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CSI 요원, 제가 키웁니다"
"상영 중인 영화를 불법 녹화해 인터넷에 올리는 '디지털 범인'을 과학수사로 잡아봅시다.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특수 장비를 통해 보면 '○○극장, ○시 상영분'이라는 워터마크가 찍혀 있죠. 촬영한 카메라 각도를 분석해 좌석 몇 개를 특정합니다. 좌석을 매표소와 연결하면 카드 결제 내역이 나옵니다. CCTV를 통해 당일 현금 결제를 한 사람도 대조해가며 추적합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죠."
대검찰청 특수부 검사 출신인 노명선(57)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국내 일반대학원 최초로 개설한 과학수사학과 학과장을 맡았다. 'CSI학과'로도 불리는데 크게 세 가지 분야를 배운다. 인터넷이나 컴퓨터상에 남긴 증거를 추적하는 '디지털 포렌식'과 마약·독극물부터 음성·음향·DNA 등을 분석하는 '법과학', 교통사고나 화재를 감식하는 '법안전'이다. 노 교수는 "수사기관에선 직무 교육에 급급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인재 양성과 과학수사 연구, 도구 개발까지 총괄할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지금까지 과학수사는 의과대학 법의학 전공에서 주로 가르쳐왔다. 그러나 노 교수는 "검시로 사망 원인을 밝히는 법의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최근 다시 논란이 됐던 이태원 살인사건을 예로 들었다. "부검 후 '피해자보다 키가 더 큰 사람이 내리쳤을 때 생기는 상처'라는 분석이 나와 진범을 놓쳤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가 허리를 굽혀 소변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 키가 작은 패터슨도 범행이 가능했다. 부검 결과는 사망 당시의 여건이나 환경에 따라 변수가 많다"
따라서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 교수는 과학수사 중에서도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다. 대검 산하 디지털 포렌식센터 설립에 관여했고 디지털 포렌식 전문조사관을 배출하는 국가공인제도도 직접 만들었다. 그는 "디지털 세계의 증거는 쉽게 변조되고 쉽게 삭제할 수 있다. 국경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온라인상의 증거를 법정에 제출하기까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체계적인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마약 분석만 담당하는 수사관이 마약이 북한산인지 러시아산인지 원료는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관리한다. 오랜 시간 쌓인 데이터로 '공업유 성분이 검출되면 북한산 마약일 확률이 높다'는 추론이 나와 수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력과 장비도 부족한데 검찰·경찰·국정원 등이 서로 다른 수사 장비와 프로그램을 쓰면서 정보 공유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무자 교육과 기술 개발로 수사기관 간 협력을 이끌어내는 게 그의 또 다른 목표다.
대학원 졸업 후 수사기관으로만 진출하지는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부당 거래를 단속하거나 기업의 회계부정사범을 잡아내는 감사팀에서 일할 수도 있다. 최근 극성인 보험 사기 추적 업무에도 과학수사가 쓰인다. 그는 "경찰에서 추진 중인 탐정법이 통과되면 인력 수요가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노 교수는 과학수사의 발전이 인권 신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객관적인 증거만 확보할 수 있다면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심문 과정에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줄어들 것"이라면서 "다만 과학기술로 사적인 정보까지 들춰내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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