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만명과 요리로 情 나누는 '흙숟갈 할멈'

백수진 기자 2016. 10. 22.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63세 요리 파워블로거 김옥란 올린 글 엮어 요리책 두 번 출간 "시간과 돈 없는 이에게 도움되고 따뜻한 달걀찜 같은 위로 주고파"

'꿈꾸는 할멈.'

예순 살에 블로그를 시작한 요리연구가 김옥란(63)씨가 자신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요리법과 살림 노하우를 하나씩 올리기 시작해 1년 만에 요리 부문 파워블로거가 됐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엮어 2014년 첫 책을 냈고 지난달 '애들 먹일 좋은 거'라는 두 번째 책이 나왔다.

김씨는 30년간 요리를 가르쳤다. EBS '최고의 요리비결'에 출연하고 각종 요리대회 심사위원도 맡았다. 화려한 이력의 요리 선생이었지만 인터넷과는 거리가 멀었다. 홈페이지 관리자가 레시피 1만여 개를 갖고 잠적해 버린 게 전화위복이 됐다. 직접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청춘을 바쳐 만든 레시피를 되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누가 봐주길 원해서가 아니라 '요리 일기' 쓰듯 혼잣말처럼 시작했어요."

댓글이 뭔지도 몰랐던 그에게 블로그 입문은 험난했다. "첫 글이 월남쌈 사진 하나에 레시피 한 문단 정도였는데 완성하는 데 8시간이 걸렸다"며 웃었다. 둘째 날 8명이던 하루 방문자 수가 점점 늘어 1만명이 됐다. 살림 노하우, 텃밭 이야기 등 콘텐츠도 더했다.

단순히 요리법만 적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음식에 얽힌 추억도 쓰고 젊은 엄마들에게 충고도 건넨다. 20~30대도 공감 댓글을 남긴다. 그는 "(댓글을 보면서) 옛날의 나처럼 어렵게 사는 젊은이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면서 "요리 수업을 받을 돈이 없거나 그 시간에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김씨는 스스로를 '흙숟갈 할멈'이라 부른다. 한 번도 수업료를 제때 내본 적이 없었단다. 차비가 없어 열흘 동안 등교를 못 한 적도 있었다. "새엄마는 도시락 반찬으로 늘 양파만 볶아줬는데 달걀, 소시지 반찬이 그렇게 부러웠다"면서 도시락을 항상 숨어서 먹었다고 했다.

인생 음식으론 '달걀찜'을 꼽았다. 고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됐을 때였다. 대학 간 친구들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첫 회식 때 일식당에서 "생전 처음 보는 보들보들하고 짭조름한 달걀찜"을 맛봤다. "손으로 그릇을 감쌌는데 온기가 사람이 주는 위로보다 따뜻했어요. 매일 밤 울며 지냈는데 그날 저녁엔 잠이 잘 오더라고요.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궁금해졌어요."

식구 많은 집으로 시집을 가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집안일을 했다. 음식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자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이웃 네 명이 찾아왔다. 그는 "요리책이란 요리책은 다 보기 시작했다. 식사 대접을 하듯 정성을 다해 가르쳤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자 네 명이 네 팀이 됐고 두 달이 지나자 스무 팀이 꾸려졌다. 6개월 만에 오전·오후반이 꽉 찼다. 할머니가 찍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블로그 사진은 그때 수없이 읽은 요리책 덕분이란다. "이런 구도면 요리책처럼 예쁘게 나오겠다고 상상하면서 찍는다"고 했다.

'꿈꾸는 할멈'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난다. 각종 채소와 과일을 기르는 30~40평짜리 텃밭부터 간다. 아들 가게 일을 돕고 틈틈이 음식 사진을 찍는다. 밤 9시 일과가 끝나면 작업실로 올라가 글을 쓴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을 선생이랍시고 찾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워요. 나중에 '흙숟갈 할멈의 혼자서도 해내는 레시피' 같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