 집을 비우니 미안했죠. 3년 전부터는 아내와 딸 둘이랑 일년에 한번씩 꼭 가족여행을 갑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아닙니까"라며 한바탕 웃었다.

신치용은 행복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배구공을 만진 이후 한 번도 코트를 떠난 적이 없다. 그래도 영원한 건 없다. 언젠가는 벤치를 떠나야 한다. 그의 목표가 궁금했다.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 그리고 당당한 가장이 되고 싶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끝마무리를 잘하고 싶습니다"며 "마지막엔 유소년 배구 지도나 협회 행정을 도우며 한국배구에 기여하는 게 꿈입니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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