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 떼고 싶어요"

2003. 10. 2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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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스타" 윤동식이 20개월만에 다시 유도 매트로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세계적인 테크니션"으로 인정받는 선수이자 국내 남자유도 선수로는 최다인 47연승(93~95년)의 대기록을 갖고 있는 윤동식(32・마사회 플레잉 코치).그는 얼마전 막을 내린 제84회 전국체전 남자유도 81kg급에서 우승하면서 성공적인 복귀 신고식을 치렀고, 이제 올림픽을 향한 그의 마지막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림픽과의 끈질긴 악연, "비운의 스타"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훌훌 털어 버리기 위해 노장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쳐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윤동식. 2004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1차 선발전(11월 11일~14일)을 앞둔 지난 10월 25일, 한국 마사회 유도단 숙소 근처 커피숍에서 윤동식 선수와 1시간 30분 가량 인터뷰를 가졌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마지막 도전장을 내민 "오뚝이 스타" 윤동식 ⓒ2003 문수경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전국체전 이후로 올림픽에 대한 마음이 굳건해졌고,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번 기회는 정말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고요.진짜 힘들어요. 예전에도 몇 차례 은퇴하고 다시 복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나이가 좀 어려서 지금보다는 다시 하기가 조금은 수월했어요. 이번에 다시 할 때도 몇 주일만 고생하고 참고 하면 체력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생각이랑 안 맞으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그렇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이번 기회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고, 오후에 훈련하고 저녁에 잘 때도 항상 생각하면서 머리맡에 글도 나름대로 써놓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어요."-20개월만에 복귀해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땄는데요. 늦었지만 소감 좀 말씀해주세요. "이번 체전은 국가대표 선발전의 전초전 격이었거든요. 그래서 우승 욕심보다는 어느 정도 컨디션만 파악하러 나왔는데 우승까지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근데 시합 내용은 진짜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이래 가지고는 1차 선발전에서 힘들겠다"고 느꼈어요. 결과적으로는 전부 한판으로 이겼지만 의도한대로 잘 풀리지 않아서 기쁘다기 보다는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약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체중감량 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셨나요?"제가 90kg급에서 81kg급으로 내렸으니까 9kg쯤 감량해야 되잖아요. 사실 9kg 다 뺀 건 아니고, 평소 체중이 86kg 그 정도인데 체중을 하도 많이 빼다보니까 이젠 노하우가 있어요. 40~50일 정도 두고 서서히 아주 오랜 기간 뺐죠.체중감량에는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그래도 5년만에 처음 90kg에서 81kg으로 줄여서 상당히 힘들었어요. 사실 81kg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체전 끝나고 적응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좋았던 거 같아요."- 마사회 플레잉 코치로 계신데요. 코치랑 선수를 병행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코치 입장에서는 더 잘하고 있다고 봐요. 구두 상으로 이거 해, 저거 해 이런 거보다 제가 선수들을 직접 몸으로 잡아주니까 그런 면에서는 선수들한테 도움이 된다고 봐요.근데 선수로서는 약간 마이너스가 되지 않나 싶어요. 왜냐면 마사회 선수들이랑 같이 훈련할 때 제가 스케줄 잡고, 제가 운동을 시키고 있거든요. 운동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누가 위에서 채찍질을 좀 해줘야 되는데 그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 선발전 때 꼭 입상해서 빨리 선수촌 들어가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게 저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6월에 리투아니아대회가 있었잖아요. 거기서 우승하셨는데 그게 어떤 대회예요?"리투아니아대회는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코리아오픈처럼 리투아니아에서 여는 국제대회예요. 참가국은 20개국 좀 넘고, 유럽선수들이 많이 출전했는데 재미났던 건 뭐냐면, 원래는 제가 마사회 선수 3명, 심판 1명, 감독님이랑 같이 코치로 갔어요. 근데 대회 요강을 보니까 지도자는 한 명, 선수는 전원 체재비를 대준다는 거예요. 감독님 말씀이, "지도자는 한 명만 체재비 대주고, 선수는 전부 부담을 해준다고 하잖냐, 윤 코치는 그냥 선수로 뛰어라" 하더라고요.체중 재보니까 84kg 정도 나가는데 체중 빼기 싫어서 90kg으로 나갔어요. 도복도 안 가져갔는데 출전 신청을 했죠. 1회전에서는 상당히 고전했어요. 숨이 거의 머리 끝까지 차오르고 힘들었는데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이겼어요. 이기면서 숨통이 탁 트인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전부 한판으로 이겼고요. 여기서 우승했던 게 자신감을 갖게 해준 거 같아요."- 윤동식 선수 앞에는 항상 "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데요. 그 별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본인 스스로 자신을 "비운의 스타"라고 생각하시나요?"그거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제발 "비운의 스타"라는 말 좀 안 썼으면 좋겠어요. 아니 비운이면 비운이지 스타는 또 뭐야. 아예 스타라는 말을 뺐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기게끔 "비운의 선수" 이렇게 부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비운의 스타" 그러면 비운이니까 약간 불쌍하긴 하지만 스타는 스타니까 정말 애매하잖아요. 스타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아예 스타라는 말을 안 붙이던가, 아니면 "비운의 선수" 이렇게 하든가.(웃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윤동식 선수 이름 앞에 "비운의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우리나라는 그 선수의 실력보다는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냐 못 땄냐 이런 걸로 선수를 평가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실력은 있는데 운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요 근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실력인 것 같아요. 냉정하게 얘기하면, 진짜 금메달을 딴 선수는 실력이 있어서 딴 거예요. 저도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은 많이 땄지만 올림픽에 못 나갔다는 건 어쨌든 실력이 없었다고 봐야겠죠."- 체급을 많이 바꾸셨잖아요. 78kg에서 81kg, 그 다음에 90kg 그리고 이번에 다시 81kg으로 복귀하셨는데 체급 변경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게 정말 쉽지가 않아요. 주위 사람들한테는 "저 9kg 빼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야, 너 나이 먹어서 왜 그렇게 하냐?" 이런 얘기 들을까봐 일부러 "2~3kg밖에 오버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거든요.근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한테 힘들게 뺐다고 하면 왠지 놀림당하는 것 같고 기분이 좀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말을 안 하는데 사실 노력 많이 했어요. 2001년에 은퇴를 했지만 마음 속으로 올림픽에 대한 생각을 못 버리고, 평소에 체중을 조금씩 빼고, 꾸준히 준비해서 가능했던 거 같고요.그리고 체급 내리는 건 정말 어려워요. 체중 조절하는 선수들 치고 체급 내려서 성공했다는 선수는 진짜 없어요. 체급을 올리면 다들 성공해요. 전기영 선수, 심권호 선수. 왜냐면 체중 불고, 훈련 좀 하면 파워가 생겨서 힘이 더 나거든요.81kg에서 90kg으로 올렸을 때는 예전이랑 똑같은 기술을 써도 상대가 더 쉽게 넘어가니까 기분이 좋고 이랬는데 지금은 거꾸로잖아요. 9kg이 빠졌으니까 옛날 힘이 안 나오는 게 당연한데도 하다 보면 "아, 왜 이렇게 안 되지" 이런 생각 들고 진짜 짜증나요. 그래도 지금은 적응이 조금 된 것 같아요." ⓒ2003 문수경 - 95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 0순위였는데 경기 중에 부상당하셨잖아요. 그 후로 6년 만인 2001년에 세계선수권 나가서 동메달을 따셨는데요.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 같은데요. "93년부터 95년 3월까지 국제대회가 열 서너 개 있었어요. 거기서 제가 전기영 선수랑 붙어서 졌던 것 말고는 외국 선수랑 싸워서는 전부 다 이겼어요. 제가 가장 절정이었을 때가 94년도였거든요. 94년에 7개인가 대회에서 1등하고, 95년 초까지 1등하고 그럴 때 "나는 올림픽은 무조건 나가고, 당연히 1등이다. 1등 되면 세리모니를 뭘로 할까" 그랬었어요.근데 95세계선수권 가기 40일 전에 무릎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섰어요. 세계선수권은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인데 나가야 되지 않겠냐 해서 수술 안하고 보강훈련만 하고 나갔던 게 화근이 됐죠. 나갔다가 오히려 팔까지 부러지고….그리고 나서 재활하고, 96년에 유럽오픈대회 나가서 금메달 따면서 어느 정도 재기했는데, 중요한 대회 선발전 때마다 조인철 선수한테 진 거예요. 96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인철이가 나가서 3위를 했고, 97세계선수권 대표 최종선발전 때 연장까지 가서 졌고, 98방콕아시안게임 대표 최종선발전 때 또 연장까지 해서 지고… 조인철 선수하고는 판정 가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이긴 건 다 점수 따서 이겼지. 주위에서 "체급을 올려봐라. 어차피 네가 이긴 시합이었고, 돌아가는 것도 괜찮다. 비겁한 거 아니다" 이런 식으로 격려를 많이 해줬어요.그래서 한 체급 올렸는데 99세계선수권 대표 최종선발전 결승에서 유성연 선수한테 10분 연장까지 가서 지고, 2000시드니 올림픽 최종선발전 때 다시 유성연 선수랑 해서 20분 연장 가서 졌어요. 그러니까 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 계속 2등만 한 거야.그리고 나서 "난 이제 질렸다. 다시는 안 나간다" 그랬는데 저희 형이 "결정적일 때 네가 지고, 쓰러지고 그런 게 나중에 징크스가 될 지도 모른다. 그걸 깼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만 해달라"고 하더라구요.결국 2001년에 선발이 돼서 6년만에 뮌헨세계선수권에 나갔어요. 근데 제가 억울한 게 뭐냐면 져도 억울하거나 아깝게 져요. 차라리 한 판으로 깨끗하게 지면 미련이 없을 텐데. 뮌헨 갔을 때도 준결승까지 네 판을 전부 한 판으로 이기고 올라갔고, 1차전에서 크로이토루라고 정말 잘하는 선수도 이기고 올라가서 주위에서 다 금메달 딴다고 했어요.준결승에서는 프랑스의 드몽 포콩 선수랑 했는데 제가 먼저 절반을 뺏겼어요. 이 선수가 절반 얻고 난 다음 계속 피해 다녀서 제가 경고까지 따고, 반칙패가 들어가야 되는 상황인데 안 들어가서 지고. 그러니까 다시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요. 아예 멀어져 버리면 포기할텐데 문턱에서 왔다갔다 하니까.(웃음)"(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문수경 기자 (moon034@lycos.co.kr)<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유도천재" 윤동식 까페에 응원글 남기기 : http://cafe.daum.net/judo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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