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길위의 아이들'에 자립의 길 열어준 사장님
지난 22일 오후 1시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휴카페'는 점심시간을 맞아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눈에 봐도 앳돼 보이는 10대 후반의 청소년 4명이 부지런히 커피를 내리고 이를 테이블로 나르고 있었다. 커피를 서빙하던 한지혜(가명·17)양은 한 손님이 "아르바이트 학생이냐"고 묻자 "아뇨, 정직원인데요"라고 답했다. 이 청소년들은 송파구에 있는 '한빛청소년대안센터'에 살면서 이 카페로 출퇴근하고 있다. 모두 과거에 가정 폭력과 가난, 부모의 이혼 등으로 갈등을 겪다 가출해 방황했던 경험이 있다. 한때 길을 잃고 헤매던 이들을 카페 주인 김문곤(46)씨가 이끌어줬다.
원래 아크릴 선반 제작업을 하는 김씨는 지난 6월 4000만원을 투자해 카페를 설립하고 센터에 사는 청소년들에게 운영 전권(全權)을 맡겼다. 카페 경영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청소년들의 월급과 임차료 등 운영에 필요한 400만원가량을 매달 지원하고 있다. 한양은 "세상이 원망스럽고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던 제가 이렇게 돈을 벌며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면서 "어두웠던 삶에 다시 빛을 밝혀주신 사장님은 부모님보다 더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비행(非行) 청소년의 대부가 된 것은 아들 종성(23)씨 때문이다. 종성씨는 중학교에 다니던 10년 전 공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해 길거리를 떠돌던 종성씨를 거두어 준 곳이 바로 한빛청소년대안센터였다. 말 한마디 안 하던 종성씨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도, 부모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도 이 센터 직원들의 따뜻한 관심 덕분이었다. 사업하느라 아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던 김씨는 이 센터 직원들을 통해 아들이 얼마나 부모의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했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 부자(父子)는 그렇게 화해했다. 센터가 운영하는 대안 학교인 '사랑의 학교'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한 종성씨는 지난 5월 제대해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종성씨는 "비행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이라며 "아버지를 본받아 방황하는 청소년 친구들에게 힘이 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센터에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2009년부터 후원금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센터 출신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3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아이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3년간 대학도 나오지 않고 과거의 범죄 경력 등으로 취업이 힘들었던 센터 출신 청년 7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김씨 회사에서 일하는 이진복(27)씨는 "사장님이 지난여름에 '배낭여행을 떠나서 세상을 배우고 오라'고 하시면서 한 달간 휴가를 주셨다"며 "방황할 때 사장님을 못 만났다면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졌을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대부분 청소년인 센터 아이들을 위해 김씨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카페 프로젝트'였다. 청소년도 할 수 있는 카페 일을 통해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주려는 것이다. 휴카페 1호점이 자리를 잡으면 제2, 제3의 휴카페를 개장하는 것이 김씨의 목표다. 김씨는 "아들이 속을 썩일 때는 사업에 집중할 수 없어 이중으로 힘들었다"며 "아들이 제자리를 찾고 후원을 시작한 뒤 사업도 잘 풀린 것을 보면 하늘이 아이들을 도우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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