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요제' 로 단숨에 신인서 가수왕

2006. 4. 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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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77년은 문화방송에서 주최한 두 개의 가요제가 '테이프 커팅'을 치른 해이다. 특정 방송국에서 주최한 가요제가 시작되었음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이들 가요제가 일회성 화제에 머물지 않고 가요계에 젊은 피를 공급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전파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청(소)년기를 보낸 이른바 70·80세대라면 '엠비시 대학가요제'가 그해 9월 처음 열렸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문화방송에서 주최한 또 하나의 가요제는 무엇일까. '엠비시 대학가요제'보다 4개월 앞서 열린 '서울가요제'다. 이듬해부터 '서울국제가요제'로 변경된 뒤 10여 년간 이어지며 인상적인 무대를 여럿 남긴 가요제다. 특히 1979년 윤복희가 부른 '이츠 유(여러분)'가 그랑프리로 호명되자 윤항기·윤복희 남매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던 모습은 현재 30대 중반 이상의 연배라면 잊지 못할 장면일 것이다. 물론 기억 속 화면은 컬러가 아니라 흑백일 테고.

마찬가지로 1977년 열린 '제1회 서울가요제'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을 남긴 행사로 간주된다. 진미령이 '소녀와 가로등'을 부를 때 작곡가인 10대 여고생(요절 가수 장덕!)이 악단을 지휘하던 모습은 1년 뒤 '제2회 엠비시 대학가요제'에서 20대 초반의 여대생(심수봉!)이 피아노를 치며 트로트 '그때 그 사람'을 부르던 모습만큼이나 이채로운 그림을 남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고 길옥윤 작사·작곡)의 그랑프리 수상과 앵콜 무대였다. 앳된 용모의 혜은이가 뛸 듯이 기뻐하고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린 길옥윤도 혜은이와 스스럼없는 장면을 연출하던 모습 그리고 노래하는 혜은이 옆에서 길옥윤이 감미롭게 색소폰을 연주하던 모습 말이다.

'제1회 서울가요제' 당시 혜은이는 엄밀히 말해 신인은 아니었다. 이미 '당신은 모르실 거야'(길옥윤 작사·작곡)로 데뷔한 상태. 하지만 신인 티를 미처 벗지 못한 상태에서 참가한 '서울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걸 기점으로 가요계의 정상 자리에 단숨에 등극했다. 패티 김과의 결별 이후 6년여만에 제대로 된 여가수 파트너를 맞이한 길옥윤 역시 패티 김과의 콤비 시절이 부럽지 않을 만큼 정상의 작곡가 지위를 탈환했다. 혜은이 길옥윤 콤비에게 1977년은 고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카이라운지로 직행하는 것과 비슷했다. '진짜 진짜 좋아해' '뛰뛰빵빵' '감수광'이 히트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결과 1977년의 신데렐라로 혜은이를 뽑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나아가 1977년은 혜은이의 해라고 불러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77 방송가요 대상'과 '77 엠비시 10대 가수 가수왕'을 거머쥐었고, 현해탄 건너 '야마하 세계가요제'에 참가하는 등 해외 국제가요제 '국가대표' 가수군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이후에도 5년 연속으로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등 혜은이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훵키(funky)한 리듬의 '제3한강교'와 '새벽비'를 동반 히트시키며 디스코 열풍의 한 축을 이뤘던 1979년은 혜은이에게 있어 '어게인 1977'나 다름없었다. 이 곡들의 히트를 전후해 이은하의 '밤차'와 '아리송해', 윤시내의 '공연히'와 '난 모르겠네' 등 훵키한 리듬감과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는 춤을 곁들인 여가수의 노래가 유행한 사실은 뒤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혜은이는 길옥윤의 전 파트너 패티 김처럼 허스키한 음색에 성량을 뽐내는 팝 계열 대형 가수 스타일도 아니었고 이미자처럼 비감 어린 가창을 완벽할 정도로 제어하는 트로트 가수 스타일도 아니었다. 성량은 작았고 가창력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자그마한 체구에 까만 눈망울과 깜찍한 인상만큼이나 맑고 단아한 목소리의 호소력은 그런 점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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