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비리포트] SK 김성근 vs 한화 김성근, 뭐가 달랐나

조회수 2017. 5. 26. 14:55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SK시절 성공 방식 답습한 김성근 감독, 한화에선 왜 실패했을까?
야신으로 불리던 SK시절 성적을 한화에서 재현하는 데 실패한 김성근 감독 ⓒ 한화 이글스

지난 23일 오후 한화 이글스과 김성근 감독의 결별 소식이 전해졌다. 퇴진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까지 매끄럽지 못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동행은 결국 정해진 기한을 채우지 못한채 끝을 맞고 말았다.

1984년 OB베어스 감독 부임 이후 30여년 동안 KBO리그를 쥐락 펴락했던  노감독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총 23시즌 1384승 60무 1205패 승률 0.535)  

2002년 한국시리즈 명승부 이후 상대였던 김응용 감독이 덕담처럼 선사한 ‘야신’이란 평가는 이후 김성근 감독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부임하는 팀마다 프런트와 갈등을 일으켰지만 약팀을 강하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던 그는 4년의 공백을 딛고 2007년 SK 감독에 부임한 이후 3번의 우승을 일궈내며 감독 인생의 최전성기를 보냈다. 

 KBO리그 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던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음에도 3년 연속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자  2014시즌 이후 한화 팬들 중 다수는 성적 제조기로 알려진 김성근 감독 영입을 청원했다. 당초 내부 승격을 검토하던 구단은 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김성근 감독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결과는 실패였다. 2015시즌 초반 KBO리그 흥행을 주도했던 '마리한화' 열풍이 전반기 이후 사그라들며 염원하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6위 68승 76패)  이듬해인 16시즌엔 7위(66승 3무 75패)로 뒷걸음질 쳤다. 예년에 비해 한층 안정적인 선발진을 구축하며 기대를 모았던 올시즌 역시 여러 악재로 고전하다 9위(18승 25패, 5/21 기준)로 추락했다. 

김성근 감독의 SK와 김성근 감독의 한화는 왜 상반된 결과를 맞게 된 걸까? 어떤 것이 ‘왕조’와 ‘ 만년 하위권’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07~11시즌 SK 와이번스, 그리고 15~17시즌 한화 이글스에서 보인 김성근 야구의 차이점과 결과를 비교해 보자.

1. 김성근식 ‘작전 야구’

07~11시즌 SK 와이번스와 15~17시즌 한화 이글스의 희생번트와 순위 [기록=STATIZ/케이비리포트]

잘알려져 있듯 김성근 감독은 경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유형이다. ‘작전 야구’의 대명사와도 같은 희생번트 기록을 살펴 봤다.

SK 시절 김성근 감독은 집요할 정도로 많은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2007, 2008시즌에는 각각 87개와 80개로 많지 않았지만 2009시즌 이후로는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2009~2011시즌 SK는 3년 연속 희생번트 1위를 기록했다.

이는 한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응용 감독이 지휘하던 14시즌 50개(리그 8위/9팀)에 불과했던 한화의 희생번트는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2015시즌 139개의 희생번트로 리그 1위를 기록했으며 16~17시즌에도 많은 희생번트가 이어졌다.

# 같은 방식, 다른 결과

2007~2011시즌 SK와 2015~2017시즌 한화의 팀 홈런&득점과 순위 [기록=STATIZ/케이비리포트]

하지만 같은 ‘작전 야구’ 에도  SK와 한화의 성적은 큰 차이를 보였다. SK는 김성근 감독의 부임 기간 내내 팀 득점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한화는 그렇지 못했다. 2016시즌 팀 득점 4위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2015, 2017시즌에는 하위권에 그쳤다. 

애초에 양 팀 타선의 차이가 컸다. 과거 SK에는 이호준, 박정권, 김재현, 최정 등 일발 장타를 지닌 선수들이 즐비했다. 홈런왕에 오를 정도의 거포는 없었지만, 리그 정상급 장타력을 과시했다 . 어느 한 선수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타선이었다. SK는 07, 09시즌 팀 홈런 1위를 기록했으며 09시즌에는 무려 10명의 10홈런 타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한화에선 그렇지 못했다.  김태균, 이용규, 정근우 등 화려한 스타들을 보유했지만, 실질적인 전력은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다. 안정적으로 10홈런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는 김태균 정도뿐.  극심한 타고투저에 힘입어 정근우가 2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홈런 숫자 자체는 늘었지만  15~17년 한화는 매 시즌 리그 하위권의 홈런 수를 기록했다.

2007~17시즌 간 경기당 팀 평균 득점의 변화 추이 [기록=STATIZ/케이비리포트]

상대적으로 투고타저였던 07~11시즌 SK가 '한 방'으로 점수를 쌓고 희생번트로 필요한 점수를 짜내며 승리를 챙겼다면, 타 팀에 비해 장타력이 약했던 한화는 소중한 아웃카운트를 희생하고 짜내기 점수에 의존하며 승리에 필요한 득점을 늘리지 못했다.

득점력이 중하위권이니 기대만큼 성적이 날 수가 없다. 타고투저의 리그 트렌드를 간과한 김성근 감독의 ‘희생 번트 작전'은  한화라는 팀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2. 김성근식 ‘올인원 투수기용’

마운드 운용 방식 역시 변함이 없었다. 필승조/추격조/패전조의 역할 구분없이 승부처라는 판단이 들면 점수차에 상관없이 핵심 불펜을 계속해서 기용한다.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확실한 승리를 위해,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추격을 위해 필승조를 마운드에 올린다. 필요하다면 선발을 불펜으로, 불펜을 선발로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능성을 보인 투수는 선발, 필승조, 추격조 등 모든 보직을 다 맡을 수 있는 이른바 ‘올인원 투수기용’인 셈이다.

▲ 2007~2011시즌 SK 와이번스에서 '10구원 등판-80이닝 소화'를 기록한 투수들과 기록 [기록=STATIZ]

김성근 감독의 SK 부임 시절 투수들의 기록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2007, 2008시즌에는 극단적인 ‘올인원 기용’이 없었지만, 2009시즌부터는 달랐다.

2009시즌 세 명의 투수가 10구원-80이닝을 달성했고, 2010시즌에는 4명, 2011시즌에는 3명이 이를 달성했다. 전병두, 고효준, 정우람, 이승호는 마치 ‘출석 체크’를 하듯 마운드에 올랐다.

▲ 2015~2016시즌 한화 이글스에서 '10구원 등판-80이닝 소화'를 기록한 투수들과 기록 [기록=STATIZ]

한화에서도 ‘올인원 기용’은 계속됐다. 권혁은 한화에서의 2년 간 구원으로만 144경기에 나서 207 1/3이닝을 던졌다. 박정진 역시 불혹의 나이에 2년 간 구원으로 152경기 180이닝을 소화했다. 

또한 2015시즌 송창식, 2016시즌 심수창은 전무후무한 ‘10선발-50구원’ 기록까지 세웠다. 한화에게 선발과 구원, 필승조와 추격조의 경계는 없었다.

#달라진 리그 환경, 변하지 않는 고집

▲ 2007~2011시즌 SK 와이번스와 2015~2017시즌 한화 이글스의 팀 ERA와 순위 [기록=STATIZ]  

하지만 같은 ‘올인원 기용’을 했음에도 SK와 한화의 마운드 성적은 완전히 달랐다. SK는 김성근 감독 시절 내내 팀 ERA 1위와 2위를 독주하며 압도적인 마운드 높이를 과시했지만, 한화 마운드는 김성근 감독과 함께한 2년여 동안 하위권에 머물렀다.

물론 이는 선발 투수를 포함 투수 층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2007~2011 SK와 달리 긴 암흑기를 보낸 한화는 마운드가 약점인 팀이었다. 배영수, 권혁, 송은범, 정우람 등 FA들을 잇따라 영입했지만, 냉정히 말해 한화의 마운드가 리그 평균 이상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리그 환경 변화에 있다. 김성근 감독의 SK 부임 시절에는 팀당 126경기(2007~2008) 혹은 133경기(2009~2011)가 펼쳐진 반면, 한화에 부임한 2015시즌 부터는 팀당 144경기로 경기수가 늘어났다. 게다가  2014시즌 이후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으로 경기 당 팀 득점이 5점 이상으로 치솟았다.

소수 정예 투수들에게 의존하는 ‘올인원 기용’ 방식으론  길어진 정규 시즌 동안 한층 매서워진 타자들의 방망이를 막을 수 없었다.

# SK-한화 핵심 불펜의 연령 비교

2007~2011시즌 SK 와이번스와 2015~2017시즌 한화 이글스 주요 '올인원 투수'들의 당시 나이 [기록=KBO]

‘올인원 기용’의 대상이 되는 선수들도 SK 시절과는 달랐다. SK 시절 김성근 감독이 주로 기용했던 전병두, 고효준, 정우람, 이승호는 당시 2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였다.

‘올인원 기용’이 시작된 2009년 전병두는 만 25세, 고효준은 만 26세, 정우람은 만 24세, 이승호는 만 28세였다.

하지만 한화에서 김성근 감독이 선택한 투수들은 대부분 30대 이상의 나이가 많은 투수들이었다. 2015년 권혁은 만 32세, 박정진은 만 39세, 송창식은 만 30세였고, 2016시즌 합류한 심수창은 당시 만 35세였다. 

가뜩이나 시즌이 길어진 상황에서 노장 투수들에게 수많은 역할을 요구한 셈이다.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지 않은 고집 섞인 ‘올인원 기용’은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3. 승리가 아닌 '김성근 방식' 추구가 패착

▲ 김성근 감독은 KBO 통산 1384승, 한국시리즈 3차례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떠났다. ⓒ 한화 이글스

과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던 김성근 감독은 한화 시절 미묘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리그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고 달라진 환경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추구하기 보다는 과거 성공을 경험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자 했다.

하지만 '김성근식 야구'에 대한 과잉 집착은 그간 쌓아온 '야신'의 명성마저 앗아갔다. 앞서 살펴봤듯이 달라진 리그 환경에서 그의 방식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에게 전권을 맡기고 공격적인 투자로 지원했던 한화는 2015시즌 6위, 2016시즌 7위로 염원했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올 시즌 역시 한화는 하위권(9위 18승 28패)으로 처져있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최하위로 추락했던 삼성과도 어느새 4경기 차로 좁혀진 상황이다. 아직 98경기가 남아있지만 확실한 반등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올시즌 이후다. 당장의 성적을 위해 미래를 포기한 지난 2년으로 인해 원래대로라면 한화의 미래가 됐을  상당수 유망주가 팀을 떠난 상태다.  10개 구단 체제가 되며 쓸 만한 유망주 수급이 더 어려워진 현 상황에서는 암흑기를 겪었던 그 이전 5년(2010~14) 보다 더 고되고 혹독한 시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관련 칼럼: 한화는 어떻게 최고령팀이 되었나?)

KBO 통산 1384승과 한국시리즈 3차례 우승을 거두고 숱한 화제를 불러 모았던 개성 강한 노감독은 현장을 떠났다. 이미 76세에 달한 나이와 최근 3시즌 간의 성적을 감안할 때 그가 KBO리그 현역 감독으로 다시 복귀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감독 중심 야구를 상징하던  김성근 감독의 퇴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감독 1인의 감이나 판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야구가  현대 프로야구에서 더이상 통용되지 않음을 뜻하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야신' 신화마저 파괴한 KBO리그의 전문화와 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관련 기사:  [KBO 야매카툰] 잔혹동화 : 야신을 원한 보살팬)


[기록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KBO 기록실, STATIZ]

계민호 기자 / 김정학 기자

☞   프로야구/MLB 카툰 전편 무료 보기

☞ 이 기사 응원!  비영리 야구기록실 후원하기 [kbr@kbreport.com]

☞ 페이지 좋아요! 케이비리포트 [페이스북]

기사제공: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